글 김종성(자유기고가)

모자, 내복 그리고 체력장을 보는 시각

지난 호에 내복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뭔가 미련이 남아 조금 더 언급해본다. ‘굶어죽는 거지는 있어도 벗고 죽는 거지는 없다는 말에 담긴 뜻도 그렇지만, 의식주(衣食住)라는 말의 순서에서도 보듯이 사람은 먹고 사는 것보다 입고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하긴, 사람을 볼 때 먹고 사는 수준보다 입고 사는 수준이 눈에 더 잘 띄기도 하다. 그리고 허약장대한 젊은 세대를 이대로 방치하다간 앞으로 어떤 변화가 닥칠지 생각해 본다.

 겨울모자를 쓰게 된 이유

필자는 10여 년 전 출퇴근 때 버스로 막히는 골목을 거쳐 가느니 차라리 그만큼 걸어볼 요량으로 미리 한 정류장 전에 내려서 확 트인 길로 직장까지 3km 가량을 걸어서 출퇴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12?) 퇴근길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귀가 엄청나게 시리고 머리가 얼 정도였는데, 버스에 탄 순간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그 순간 만약 내가 혈압이 좀 있었다면 지극히 위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가장 아쉬워했던 게 모자였다. 그래서 이후엔 귀를 살짝 덮을 수 있는 방한모자를 썼는데, 그랬더니 버스 타고 나서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제야 어렴풋이 옛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완행열차가 비둘기호로 이름이 바뀌기 직전인 고등학교 시절 필자는 열차통학을 했는데, 그 완행열차(아마 다른 칸에 지금의 자전거생활 대표가 된 김병훈이라는 아이가 타고 있었으리라)에는 시골에서 나물을 캐다가 도시에 팔기 위해 나물을 보자기로 싸다 담은 대야를 아침마다 열차 간에 싣고 가는 억순이 할머니들이 많았다. 그 할머니들이 해마다 이맘 때(2)면 항상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이달에 안 죽으면 올해도 무사히 1년은 더 산다"는 말인데, 그땐 그냥 예사로 들었다.

헌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우리 집안도 그렇고 다른 집안도 보니, 제삿날이 이상하게도 양력 2월에 제일 많았고, 장례식도 2월에 제일 많았다. 그게 아니면 2월을 전후한 시기에 많이 몰려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겨울의 끄트머리에 추위로부터 긴장을 풀듯 말듯 할 때 차가운 새벽바람 받고선 따뜻한 곳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머리 쪽의 혈관이 확장되면서 혈압과 관련된 치명적인 일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마도 사람의 생체시계상 계절과 실제 계절이 불일치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라 보고 싶다.

그때부터 어른들에겐 굳이 2월이 아니라도 겨울엔 꼭 모자를 쓰기를 권하고 있다. 거기에다 야간에 인도를 달리는 자전거나 전동스쿠터 운전자의 눈에 잘 띄기 위해 되도록이면 밝은 색 모자를 권하고 있다. 방한외투에 딸린 후드도 좋지만 고개를 자유롭게 돌릴 수 있는 모자가 더 좋다고 본다.

사실 우리가 강남이라고 하면 부동산이나 젊은이들의 유행만 선도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노인문화를 선도하는 것도 있더라. 지하철역에서 강남 노인들끼리 서서 얘기하는데 하나 같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런 건 왜 강남스타일 유행항목에 넣지 않는가.

모자를 쓰고 다니는 '강남' 노인들

 군대와 내복 문제

아무리 찾으려 해도 제목조차 몰라 결국 못 찾았는데, 오래 전 이라크전 관련 영화를 TV로 본 적이 있다. 스토리는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미군병사가 혼자 사막에서 도망가는 장면으로, 신기한 건 밝은 색깔의 내복차림이었다는 거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내복 안 입기, 특히 남자들 아랫도리 안 입기 유행이 시작된 시점이다. 과연 저들은 우리보다 정력이 약해서 내복을 입을까? 아니면 정력에 안 좋은 걸 몰라서 내복을 입을까? 미군이 우리보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걸가?

미군 내복 
미군 내복 

필자도 90년대엔 젊었기에 처음엔 그 조류에 편승하여 아랫도리 내복을 안 입었다. 그런데, 날씨가 싸늘할 때 조깅 나가서 타이어 차기를 많이 하다가 장딴지에 알이 밴 듯 당기고 관절이 삐끗거리고 통증이 나서 다리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침 맞고 타이어 차기를 그만 두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쫄쫄이 바지(타이즈)를 추리닝 안에 끼어 입고 달리기 하고, 평상시에도 바지 안에다 쫄쫄이를 입어 보니 통증이 씻은 듯 없어졌다. 이 무슨 조화일까? 여하튼 그 후론 겨울에 철저히 쫄쫄이를 입는다. 그리고 아직껏 롱패딩 같은 두터운 방한외투를 거의 안 입고 지내는 것도 아마 쫄쫄이를 입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내복 특히 아랫도리를 안 입는 이런 불합리한 폐습이 아직까지도 뿌리박혀 있으며, 특히 군대에서도 그렇다는 것이 문제다. 군에 근무하는 아들에게 물어보니 우리 군에는 지금도 내복은 지급된다고 한다. 그런데 입지 않으려 한단다. 특히 아랫도리 위주로.

