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과 옥천 사이, 백제와 신라 사이

식장산 정상 턱밑 해발 560m에 자리한 식장루. 북쪽으로 대전시내와 대청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다
식장산 정상 턱밑 해발 560m에 자리한 식장루. 북쪽으로 대전시내와 대청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다

대전 사람 말고는 잘 모르는 식장산(598m)에 주목한 것은 50년이 넘는다. 어쩌다 이 산자락에서 잠시 살면서 날마다 올려다 본,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으니 나로서는 각별한 인연이고, 추억 너머 동경이자 희망봉이었다. 그때는 대덕군에 속했고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대전 동구에 속하고, 산 아래까지 시가지가 밀려들었다.

특이한 산 이름은 백제 때 군사들이 성을 쌓고 식량을 저장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보문산성, 계족산성, 환산성 등이 줄지어 있어 당시 백제와 신라 접경의 살벌한 군세를 말해주고 있어 전설에 설득력을 더한다.
600m가 채 되지 않는 높이지만 서쪽 대별동(당시는 대별리)에서 올려다보는 산체는 아주 가파르고 높아서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인력으로는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다시 보아도 그 웅자는 여전하고 시가지 확장으로 인해 대전의 진산 중 하나로 꼽아도 될 듯하다. 대전의 진산에 대해서는 계룡산(845m)이 가장 상징적이지만 거리가 좀 있고, 남쪽의 보문산(458m)이나 북쪽의 계족산(429m)은 좀 낮아서 이제는 식장산도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식장산은 대전과 옥천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길게 솟아있어서 산 외곽을 일주하면 대전시내와 옥천의 산간지대까지 다양한 풍광을 볼 수 있다.

코스의 기점인 금강생태마당. 조용하고 아담한 생태공원이다  

일주 코스의 출발지는 식장산 북쪽이면서 시내에서 동떨어진 ‘금강생태마당’으로 잡는다. 소규모 생태공원으로 찾는 이가 많지 않고 판암IC에서 가깝다.

옥천 초입까지는 4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왕복 4차로여서 차량이 고속으로 질주하지만 갓길이 다소 있다.

한 구비 돌아서면 마달령(158m) 고갯길이 시작된다. 백제 최후의 충신 성충(成忠)이 충간을 하다 옥에 갇혔는데, 아마도 그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예상했던 같다. 죽기 전 의자왕에게 “탄현과 기벌포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기벌포는 금강 하구, 탄현(炭峴)은 이곳 마달령으로 추정된다. 황산벌에서 가까운 금산군 진산면 일대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으나 이미 100년 전에 백제-신라 간 결전이 있었고 신라의 요충인 관산성(옥천 초입)이나 보은 삼년산성과 연결되는 마달령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김유신이 사비성을 치러갈 때 삼년산성과 옥천 이성산성(굴산성)에서 묵었다는 전설도 이 루트를 뒷받침한다.

대전과 옥천 경계의 4번 국도 마달령(158m). 백제 말 충신인 성충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던 탄현으로 추정된다   

고개를 넘어서면 옥천군으로, 내리막이 끝나는 증약리에서 국도를 벗어나 서화천 지류를 따라 잠시 한가로운 개울길을 따라간다. 다시 서화천을 끼고 4번 국도를 타고 가면 이윽고 일부러 산줄기를 끊은 것 같은 자연 관문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백제와 신라 사이 관문 역할을 했다는 관산성의 일부다. 남쪽 삼성산(303m)에는 관산성 터가 남아있다. 관산성은 작은 산성 하나가 아니라, 사각형 분지를 이룬 옥천 외곽의 산줄기에 구축된 산성들(서산성, 삼양리토성, 마성산성, 동평리산성)이 이루는 네트워크의 통칭일 수도 있다. 이 특별한 관문은 지금도 교통의 요지를 이뤄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 4번 국도가 통과한다(고속도로와 철도는 터널로).

