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구조가 서해안에서 재현되다

이원반도 최북단 당봉전망대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해발 61m밖에 되지 않으나 조망이 탁 트인다    
이원반도 최북단 당봉전망대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해발 61m밖에 되지 않으나 조망이 탁 트인다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1990년 쏘아 올린 이후 지상 559km 우주공간에서 외계를 관찰하는 허블망원경이 보내온 사진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창조의 기둥(Pillars of creation)’으로 명명된 것이다. 지구에서 6500광년 떨어진 독수리성운에 있는 이 경이로운 구조는 성간먼지 속에서 별이 탄생하고 있는 모습으로 ‘창조의 기둥’으로 불린다. 사진 한 컷에 담겼지만 이 ‘창조의 기둥’은 길이가 무려 5광년(1광년=9조4600억km)으로 지구-태양 간(1억5000만km)의 6만300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놀랍게도 이 창조의 기둥과 꼭 닮은 지형이 국내에 있으니 바로 태안반도에서 북으로 길게 뻗어난 이원반도다. 가로림만의 서쪽 축을 이루는 이원반도는 길이 20km, 최소폭 500m의 가늘고 긴 모습으로 가장 기이한 반도 지형이기도 하다. 독수리성운 ‘창조의 기둥’과는 놀라울 정도로 판박이다. 우주 속 ‘창조의 기둥’은 새로운 별이 태어나는 탄생의 공간이라면 지구상 ‘창조의 기둥’인 이원반도는 과연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이원반도(위)와 독수리성운에 있는 성간가스인 '창조의 기둥'(아래). 판이하게 닮은 모습이다

이원반도의 뿌리쯤에 해당하는 원북면소재지가 코스의 기점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태안화력발전소 사원아파트가 있어서 상가가 다채롭고 거리가 활발하다. 아침에 등교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만 봐도 활력이 느껴진다. 요즘처럼 아이가 귀하고 반가울 때가 없고 이 작은 시골마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건재한 것이 대견스럽다.

도로를 버리고 개울가 농로를 따라 북상한다. 가늘고 긴 반도지만 내륙에는 100~200m의 야산들이 흘러넘쳐 얼추 산간지대 풍경이다. 살짝 고지에 있는 사창리를 넘어가면 아늑한 호수 같은 가로림만이 펼쳐진다. 가로림만은 전국 최대의 갯벌을 품고 있으며 이원반도와 서산 대산반도 사이에 호리병 모양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길이 23km, 최대폭 15km이며 이원반도와 대산반도 사이 최단 해협은 2.4km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산 구도항에서 인천항까지 여객선이 운항하는 주요 뱃길이었다.

이름에서 보듯 원래는 새섬이었던 곳에는 빨간 지붕의 리조트가 들어섰고 주변 바다는 비옥한 평야가 되었다.

빨간지붕의 새섬리조트 방면 방조제길. 너무나 잔잔해 비단결 같은 가로림만   

길은 내륙으로 들어가 마봉산(69m), 가제산(185m), 국사봉(206m) 기슭을 오르내리며 북상하는 사이 작은 마을과 들판, 해안선이 스쳐 지나간다.

관리에서 짐짓 해안으로 나가면 밀물에 갯벌은 잠기고 암초만이 드러나고 방조제는 마른 수풀이 수북하다. 여름이라면 수풀이 자라 통행이 어렵겠다. 가로림만 가운데 떠 있는 고파도가 저편으로 아늑하다. 잠시 산길을 지나 후망산(145m)을 돌아나가면 해안과 숲마다 예쁜 펜션들이 동화 속이다. 도로를 따라 쾌속으로 달리는 데도 반도는 아직 허리춤이다.

내리에서 다시 해안으로 나서면 소박한 방조제 길이 아득한데 천일염전이 옆에 있다. 이곳에서 염전을 보다니 반갑고 신기하다. 서해안에 염전은 드물지 않은데 동쪽으로 바다를 끼고 달리는 사이 내심 동해라고 착각했나 보다.

이원반도는 바다를 끼고 있는데도 온통 ‘솔향기’다. 염전 이름도, 해안산책로 이름도 ‘솔향기’다. 야산마다에 빽빽한 해송 숲 덕분인데, 한반도 특유의 동고서저(東高西低)와 달리 이원반도는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인데다 산에 숲이 짙으니 방풍이 되어 마을과 경작지가 모여 있는 동안(東岸)은 매우 아늑하다.

새섬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면 '서해랑길' 리본이 반겨준다 

외딴집, 가로림만, 외딴섬 그리고 서산 팔봉산(364m)

수풀 때문에 여름에는 통행이 어려울 것 같은 관리 방조제길. 길이 막히면 농로로 우회하면 된다 

이제 만대항이 지척이다. 태안에서는 나름 ‘땅끝마을’이란다. 작은 포구에는 횟집과 양식장 보트, 어선이 정박해 있고 북쪽 해안절벽에는 데크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다. 썰물이면 산책로를 통해 삼형제바위를 거쳐 당봉전망대로 갈 수 있을텐데 마침 밀물의 정점이라 길이 막혔다.

