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차 1080m 업힐,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형제봉 활공장(1095m) 정상. 저 아래로 산줄기 사이에 악양들이 길게 펼쳐지고,  악양들을 감싼 칠성봉(906m, 왼쪽)과 구재봉(774m, 오른쪽) 능선이 웅장하다
형제봉 활공장(1095m) 정상. 저 아래로 산줄기 사이에 악양들이 길게 펼쳐지고,  악양들을 감싼 칠성봉(906m, 왼쪽)과 구재봉(774m, 오른쪽) 능선이 웅장하다

섬진강 옆에 솟은 지리산 봉우리는 특히 높고 웅장하다. 구례읍이 해발 30m, 화개장터는 20m도 되지 않는 거의 해변수준의 저지대여서 상대적으로 산이 더 높고 웅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중 압권은 노고단(1507m)이고 그 다음은 왕시리봉(1242m)을 들 수 있다. 화개장터와 악양 사이에 솟은 형제봉(1116m)은 세 번째로 꼽을 만하다.

형제봉은 정상부의 활공장까지 임도가 나 있어 1095m까지 업힐이 가능한 것이 큰 장점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내는 임도 라이딩이 금지돼 있으나 앞서 꼽은 세 봉우리 중 형제봉만이 국립공원 경계선 밖인 것도 자전거에는 천운이다.

자전거생활 창간 초기에 형제봉을 오른 적이 있는데 20년 만에 다시 찾는 감회가 특별하다.

괴나리봇짐을 진 장돌뱅이 석상이 선 화개장터 입구. 세련되고 깨끗하게 단장되어 평일에도 관광객이 많다 

출발지인 화개장터는 평일인데도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예전보다 세련되고 깨끗하게 단장되었다. 이 작은 강변마을에 딸린 광대한 주차장만 봐도 인기를 알 만하다. 영호남의 경계이자 지리산의 초입이며, 청정 섬진강을 낀 입지는 삼중 매혹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화개천 좌우 모두 십리벚꽃길로 유명하다. 벚꽃이 져도 숲 그늘이 져서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 차량통행이 다소 많아 풍경 즐길 여유는 별로 없다.

화개장터에서 4km쯤 북상한 신촌마을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접어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형제봉 업힐이 시작된다. 섬진강에서 4km 이상 올라왔건만 신촌마을 초입이 80m 밖에 되지 않으니 아직도 1000m 이상을 올라야 한다. 국내에서 순수 고도차가 1000m를 넘는 고개나 업힐은 극히 드물다. 대관령(832m), 한계령(920m), 운두령(1089m), 만항재(1330m) 등등 내로라하는 큰 고개도 산 아래와 고갯마루 간 비고는 700~800m가 대부분이다. 한라산 1100고지도 제주시내 외곽을 기준으로 잡으면 1000m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노고단 허리를 넘는 성삼재(1090m)도 섬진강 본류 근처에서 출발해야 1000m를 겨우 넘으니 형제봉 업힐의 위엄(?)을 짐작할 것이다.

본격적인 업힐이 시작되는 신촌마을 입구. 뒤편으로 정상부가 까마득히 솟았는데 언제 올라갈지 아득하다  

‘이건 무리야….’ 20%를 넘나드는 극심한 오르막이 끝도 없이 이어지니 아무리 eMTB라도 힘에 부쳐 가다쉬다를 거듭한다. 그래도 주민들은 급사면까지 차밭으로 개간해 한창 작업 중이다. 형제봉 기슭은 대단위 차밭으로 뒤덮여 하동 녹차의 산지가 되고 있다.

경사가 심하면 힘든 대신 고도는 빨리 오르기 마련인데 고도차가 워낙 크니 너무나 진척이 더디다. 한참을 올라 마을을 벗어났건만 이제 겨우 해발 300m라니. 역시 지리산답게 수림이 울창해 협곡을 흐르는 수량은 대단하다. 지리산에서 물 걱정은 없다.

길가에 연등이 걸린 걸 보니 절이 있나 보다. 해발 700~800m의 깊은 계곡 안에 자리 잡은 미륵선원에서 내건 모양이다. 세속과 완전히 동떨어졌으니 진정한 구도자를 위한 선원(禪院)으로 적지다. 삶과 우주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진하는 구도자가 세속을 등져야 하는 것은 싯다르타의 예에서 보듯 필수 조건이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욕망인 성욕과 식욕을 다스려 동물적 감각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기관은 사실 이 두 가지 욕망의 충족을 위한 부속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하등 동물로 갈수록 더욱 그렇다. 생존하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이 두 가지의 해결에 쏟아 붓는 것이 동물이고 생명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실상이 그렇다. 고차원의 사색을 위해서는 이 근본욕망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도 이 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육체적 정신적 ‘잉여 욕망’ 덕분에 가능했다. 싯다르타는 이 길을 갔고 그의 후예들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밝혀두건대, 나는 불교도가 아니며 위대한 철학자로서 싯다르타를 존경할 따름이다.

