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종성(자유기고가)

2백 년 전 19세기에 태어났다면 나는 몇 살까지 살았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질병이나 상해의 경험으로 볼 때, 살아오다 한번이라도 수술한 사람이라면, 그때 기준으로 보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생을 사는 셈 아닌가. 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에 50년 후 오늘엔 뭐가 나올까? 저 세상에서의 운세일까?

우리말의 모순과 시간의 모순

휴대전화가 없던 젊은 시절, 이름으로만 듣던 선배님과 전화통화를 하고 만나러 가는데,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을 찾으면 된다길래 약속장소에 갔더니 하필 그곳엔 녹색과 청색 차림의 사람이 많아서 난감하여 못 찾고 못 만난 기억이 있다.

'푸르다'는 것은 Blue를 뜻할까? Green을 뜻할까? 나는 모르겠다.

산 것을 잡아먹는 Eagle과 죽은 것을 뜯어먹는 Vulture는 똑 같은 '독수리'일까?

'녹는다'는 것은 물에 녹는 것(Dissolve)인가, 열에 녹는 것(Melt)인가?

'위험'도 그렇다. 실패가능성인 Risk와 사고가능성인 Danger을 그냥 퉁치는 소리다.

비슷한 퉁치기가 엉뚱한 변질을 빚은 게 제비집요리. 제비의 집이 아니라 칼새의 집인데, 하필 칼새를 제비와 같은 한자() 이름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TermiteAnt와 다른데도 '흰개미'라고 이름 붙이다보니 그냥 개미의 한 종류로 통용된 것도 그런 예이리라. 흰말은 말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정말이지 우리말은 퉁치는 게 많은 것 같다. 게다가 최근에는 ()’를 영어로 ‘Very’ 뜻으로 쓴다. 그래서 "Very Good"하면 "개 좋다"로 해석하더라. 자를 붙이면 모든 강조형에 통용되는 판국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 말도 우리말을 쓸 때 매일반이리라 싶다. '''모두 Rice라고 퉁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제비집과 칼새집. 완전히 다른 종인데 한자가 같아 칼새집 요리가 '제비집 요리'가 되었다 
제비집과 칼새집. 완전히 다른 종인데 한자가 같아 칼새집 요리가 '제비집 요리'가 되었다 

재미난 건 이런 혼선은 시간과 관련지어서 자주 발생한다는 거다.

시간과 시각은 다름을 모를 사람이 없다. 이런 차이가 언어에 따라선 24시간의 착오가 생긴다.

특정시점일 경우에는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특정일자일 경우에 BeforeAfter는 시각적 의미가 많아 기재된 당일을 포함하지 않는 반면, 우리가 막연히 갖다 붙이는 이전(以前)과 이후(以後)에는 기재된 당일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금전적 부담이나 법적 책임과 관련될 경우, 자칫 잘못 손대면 큰일 날 수도 있어, 나이가 들수록 영어를 함부로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그래서 'Before 25th'를 번역할 때 25일을 포함하지 않기에 '25일 이전'이 아니라 '25일 되기 전'이라고 해야 하고, 'After 25th''25일 이후'가 아닌 '25일 지나고 나서'로 해야 엉뚱한 문제가 덜 생기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아무리 당일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서 'Before 25th'를 괜히 '24일 이전'이라고 하고 'After 25th'를 괜히 '26일 이후'라고 더 정확히 갖다 붙이려다가는 근거가 희석되는 더 엉뚱한 모순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미래를 당기는 기념식들

예전에는 월급쟁이들의 연말정산을 12월 말 즈음에 했다. 그러다보니 연말정산 이후에 갑자기 생기는 변동은 당연히 반영되지 못하였다. 결국 이를 정확히 반영하기 위하여 아예 다음 년도 1월에 전년도 연말정산을 하니 합리적으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러한 폐습이 남은 곳이 많다. 가령, 연말포상을 하거나 올해의 실적왕을 선정할 때 이를 1220일에 하는 경우에는 1221일부터 31일까지는 평가대상에서 빠진다. , 1222일에 큰 공을 세워봐야 헛방이다. 평가일 이후의 연말까지는 포상대상에서 빠지니 포상일 이후 연말까지는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헛일이라는 거다. 결과는 사후적이므로 1월에 전년도를 평가하고, 전년도 포상을 해야 맞다고 본다.

공무원들 초과근무수당도 12월 지급일 이후 연말까지는 지급대상에서 빠진다. 이런 걸 보면, 각 회계년도의 경비는 그 연도의 세입 또는 수입으로써 충당해야 한다는 원칙도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2월 초에 연말 포상을 해 버리면 나머지 기간의 성과는 어떻게 하나 
12월 초에 연말 포상을 해 버리면 나머지 기간의 성과는 어떻게 하나 

20살 나이 때의 기적

최근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잠깐 멈춰서 담배를 물고는 낙엽 아래 참새들이 꼼지락 거리는 모습을 사진 찍고 있었더니 웬 젊은 애가 자전거 타고 와서 갑자기 인사를 하더라. 순간 담배 피우지 말라고 경고하러 왔나 싶어 긴장했지만 갑자기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는 게 아닌가. "누구지?" 했더니 "만나서 반가우니까 인사한 겁니다"하지 않는가. 뭐 이런 일도 다 있나 싶어 멍하니 있자, "아저씨, 저는 22살인데, 아저씬 몇살이세요?" 하길래 00살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00년생이네요?"하더라.