포구를 되돌아 나와 만대기지 방면으로 산을 오른다. 반도 최북단에는 군부대(만대기지)가 자리 잡고 있어서 최종목표는 기지 직전의 당봉전망대다.

당봉전망대는 해발 61m밖에 되지 않으나 해안절벽 위라 고도감이 헌칠하고 조망이 시원하다. 전망대에는 팔각정과 벤치가 놓여 있고 지명안내도까지 설치해 놓았다. 옛날에는 넓은 바위가 있어서 풍어제를 지냈다고 하며 2013년부터는 매년 1월 1일 해맞이행사가 열린다. 동으로는 가로림만이 있어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바다와 대산반도 위로 해가 떠오를 것이다.

서쪽으로는 울도에서 덕적도까지, 덕적군도의 섬들이 흩어져 있으나 박무 탓에 가장 크고 산이 높은 덕적도만이 아스라하다. 바다에는 거대한 유조선들이 유유히 오간다. 2007년 유조선 충돌사고로 원유가 유출되어 오염되었던 그 해안인데 어느덧 과거의 일이 되었고 해안은 생태계와 풍경을 완전히 회복했다. 원유 역시 지하에 묻혀 있는 자연물인데, 이토록 서로 가혹하다니 지구의 섭리를 알 수가 없다.

솔향기염전 방조제는 산책로로 꾸며져 있다.  오른쪽 뒤로 태안 '땅끝마을' 만대항이 보인다 

만대항 포구. 바다 깊숙이 머리를 내민 반도의 끝이어서 물이 동해처럼 깊푸르다만대항 뒤편의 해안 산책로. 바지선 뒤로 서산 대산반도의 끝인 황금산(152m)과 대산공단이 보인다

당봉전망대의 서해 조망. 미세먼지로 덕적군도는 거의 보이지 않고 유조선만이 오간다

솔향기염전을 지나 도로를 버리고 산으로 향한다. 곧 숲 속이고 적막이다. 다른 곳 서해안은 온통 갯벌이나 백사장인데 이원반도는 절벽 혹은 암반이다. 숲 속이지만 해안이 가까워 펜션들이 숨바꼭질을 하지만 비수기 평일이라 인적은 없다.

해송숲 사이를 비틀거리는 임도는 산줄기 서쪽을 돌아 꾸지나무골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길이 400m 남짓한 아담한 백사장은 솔밭과 암반이 어우러져 안온한 운치가 있다. 정면으로는 태안화력발전소가 바라보이지만 5km 가량 거리가 있어 관망의 여유로 거대 굴뚝을 바라볼 수 있다.

노면이 좋고 해송숲이 운치 있는 임도는 꾸지나무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솔밭과 해안을 함께 안고 있는 펜션

조림지에서는 조망과 하늘이 트여 길은 한층 매혹적이다 

드디어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이다. 바다 저편으로 태안화력발전소가 보이지만 맑은 물과 솔밭, 암초가 어우러져 아름답다

길이 2981m 이원방조제 저편으로 태한화력발전소가 거대하고 방조제 안쪽에는 대규모 호수가 생겨났다 

숲길을 벗어나 603번 지방도를 따라 남하하다 관리에서 농로를 타고 간다. 전국의 평야지대 농로는 대부분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달리기 좋고 차량이나 인적이 드물어 라이딩 코스로 제격이다. 마을과 도로에서 동떨어진 들판 가운데서 바라보는 관조적 풍경도 각별하다. 공도에서는 오가는 차량들 신경 쓰느라 주변에 시선 돌릴 틈이 많지 않다면, 농로에서는 경운기 속도로 풍경 속에 공감각이 녹아들어가 한층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원방조제와 태안화력발전소를 바라보며 포지리 간척지를 종단하면 이제 출발지 원북면소재지 사이에 솟은 망월산(149m) 자락으로 들어서게 된다. 바다도 들도 보이지 않는 완연한 산간 풍경이다. 대밭 울창한 포동고개를 넘으면 사창고개가 자못 아득하다. 사창고개를 넘으면 최후의 관문, 망월산고개(110m)가 기다린다. 시작은 거칠지만 낮은 고도에 희망을 걸다보면 고갯마루가 금방이다. 신나게 다운힐 해서 603번 지방도를 타면 원북면사무소가 금방이다.

대밭이 을씨년스러운 포동고개

마지막 난관인 망월산 고갯마루(110m).  마산리 방면으로 다운힐하면 출발지인 원북면소재지가 지척이다   

 

tip

원북면소재지와 만대항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시간, 체력적 여유가 된다면 국내에서 극히 드문 신두 리해안사구를 함께 돌아보기를 추천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태안 이원반도 일주 5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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