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최고 고도차 952m
- 국내 2위 길 3.51km
- 24년말까지 시한부 운행

상부정거상 산책로에서 바라본 케이블카와 중봉(1436m)~상봉(맨뒤, 1562m) 주능선. 저지대는 벚꽃이 지고 있는 4월 8일이지만 숲은 아직 앙상한 한겨울이다 
상부정거상 산책로에서 바라본 케이블카와 중봉(1436m)~상봉(맨뒤, 1562m) 주능선. 저지대는 벚꽃이 지고 있는 4월 8일이지만 숲은 아직 앙상한 한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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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는 2018 평창올림픽 알파인 스키장 리프트를 재활용했다. 오대천 옆 숙암리에서 주능선의 하봉(1382m) 정상까지 장장 3.51km, 고도차 952m의 압도적인 스케일이다  

‘임도 천국’ 정선 가리왕산(1562m)에 케이블카가 생겼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조성한 알파인스키 경기장 리프트를 보완해 22년 12월 오픈했다. 다만 환경보호 문제로 2024년까지 한시운영이며, 상황을 보고 추후 연장을 검토할 계획이라니 일단은 시한부다. 이 땅에서 케이블카는 여전히 힘들다.

올림픽 당시의 알파인스키장 전경

가리왕산은 웅장한 육산으로 국내 8위의 고봉이다. 8위라고는 하지만 5위 계방산(1579m), 6위 태백산(1567m), 7위 오대산(1563m)과는 차이가 거의 없는 도토리 키재기다. 그 중에서도 가리왕산은 외진 강원 내륙 중심에 자리해서 산악미와 조망이 특히 발군이다. 옛날 맥국(貊國)의 갈왕(葛王 또는 加里王)이 이곳에 성을 쌓고 머물렀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산행지로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으나 원시림 보호를 위해 오래 전부터 임도가 많이 개설되어 MTB 라이더에게는 ‘임도 천국’으로 유명하다. 가리왕산을 중심으로 북쪽 백석산(1365m), 서쪽 청옥산(1257m) 일대까지 종횡무진 이어지는 임도는 총연장이 300km에 달한다.

하부승강장 옆에는 2018 평창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가 열린 것을 기념하는 수호랑과 반다비 조형물이 반겨준다

하부승강장에서 바라본 케이블카. 약 110m 간격으로 60개 캐빈이 산을 오르내린다. 너무 긴데다 중간에서 한번 꺾여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가리왕산 케이블카가 가설된 곳은 주능선 북쪽의 오대천 옆 숙암리에서 하봉(1382m) 정상까지이며 길이는 3.51km로 춘천 삼악산호수케이블카(3.61km)에 이은 국내 2위다. 하지만 하부승강장과 상부승강장 간 고도차는 1000m에 육박하는 952m로 압도적인 국내 1위다. 덕유산과 발왕산, 밀양 얼음골 등 유명 산악케이블카도 고도차는 600~700m선이다.

오전 10시 개장에 맞춰 1등으로 탑승하려고 서둘렀건만 이미 현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와있다. 대체로 노약자가 많아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고산의 풍광을 즐기려는 수요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해외 유명산에 케이블카가 많은 것도 노약자를 위한 배려와 시간이 부족한 관광객을 위해서다. 환경단체는 무조건 반대하지만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상하부 승강장 외에는 사람의 접근을 막을 수 있고, 지주 몇 개면 가능하기에 장기적으로는 환경 보호에도 유리하다. 인간과 상생하지 않는 ‘환경’은 몇 광년 떨어져 있는 별과 다를 게 없다.

눈이 녹아 흙이 드러난 슬로프를 따라 산을 오른다

하부승강장인 숙암역에서는 콩알처럼 매달린 캐빈들이 산기슭을 따라 천천히 오르내린다. 하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케이블카가 워낙 길기도 하지만 중턱에 있는 중앙운전실에서 방향이 살짝 꺾어지기 때문이다.

케이블카의 명가 오스트리아 도펠마이어(Doppelmayr) 기술이라 일단 믿음이 간다. 8인승 캐빈 60대가 움직이니 캐빈 당 거리는 110m 정도다. 관리인은 바람이 거세 속도를 늦춰 운행한다면서 캐빈이 흔들리지 않게 무게중심을 잡도록 단독 탑승을 제한해 노부부와 동승했다. 노부부는 가리왕산 케이블카 소문을 듣고 새벽 4시에 경주를 출발해서 왔다고 한다.

바로 아래 중앙운전실(해발 759m)을 막 지나고 있다. 하부승강장은 저 아래로 까마득하다

최초에 스키장 리프트로 가설되었으니 케이블카는 흙바닥을 드러낸 슬로프를 따라 올라간다. 서울에는 벚꽃이 거의 졌는데 이곳은 이제 막 진달래가 피고 있다. 해발 759m 중앙운전실에서 잠시 속도를 줄이고 문도 자동으로 여닫힌다. 스키장 개장 때는 여기도 중간 출발점이 된다.