2018년에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 고지에서 남북이 공동 유해발굴에 앞서 지뢰제거용 전술도로를 연결(안보훼손 행위여서 아주 기분 나빴다)했고, 그 당시 우리 군과 북한군이 악수하는 장면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다. 북한군 부대장이 우리보다 키가 커 보이려고 높은 곳에서 우리 부대장을 내려 보고 악수한 장면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필자는 거기서 조금 다른 부분이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남북한 군대 간 내복착용 문제였다. 북한군은 바지 안에다 방한용 누비바지를 입어 마치 바지통을 공기로 부풀린 것처럼 보인데 반해, 우리 장병들은 대부분 두툼한 상의는 입었지만 바지는 헐렁할 정도로 다리에 방한을 하지 않고 나간 것처럼 보였다.

아랫도리에 내복을 안 입었다는 게 계속 걸을 땐 그리 문제 될 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가만히 오래 서 있게 되면 달라진다. 다리가 따듯한 북한군에 비해 다리에 방한준비를 안한 남한장병들은 서서히 다리에 힘이 풀리고 떨리게 된다. 게다가 그 현장에서 돌아가면 따뜻하게 몸을 녹일 난방이 잘된 공간을 가진 남한과 달리 돌아가 봐야 몸 데울 곳도 없는 북한군 사이에는 마주보고 있는 그 공간에 임하는 정신적 자세가 달라진다. 떨려서 난방이 잘된 공간이 생각나는 우리 군인에게 북한군이 짓궂게 말을 걸면 기가 눌려서 대충대충 굴복하는 식으로 말싸움에서 지게 된다. 생존이나 안전보다 정력에 걸신들린 데서 나타나는 폐해다.

2018년 남북 유해발굴 당시의 사진. 북한군은 내복에 누빔바지를 입어 하의가 빵빵하고, 국군은 하의가 허술한 것이 대비된다  
2018년 남북 유해발굴 당시의 사진. 북한군은 내복에 누빔바지를 입어 하의가 빵빵하고, 국군은 하의가 허술한 것이 대비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평양성 이북을 왜 못 올라갔을까? 특히 함경도에선 왜 졸전을 치렀을까?

딴에는 우리 민족의 저항이 어쩌고 하는데, 그보다는 따뜻한 곳에서 살아온 왜군의 방한준비 부족이라는 보급측면을 들먹이는 사람도 많다. 북해도조차 일본 땅이 아니었던 시절이었기에 함경도의 추위를 전혀 몰랐던 탓이다. 추운 곳에서 방한이 더 필요한 것 아닌가.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사람은 움직이는 시간보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법이고, 방한이 부실한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추운 곳에서 버티기가 아주 어렵다. 그럴 땐 당연히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 아닌가.

 선한 위력을 보호하기 위해 혐군정서에서 탈피해야

군대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 최근 소위와 하사의 봉급문제, 그리고 당직비를 두고 신랄히 비판하는 유투버가 있어 관심을 갖고 봤더니, 젊은 군인들 사이에 매우 인기 있는 채널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부사관 지원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학군단을 비롯한 위관장교 지원율도 갈수록 낮아진다고 한다. 지원율이 떨어지면 당연히 질이 저하되는데, 이게 그냥 둘 문제가 아니다. 이들 위관과 부사관이라는 초급간부들이 군의 실무근간 아닌가 말이다.

입시체력장 폐지와 군 인권 강화로 구성원이 나약해지고, 이기적인 병사들 배려하느라 없는 고생을 만들어서 해야 할 지경이다. 그러한 병사들의 징징거림을 스스로 극복할 권위가 그나마 급여인데, 그 급여가 병사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실질적으로 낮아지는 데서 초급간부들의 회의감이 심하다고 한다.