극단의 폐쇄로 치달은 조선 말기에도 이 관문은 특별했는지 외국세력을 배척하라는 척화비를 세워놓았다. 관문을 들어서지 않고 서화천을 따라 절벽 길을 간다. 과연, 천하의 관산성답게 산 자체가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데다 그 아래로 천연해자인 서화천까지 흐르니 방어력이 배가된다. 절벽길 이름이 ‘성왕로’인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마달령을 넘어 서화천 줄기를 따라가는 개울길 

산줄기가 갑자기 끊어져 천연의 관문이 된 옥천읍 초입 삼양사거리 부근. 오른쪽 산줄기에 관산성이 있다

월전리에서 서화천을 거슬러 오르면 물굽이에 맞선 암벽이 나온다. ‘구진벼루’라고 하는 이곳은 백제 제26대 성왕(聖王, 재위 523~554)이 최후를 마친 곳이다. 무령왕의 아들인 성왕은 선대의 뜻을 받들어 웅진성(공주)에서 사비성(공주)으로 천도를 단행하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라 칭하면서 백제의 부흥을 이끌었다. 백제가 기원한 한강유역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 신라와는 결혼 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일전일패의 격전을 이어나갔으나 그 틈에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해버렸다. 이에 격분한 왕자 창(昌, 뒤에 위덕왕)이 대군을 이끌고 관산성에서 신라 정예군과 건곤일척의 결전을 벌이게 된다(554년 관산성 전투).

하지만 창이 진중에서 병이 들자 이를 위로하기 위해 성왕이 직접 원군을 이끌고 오다 이곳에서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피살된 것이다. 당시 창은 고리산(환산) 남쪽에 진을 쳤다고 하니 4km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거의 다 와서 변을 당하고 말았다. 성왕의 전사로 사기가 떨어진 백제군은 신라군에 대패했고, 이 전투를 계기로 백제-신라 간 힘의 균형추는 신라로 기울게 된다.

1500년 간 전설로 내려오던 그 현장에는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이런 사연을 적은 비석을 세워놓았다. 구진벼루도 식장산의 줄기 하나가 서화천을 만나 절벽을 이룬 곳이다. ‘구진벼루’는 ‘구석진 벼랑’ 혹은 '궂은 벼랑'의 뜻 같다.

월전리에서 서화천을 거슬러 오른다. 멀리 식장산 동북릉이 길게 펼쳐지고, 전원풍경이 호젓하다

 

서화천변 절벽 아래에 세워진 '백제국26대성왕유적비'. 아들 창 왕자를 돕기 위해 원군을 이끌고 가던 성왕은 이곳에서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피살되었다 

구진벼루 뒤로 돌아들면 식장산 동북능선이 날개처럼 길게 이어지고 그 아래로 아늑한 산간풍경이 펼쳐진다. 남향이라 밝고 온화한 느낌의 골골마다 마을과 경작지가 모여 있고 작은 들에는 벌써부터 일손이 바쁘다.

작은 고개와 골을 지나 오동리로 접어들면 식장산 제2봉인 독수리봉(586m)이 우뚝하다. 식장산을 평이한 육산으로 알았는데 독수리봉 일대는 100m 정도의 암벽이 길게 이어져 강건한 골산의 풍모다. 독수리봉 바로 아래 절벽에 위태롭게 터 잡은 구절사도 보인다.

오동리에서 고개를 넘으면 상중리, 그 다음은 사양리가 차례로 이어진다. 남북으로 10km 정도 이어지는 식장산 동북릉과 남릉은 완벽한 자연 성벽이다. 이 장벽을 참지 못하는 현대인은 터널을 뚫어 숨통을 틔웠으니 바로 곤룡터널이다. 이 터널이 없다면 사양리에서 낭월동까지는 한참 내려간 추부를 거쳐 30km나 돌아가야 할 판이다. 하지만 터널은 자전거에게 최악의 난관이다. 그나마 갓길이 조금 있고 내부가 밝은 데다 536m로 길지 않아서 다행이다. 후미등을 상하로 켜고 백미러를 보면서 고속으로 터널을 통과한다. 터널 출구가 해발 200m나 되어 낭월동까지는 거칠 것 없는 다운힐이다.