길은 좁은 협곡을 따라 오른다. 골짜기 저편은 황장산(948m)

마을을 벗어난 급경사지에도 차밭을 일구고 있다. 경사도만으로 힘든 작업이 짐작된다  

미륵선원 입구에서 고도 700m를 넘기자 자신감을 되찾았다. 가끔 조망도 트여서 뒤돌아보니 건너편 황장산(948m) 뒤로 반야봉(1732m)을 필두로 한 지리산 주능선이 허공의 단절선을 그린다. 왕시루봉, 노고단, 불무장등, 반야봉, 토끼봉 등등 친숙한 봉우리들이 반갑다. 산이야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인간이 이름 붙이고 구분지은 것뿐이지만 다시 알아볼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반야봉을 향해 패인 목통골이 너무나 깊어 보인다. 김수로왕의 7왕자가 출가해 성불했다는 칠불암이 저기 어딜 텐데…. 지금도 이리 깊고 외진데 1900년 전 지리산에 든다는 것은 세상을 완전히 등진다는 뜻이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기야 지금도 지리산 골골에 숨어사는 도인과 자연인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해발 700m를 넘어가면 지리산 주릉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노고단(1507m)~반야봉(1732m) 구간이 보인다

   

형제봉은 사면의 경사가 급해 조망이 트이는 곳은 고도감이 대단하다. 마치 허공을 달리는 듯 

드디어 해발 790m 능선에 오르니 작은 공터와 화장실이 있고 자동차로 올라온 노부부가 쉬다가 손을 흔들어준다. 잠시 후 복잡한 사거리가 나오는데, 아스팔트 포장된 우측은 부춘리 방면 하산로이고, 왼쪽 차단기 방면이 정상 방면, 정면의 비포장길은 막다른길이다. 마음은 거의 다 온 것 같지만 아직 300m나 더 올라야 한다.

일대의 완경사지는 조림지로 예전보다 숲이 많이 자랐다. 한발 한발 전진해 900m를 돌파하고 이윽고 1000m를 넘어 정상으로 치고 오른다. 정상은 1km 남쪽에 있으나 높이차가 거의 없다. 마침내 숲이 사라지고 풀밭을 이룬 활공장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무덤 한 쌍이 있고 북쪽 방면에는 데크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그냥 감탄이고 환호다. 소리쳐 내지르지 않아도 동공은 확대되고 몸은 그 자리에 멈춰 발아래 펼쳐진 세상에 대응한다. 말굽형 협곡에 고요히 가라앉은 악양들이 평화롭고 섬진강은 저 멀리 가물거린다. 북으로 고개를 돌리니 지리산 제1봉인 천왕봉(1915m)이 고고한 모습을 드러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 주능선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은 높고 골은 깊은데 바위는 거의 없는, 흙더미 육산으로 빚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험산을 대자연이 구현한 모습이 지금 눈앞에 광활하다.

 

급전직하로 치닫는 칼날 능선 아래로 지나온 정금리가 살짝 보인다. 그 뒤로 촛대봉(728m)~황장산(948m) 능선이, 맨 뒤에는 왕시리봉(1242m)~노고단 능선이 겹친다해발 850m의 조림지 초입에서. 아래 헤어핀 코너를 통해 올라왔다. 저 멀리 황장산과 왕시리봉 능선이 겹쳐 있다  

드디어 활공장에 도착했다. 자전거도 지쳐 제대로 서지 못해 기우뚱. 왼쪽 봉우리가 형제봉 정상(1116m)이고, 오른쪽 뒤는 광양 백운산(1222m)