너무 정확하길래 ", 너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암산을 잘 하냐?"했더니, 대답은 안 하고 "아저씨 자식들은 몇 살이에요?" 되묻는다. "28살하고 26살이다"했더니, 갑자기 자전거를 굴리더니 "안녕히 계세요"하고선 휑하니 가버리더라. 뜬금없이 남의 신상만 털고선 홀연히 가버리는 모습에 허 참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 싶어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일종의 자폐증 환자일 거라고 하더라. 하긴 천재성과 자폐성은 관련이 있으니까. 하지만, 선량하게 생긴 녀석인지라 왠지 세상살이 하면서 짓궂은 일이나 안 당하면서 살길 바래본다.

 

그 녀석이 말한 22살은 만 나이일까? 하긴 요즈음 만 나이로 통용할 거란 얘기가 있다. 하루아침에 현재 나이에다 9999살 더 먹게 생겼다. 하긴, 우리는 음력생일과 양력생일을 따로 쇠고 있는 것까지 감안하면 뭔가 통일하긴 해야겠다.

이 때문에 나는 음력표시 달력이 없는 곳에서 생활하다가 자칫 날짜를 놓치면 멀쩡한 자식들을 불효자로 만들까봐 양력생일로 쇠자고 한다. 안 그래도 시차계산까지 해야 하는데, 거기에다 음력까지 따진다면 불합리할 것 같아서다. 대신 부모님께는 음력생일 그대로 쇠어드린다.

생각난 김에 음력과 양력을 병용하다 보니 생기는 신기한 나이 현상에 대하여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직장동료가 자신의 지난 날을 파란만장하게 얘기하면서, 젊은 시절 무슨 뜻이 있어 절에서 묵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찾아와 떡과 미역국을 주며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물으시더란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오늘이 네 양력생일과 음력생일이 만나는 날이다"라고 하셨단다. 얘기를 듣고 있던 내가 "혹시 그 때가 20살 때 아니었나요?"라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알았냐면서 자신의 심오한 과거가 유치한 일탈로 읽힌 줄 알고 당황하더란 거다.

그래서 무서워하지 말라면서 설명하길, 양력과 음력을 조절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197윤법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나고 19년 주기인 우리나이로 20, 39, 58, 77살과 96살에는 음력생일과 양력생일이 만난다고 했다. 물론 윤달 경과여부에 따라서 일치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일치한다고 설명해줬다. 설마 39살 때 처자식 놔두고 집 나갈 턱이 없고 해서 20살로 점찍어 본 거라고 했다. 그렇게 떠벌렸던 생각을 하며 이제 나 자신도 막상 그런 나이의 3번째 일치되는 해를 맞이해보니, 생일은 죽을 날까지 남은 세월이 1년 줄어들었음을 알리는 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력과 음력을 조절하기 위한 19년 7윤법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나이로 20, 39, 58, 77, 96세에 음력생일과 양력생일이 만난다
양력과 음력을 조절하기 위한 19년 7윤법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나이로 20, 39, 58, 77, 96세에 음력생일과 양력생일이 만난다

남의 시간에 대한 무감각

무능하면 내세울 게 나이라고 했던가. 나이가 무기요, 세월이 훈장이라. 그러면서도 우리에겐 남의 세월을 계산하는데 둔감한 측면이 많다.

가령, 내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일할 때였는데, 본대회가 임박하여 외국의 경기시설 관리자를 채용하려 했더니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 인원을 충당했는데, 그 이유가 뭘까? 바로 유럽 경기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겨우 2개월 일하려고 20년짜리 직장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반년 전에 의사를 타진하여 유럽현지에서 그 사람의 공석에 따른 각종 스케줄을 미리 조정해두었어야 했다는 거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원조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사가 쓰리마일 사고 이후 원전건설을 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원조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사가 쓰리마일 사고 이후 원전건설을 하지 않는다

다른 예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원조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사가 쓰리마일 사고 이후 원전건설을 하지 않다보니, 이제는 원전을 건설하려 해도 아예 원전을 건설하지 못하는 회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겨우 5년짜리 일을 하려고 멀쩡한 20년짜리 직장을 때려치우고 올 사람이 있겠는가?

이를 우리나라의 탈원전에서 원전복원으로 돌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리라. 이미 다른 곳의 20년 짜리 밥자리로 옮긴 사람들에게 일시적 일감에 오도록 만들기가 쉬울까? 1년에 부품 몇개 팔려고 생산라인을 유지할 회사가 있을까? 확실한 사후관리나 지속적 보장이 아니고선 다시 사람을 모으기 어려울 거다. 게다가 그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다시 좌파가 집권하여 탈원전으로 되돌아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경우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당장 젊은 내 아들부터 원자력기사 자격을 가지고도 원자력부문에 일하지 않으려 하는데, 집안의 가장인 사람의 계산은 오죽할까 싶다.

그렇다. 우리는 상대방의 시간을 거의 인식하지 않는다. 어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과학부문 노벨상이 나오기 어려운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리라. 힘들게 공부하고는 5년 연구계약 종료 후 평생실업 되는 상황에서 누가 그런 연구직종을 택하겠는가.

남이 맡은 일은 반드시 저절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가볍게 취급하는 습관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 계산은 틀리기 쉽기 때문이다. 인사(人士)로 대우받지 못하고 인력(人力)으로 취급받는 분야의 사람들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할 때라고 본다. 사업이란 게 사람 문제 아닌가.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