구진벼루를 지나면 산간지대로 들어서서 골짜기를 지나고 고개를 넘나든다. 오른쪽 뒤로 식장산 줄기가 보인다

식장산 동북릉에 포근히 안겨 있는 오동리. 양지바른 남향이라 밝고 온화한 느낌이고 명당에 진좌한 묘소도 많다 

상중리 초입에서 바라본 식장산 제2봉인 독수리봉(586m, 오른쪽). 독수리봉 주변은 최대 100m 높이의 암벽이 즐비한 골산의 풍모다. 독수리봉 바로 아래에 자리한 구절사도 작게 보인다 

식장산 동부 산간지대에서 곤룡터널만 통과하면 바로 대전시내 낭월동이다. 길이 536m로 갓길이 조금 있고 내부가 밝은 편이지만 후미딩을 켜고 백미러를 잘 살피면서 빨리 통과하는 것이 좋다  

낭월동에서 대전천 자전거도로를 타고 조금 북상하면 대별교가 있고 그 서쪽 대별동이 바로 50년 전 내가 살던 곳이다.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인데 왜 그 시절이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그때 올려다보던 식장산, 다리(크게 재가설한 듯) 위에서 지켜보던 누나 형들의 등하교 행렬과 기러기 떼, 마을 외곽 산자락 밭에서 캐먹던 무와 칡….

골목길로 들어서니 50년 세월에도 마을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린벨트로 묶인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낡은 옛집과 공장, 비닐하우스 따위가 뒤섞인 마을은 어수선하기가 짝이 없다. 내가 살았던 집은 30년 정도 전에 새로 지은 듯하지만 집터와 본채 별채 구조는 그대로다. 인기척 없이 대문은 굳게 잠겼고 골목길에도 행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골목을 걷는데 가슴이 북받치고 눈물이 고인다. 50년 세월의 간극을 뚫고 기억과 가슴에 사무친 감흥의 부활일까, 허망하게 흘러간 반백년 세월의 공허감 탓일까.

대전천 자전거도로는 노폭이 좁은데다 보행자와 자전거가 뒤섞여 달린다. 그래도 봄볕에 나온 사람들 표정은 밝고 활기차다.

식장산 기슭에는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지나가 시가지와 단절선을 이룬다. 은어송마을5단지에서 도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산기슭으로 들어선다. 이제 식장산 품으로 들어간다.

낭월동에서 대전천 자전거도로를 타고 시내 방면으로 북상한다  

고속도로가 완벽한 단절의 벽을 이루면서 굴다리만 지나도 갑자기 한적한 산간지대로 급변한다. 개심사 가는 길은 예쁜 숲길이지만 경사가 극심하다. 대신에 순식간에 고도를 높여 250m나 올라왔으니 정상까지의 부담을 한층 줄여주기는 한다.

개심사 입구에서 왼쪽 임도로 진입한다. 간간이 걷는 사람들이 있지만 조용하고 편안한 길이다. 저 아래로 대전시가지가 하얗게 잠겨 있고 숲은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 신록을 준비한다. 임도는 1.7km만에 끝나고 북릉을 따라 올라오는 진입도로와 합류한다. 합류지점이 해발 270m이니 300m 정도만 오르면 되어서 부담이 확 줄어들지만 업힐 경사는 만만치 않고, 완벽한 2차로가 아니어서 간혹 오가는 자동차도 주의해야 한다. 원래 이 길은 정상의 통신탑과 미군 통신부대 용도로 개설되었다가 일반에도 전면 개방되었다.

식장산 안내도. 현위치(오른쪽 아래)는 개심사 진입로다. 임도와 도로, 등산로가 많이 나 있다

개심사 서쪽 횡단 임도. 조망이 트이고 노면도 좋은, 편안한 길이다 

임도는 1.7km로 짧고 길이 좋아 산책객도 간간이 다닌다 

일반 MTB로 아주 힘겹게 지그재그를 그리며 오르는 사람을 추월한다. 미안한 마음에 “전기자전거라서 먼저 갑니다”하고 인사를 해주면 대개는 멋쩍게 웃는다. 대전 동호인들에게는 업힐의 성지가 된 듯, 오르내리는 라이더가 적지 않다.