데크전망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지치기도 했지만 그냥 망연히 누워 고공의 청정공기를 호흡하며 비스듬한 눈길로 지리주릉을 관조하고 싶다. 난간 사이 장방형 틈으로 주릉이 아득히 흐른다. 골짜기와 지능선은 그림자와 연무에 파스텔 톤으로 뭉개지고 오직 주릉만이 창공을 배경으로 가녀린 선을 남긴다. 언젠가 힘겹게 걸었던 저 길, 내 발에 밟혔던 돌과 내 손에 잡혔던 나무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겠지만 나는 세월과 세파에 지쳐 이렇게 흐느적댄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거울을 보다가 늘어난 흰 머리에 놀라 “언제 이런 가을 서릿발 같은 백발이 생겼나(何處得秋霜)” 탄식했듯이, 어느날 문득 우리는 시간에 잠식당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경악한다. 개인은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늙어 있다. 의구(依舊)한 거산 앞에 자신의 초라와 한계를 절감하지만 음울한 탄식은 잠깐이고, 금방 생동의 감탄으로 감흥이 일변한다. 세상과 동떨어진 산정에서 시간과 대자연,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대에 찬 흥분도 불길한 좌절감도 없는 심상(心常)의 고요만이 젖어든다.

이 거대한 산을 뒤덮은 숲과 그 속에 깃든 온갖 생명들도 시간에 따라 사라지고 바뀌지만 이 순간의 관점에서는 영원한 항상으로 느껴진다. 나 역시 저 나무, 저 벌레처럼 스쳐갈 뿐이고 대자연은 나의 먼지, 나의 후예를 재료 삼아 늘 지금 같은 모습을 꾸밀 것이다.

‘자연이여 그대여, 나를 잊지 마오’ 하는 애원은 허망한 욕심이자 오해에 기인한 자학이다. 내가 잊는데 그가 나를 기억할까, 내가 없는데 그가 기억한들 무슨 의미.

저 멀리... 천왕봉이다.  창공에는 조각구름 하나 둥실할 뿐 우주의 변두리다. 가까이부터 하동독바위, 삼신봉, 촛대봉이 겹치고 이윽고 천왕봉으로 치닫는 산줄기의 군무... 지구는 바다뿐 아니라 육지에도 파동을 만들되 영원한 부동을 부여해 뭇 생명이 기대살 수 있는 안정감과 포용력을 선사했다

   

호강골 깊고 높은 상류에 자리한 미륵선원(오른쪽 아래). 세속과 절된 최적의 수행공간이다지리산 주능선 파노라마. 맨왼쪽 반야봉에서 맨우측 천왕봉까지 하늘 높이 넘실대며 천상을 울리는 대지의 선율이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길은 다르지만 올라온 그만큼 해발 1000m 이상을 급전직하 하는 형제봉 다운힐은 손가락과 브레이크에 극단의 부하를 안긴다. 때문에 수시로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한다. 성능 좋은 디스크브레이크라고 해도 과열이 걱정될 정도여서 중간 중간 쉬어야 하고, 브레이크 레버를 잡은 손가락이 아파 또 쉬어야 한다. 급변하는 경관에 시선이 쏠려 자세히 보려면 역시 쉬어야 하고.

첫 민가가 등장하면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무려 해발 550m나 되는 고지니까 아직도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민가와 암자, 펜션 등이 하나둘 스쳐가는 협곡 다운힐은 부춘마을을 지나야 왕복 2차로 도로가 나오면서 확실히 세속으로 귀환한 느낌을 준다. 부춘마을도 250m나 되는 고지다. 하산이 끝나는 섬진강변이 해발 20m 이하라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해변으로 내려간다.

‘풍요로운 봄’이라는 부춘리(富春里)는 협곡이긴 하지만 남향이라 밝고 온화하다. 저지대는 작물 중에 가장 기품 있는 형태미를 보여주는 차밭이 가득해 격조마저 어려 있다. 섬진강을 따라 하동포구 팔십리와 함께 하는 19번 국도는 왕복 4차로로 확장되어 있고 난간으로 구분된 자전거도로까지 조성해 놓았다. 화개장터로 돌아가는 길은 그야 말로 룰루랄라. 철시를 앞둔 장터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마지막 남은 땀방울마저 쏟아내니, 위장은 찼으되 나는 더 비었다.

하산길도 기나긴 급경사 협곡 다운힐이다. 이 높은 데까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면으로 백운산이 내내 바라보인다 

거의 다 내려온 한밭제다 차밭 뒤로 올려다본 형제봉. 1000m 이상을  급전직하 했다  

섬진강변 19번 국도를 타고 화개장터로 돌아간다. 별도의 자전거도로가 나 있어 편안하다 

 

tip

화개장터 외곽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화개장터 일원에 식당, 편의점, 모텔과 펜션이 모여 있다. 코스 도중에는 계곡수 외에는 물이 없으므로 식수를 충분히 준비하고, 힘들고 긴 업힐을 각오해야 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하동 형제봉 일주 30km

* 업힐과 다운힐뿐인 코스 프로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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