병사들의 징징거림에는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이들의 고초는 무시해도 괜찮다는 관념이 팽배한 것도 그렇지만, 다른 공무원에 비해 이들의 직급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하여 자존감을 깎아 내린 것도 문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외부의 침략과 일상의 범죄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군대와 경찰 덕이다. 군대와 경찰이라는 '선한 위력'이 약해지면 전쟁과 범죄라는 '악한 폭력'이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 선한 위력을 박대하면서도 그 선한 위력의 희생만 바라는가? 그 선한 위력이 멍청해지고 허약해지는 게 좋은가? 만일 뛰어난 군인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팔아서 이런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싶을까, 아니면 이런 나라를 팔아서 자신의 인생성공을 추구하고 싶을까? 살아서 성공하지 못하면 죽어서 이름이라도 빛내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인데, 개죽음 취급할 것 같은 집단을 위해 희생할 바보는 없다고 본다. 하물며 그런 바보짓할 똑똑한 자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당신이 엄청난 부자라면 멍청하고 허약한 경호원을 두고 싶은가 똑똑하고 강인한 경호원을 두고 싶은가? 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박복하게 대우하며 그들의 애국심과 정의감에만 의존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들의 봉급을 올리면 다른 공무원도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우물쭈물 하는데, 그럼 이들의 공무원 상응 직급을 올리면 어떤가 싶다. 하사를 9급으로 소위를 6급으로 말이다. 아마 쟁쟁한 젊은이들이 몰려들 걸!

 기업차원의 조직우생학 - 입사체력장(入社體力場)

이전 세대보다 훨씬 키가 큰 요즘 젊은이들의 나약화와 군인에 대한 박대를 초래한 원인은 뭘까?

원래 유교적 정서에 따른 혐군정서가 그 기반에 있겠지만, 가만히 단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을 보면 교련교육 폐지, 입시체력장 폐지, 군가산점제 폐지, 군인권 강화, 양성평등이라는 과정을 통해 젊은이들은 지속적으로 나약해지고(특히 청장년 남성의 나약화를 타게팅한 느낌), 이에 따라 군은 지속적으로 사무직화 되고 나약해졌다고 본다. 오죽하면 현역병이 예비군보다 체력이 못하다는 말이 돌 지경이다.

거기에다 갑자기 복지예산이 불어나더니 국방예산의 3배에 이르는 데서 국민적 차원의 도덕적 해이까지 초래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복지는 시골에서조차 일을 안 하게 만든다. 젊어서 놀고 탕진해서 늙어서 집이나 돈이 없으면, 그냥 놀고 있어도 각종 복지혜택이 주어져 일을 더 안 한다. 시골에서 품일꾼을 구하려 해도 이들이 나서지 않아 외국인 아니면 아예 품일꾼도 못 구한다. 늙어서까지 일하며 세금 내는 사람들 눈엔 이들의 모습에 열불이 날 지경이다. 이게 나라냐? 속히 보통선거제를 폐지하고 납세자투표제로 바꾸지 않으면 이 땅은 피부양자만 득실대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폐해들을 다 들먹이면 머리 아프니, 다른 건 몰라도 그 중에서 이전세대보다 체격이 훨씬 좋은 젊은이들의 체력을 나약하게 만든 입시체력장 폐지의 폐해는 나중에 어떻게 바뀔까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최근 현대차 생산직 모집이 핫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대졸자도 많이 응시한다고 하며, 면접시험을 위한 각종 동영상도 범람하고 있다. 생산직 면접 가이드라? 예전 같으면 이해가 안 될 일이나, 사실은 아주 합리적이다. 겉으론 힘든 직업이라고 내세워도 영업부담이 없고 처우와 봉급이 좋다는 속내를 다들 알고 있어서인지 7급 공무원보다 더 선호한다고 한다.

그런데,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그런 일자리의 일꾼을 뽑을 때 가마니나 침목을 들쳐 메고 빨리 나르기 같은 것으로 체력심사를 하여 사람을 채용한 적이 있었다. 아득한 옛날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지만 지금도 환경미화원 채용할 때 비슷하게 한다고 들었는데 아직 다른 분야에선 그런 게 없는 걸로 안다.

앞으론 이렇게 가다간 얼빠진 정부 차원의 입시체력장(入試體力場)이 아닌 민활한 기업 차원의 입사체력장(入社體力場)이 부활할 것 같은 예감을 느낀다. 기업에서도 직원을 뽑을 때 다른 회사보다 우생학적으로 나은 직원을 뽑고 싶을 것 아닌가. 설령 생산직이 아니라 하더라도 해외지사에 파견 나가서 일하는 직원들이 현지인들에게 나약해보이면 아무래도 현지인의 눈에 비치는 회사 이미지에도 부정적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무거운 것을 들고 일정거리를 이동하는 미군 체력 테스트 
무거운 것을 들고 일정거리를 이동하는 미군 체력 테스트 

그리고 주로 자기 몸만 잘 가누는 정도만 측정하는 식이어서 몸이 작고 가벼울수록 유리했기에 시멘트 한 포대(40kg)조차 들어 옮길 능력이 없어도 1등급 받던 이기적인 기준의 과거 입시체력장이 아니라, 이왕이면 무거운 물체를 들고 뛰는 식으로 외부로 구사하는 체력을 측정하는 이타적 기준의 입사체력장이 더 중요할 것으로 본다. 자기건강뿐만 아니라 노동력과 전투력을 측정하는 입사체력장! 앞으로 이게 필요하지 않겠나?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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