자동차는 전망대 400m 전에 주차하고 사람만 가야 하지만 자전거는 끝까지 오를 수 있다. 산 아래에서 훤히 보이는 거대한 누각은 2층의 식장루다. 2018년 세웠으니 거의 새 건물이다. 등산객과 자전거 동호인들이 사진 찍기에 바쁘다. 식장루 뒤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미군 통신부대 전용 헬기장이 있다. 식장루보다 10m 정도 더 높고 주변이 탁 트여 조망은 더 낫다. 고도는 해발 570m 정도. 하지만 뿌연 미세먼지는 10km 정도의 시야도 난망해서 계룡산도, 시가지의 끝도 보이지 않는다.

식장루로 가는 도로 업힐. 노폭이 좁고 경사가 심하며 간혹 다니는 자동차에 주의해야 한다

 

2018년 완공해 아직 신축 느낌이 물씬한 식장루. 대전 동호인들의 업힐 성지이자 멋진 전망대다. 정상 바로 턱민의 해발 560m 지점이다

인구 145만이면 국제 기준에서도 대도시다. 국내 5대 도시답게 질펀하게 펼쳐진 시가지가 끝 간 데 없이 광대하다. 도시의 정서적 미학적 이중성은 하늘에서 확연하다. 그 속에 들면 인생만사 희로애락과 청탁(淸濁), 소음이 혼재하는 불협화음의 용광로지만, 한 발 물러나 고지에서 내려다보면 갑자기 아름답고 웅장한 조화미가 느껴진다. 색상은 흰색이나 잿빛으로 중화되고 갖은 소음은 ‘웅웅’ 대는 저주파 배경음으로 가라앉아 귀를 자극하지도 않는다. 저절로 관조(觀照)가 이뤄지니 일상의 속진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정서적 순화가 저절로 이뤄진다.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서 도시에는 높은 전망타워가 필요하고, 주변 산에는 케이블카와 전망대를 설치해야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해진다. 서구나 일본의 대도시에는 꼭 이런 전망대가 있다.

내가 살았던 마을이 저 편으로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저곳에서는 여기를 올려다보며 선망했었는데 이제야 올라와본다. 시간축을 직선으로 보면, 공간축과 마찬가지로 지나온 과거는 축약되어 짧아 보이고 겪지 않은 미래는 아득하게 느껴진다.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보는 것(登高, 음력 9월 9일 중양절)은 동양의 오랜 전통으로, 공간과 함께 시간도 횡축으로 볼 수 있어 일상의 객관화에 좋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한국인이 등산을 즐기는 것은 참 다행이고, 산이 많은 것 역시 거듭 다행이다.

식장루 위쪽 헬기장은 조망이 더 잘 트인다. 대전시내 전역이 들어오고, 식장루 뒤로는 대청호가 펼쳐진다

식장루에서 세천생태공원 방면의 아름다운 숲길 

올라왔던 그 길로 북릉을 다운힐 하면 세천생태공원이다. 시내에서 가깝고 공간이 예쁜데다 주변에 식당들도 많아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빈다.

주원천을 따라 잠시 산간을 돌아나가 경부선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면 출발지인 금강생태마당이다. 세천생태공원에서 멀지 않은데도 이곳은 산책객 몇몇뿐이다. 산책객은 모두 ‘혼자 반’이다. ‘반’이라고 표현한 것은 애견을 동반해서인데, 가족도 아이도 아니고 애견과 다니는 사람들…. 인구 절벽을 애견이 일부 채워주고 있으나 기실은 잠시 다행, 나중 불행을 예고하는 희비극 아닐까.

 

tip

금강생태마당에 무료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옥천읍 입구에서 곤룡터널까지는 산간 전원지대로 식당과 편의점이 따로 없다. 글과 지도에서 소개한 대별동 구간은 필자 개인적인 추억 공간이니 생략하고 대전천 자전거도로를 따라 그대로 직진하면 된다. 식장산 도로는 1.5차로 정도로 좁아서 업다운 때 차량과 보행자에 주의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대전 식장산 일주 4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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