중앙운전실을 지나면 케이블카는 능선에 올라서서 조망이 한층 트이고 경사도 심해진다. 고도가 1000m 정도 되자 자작나무숲을 비롯해 숲 전체에 연두빛이나 온기가 아예 없는, 아직 한겨울이다. 산 아래 오대천 건너편으로는 백석봉(1238m) 자락에 은둔한 작은 마을과 고랭지밭이 속살을 드러낸다.

상부승강장에서 바라본 케이블카와 북쪽 조망. 고랭지밭이 드러난 맞은편 백석봉 뒤로 발왕산(1459m)이 우뚝하다. 왼쪽 뒤 구름 그림자를 드리운 고봉은 두타산(박지산, 1391m) 

"정선아, 보고 싶다"... 괜히 나도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상부승강장과 데크 산책로 

마침내 상부승강장, 하봉 정상이다. 외부로 나오니 바로 냉기가 스민다. 하부승강장은 영상 7도였는데 이곳은 0도다. 게다가 강풍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몇 도는 되겠다. 최대한 껴입고 왔건만 아무래도 오래 견디기 어렵겠다.

해발 1382m의 까마득한 고지를 실감한다. 대기가 쨍하지는 않지만 사방으로 펼쳐지는 첩첩한 고산들의 파노라마가 장관이다. 1200m급 산들도 저 아래로 가라앉았고 중봉(1436m) 너머 정상인 상봉(1562m)도 거의 눈높이다. 원래 주능선 따라 등산로가 있지만 케이블카를 통해서는 산행을 못하도록 막아놓았으니 기가 막힌다.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도 개통 직후에는 이랬다가 이용객의 원성이 높아지자 결국 등산로를 연결했는데… 이 무슨 소모성 혼란인가.

정상부에 육백마지기 평탄부를 이고 있는 청옥산(1257m)이 골짜기 건너 눈 아래로 보인다

상부승강장 옥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정상(왼쪽 뒤 최고봉) 방면 주능선. 오른쪽 맨 뒤 희미한 산줄기는 계방산(1579m)

동남쪽 조망은 나무에 좀 가렸다. 북평면 들판과 조양강이 얼핏 보인다. 왼쪽 맨뒤로 청옥산~두타산 능선이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다    

완속 운행으로 30분이나 걸려 도착한 상부정거장은 산뜻한 건물과 옥상 전망대, 주변의 데크산책로까지 잘 조성해 놓았다. 데크산책로에서는 주변을 조망하기 좋지만 강풍과 추위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역시 봄은 사람에게처럼 산야에도 동시에 오지 않는다.

북으로는 계방산~오대산 능선이, 동으로는 청옥산~두타산 능선, 남으로는 함백산~두위봉 능선, 서쪽은 펑퍼짐한 청옥산이 시선을 압도한다. 가히 국내최고의 산악지대 중심부답다. 겨울에는 눈 천국이 펼쳐질 것이고, 밤에는 천상의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질 것이다.

상부승강장 옥상 전망대. 해발 1390m쯤 되겠다. 뒤편으로 가리왕산 정상이 고고하다

주변에 보이는 지명을 파악할 수 있도록 조망 안내판을 설치해놓았다. 전국에 설치된 조망 안내 중 가장 정확하고 자세하다 

해발 1000m 전후로 가리왕산 허리를 돌아나가는 임도. 아무리 짧게 잡아도 60km 이상을 가야 하는 산악코스다. 왼쪽 뒤로 정상이 보인다

하부승강장 일원

하산 길에는 앞서 잘 보지 못한 가리왕산 순환 임도를 확인한다. 산허리를 가르며 아득히 돌아가는 임도는 오래 전 라이딩으로 일주한 적이 있어 반갑다. 임도는 해발 1000m 즈음에서 슬로프를 관통하고 지나는데 눈이 쌓이는 스키시즌에는 어떻게 통과해야할까.

내려올 때도 30분이 걸렸으니 케이블카 탑승시간만 왕복 1시간이다. 그럼에도 요금은 왕복 1만원으로 전국 케이블카 중 가장 싸다. 운영시간은 10시부터 18시까지. 흥미로운 것은 토일에는 일몰과 일출 시간에 맞춘 해넘이(토)와 해맞이(일) 운행을 따로 한다는 점이다. 설경과 일출, 일몰까지 세 번은 더 올 필요가 있겠는데 24년 내에 모두 가능할지….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 자세한 내용은 ‘가리왕산 케이블카’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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