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종성(자유기고가)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죽지만 않는다면 전쟁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인간은 죽음 없는 전쟁처벌 없는 범죄를 매우 선호한다. 도덕적 일탈을 즐기고 싶은데 위험과 처벌은 무섭다는 뜻이리라.
일례로 의병을 모으면 잘 안 모인다. 잘 해야 본전 식으로 승률이 낮아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을 때 사람들이 도통 모이지 않아 결국 자신의 집 노비들부터 신분해방과 재산분배를 내걸고 시작했고, 왜군을 상대로 몇 번 승리를 거두자 그제야 사람들이 모여든 것으로 안다.

곽재우 장군은 의병을 모을 때 사람들이 도통 모이지 않아 결국 자신의 집 노비들부터 신분해방과 재산분배를 내걸고 시작했다 
곽재우 장군은 의병을 모을 때 사람들이 도통 모이지 않아 결국 자신의 집 노비들부터 신분해방과 재산분배를 내걸고 시작했다 

반면, 혼란기에 시위꾼은 잘 모인다. 안 죽을 것은 물론이고 군중속의 은닉 때문에 처벌받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전을 더욱더 보장(?)해주기 위해 언론은 시위대의 탈선보다는 경찰의 제압방식 위주로만 문제 삼아 경찰을 바보로 만든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적·시사적으로도 많다.

먼저 몽고군이 그 적은 숫자로 어떻게 유럽까지 치달았을까? 이는 이기고 있었기 때문이고, 여기에 편승해준 이민족이 많았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이기는 편에 끼면 자신은 죽지 않고 승리를 누리는 만족을 얻을 수 있고 공을 세우기도 쉽다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몽고군 측의 사망자를 보면 몽고인이 아닌 유럽인이 꽤 많더라는 말도 있더라,

얼마 전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IS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이상하게도 서구 선진국 청소년들이 많더라는 거다. 이는 그 청소년들이 행복한 일상이 지겨워 일탈을 꿈꾸다가 은닉성 때문에 처벌 없는 범죄이면서 죽음 없는 전쟁으로 여겨진 IS전쟁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치 유태인 부잣집 자식들이 공산주의를 만든 것과 같다.

혼란기에 시위꾼은 잘 모인다. 군중속의 은닉 때문에 처벌받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혼란기에 시위꾼은 잘 모인다. 군중속의 은닉 때문에 처벌받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에도 이런 것과 비슷한 게 많다. 바로 영화, 게임, 데모다.

모험을 다룬 드라마를 생각해보자. 매 주마다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을 보면, 작가에 의하여 불사신으로 보장된 주인공의 모험에 자신의 입장을 투영하고 싶기에 흥미가 끌리는 것 아닐까?

게임은 자신의 신체적 죽음으로부터 절대로 안전한 전쟁이다. 그러니 용감한 것이다. 다만, 건강이 문제일 뿐이다. 마치 광우병 걸리려고 소고기 먹다가 과다섭취로 인한 성인병으로 먼저 죽듯이, 실은 게임도 며칠 밤새도록 하면 적대 케릭터가 아닌 산소 부채에 따른 뇌경색으로 사망하거나 거북목이 된다.

비록 요즘은 그 방식이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예전 데모는 군중 속의 은닉 때문에 처벌로부터 보호된다는 생각에서 일상에서 저지를 수 없는 가해행위를 실현해 먹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남의 상가에 언제 돌 던져먹고 화끈하게 불장난 저질러보겠는가? 예전에 화염병 던지는 애들이 대부분 복면을 착용한 것도 그 속내라고 본다.

요즈음 드러내놓고 반역질에 대담한 일부 사람도 알고 보면 지금까지 그들의 반역질에 대한 처벌로부터 그들의 안위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안전기준으로 용감한 건지, 도덕기준으로 용감한 건지 생각해 볼 문제다.

냉전과 평화

중공에서 반도체 철수하는 문제와 우크라이나 무기지원을 두고 무슨 큰 난리인양 시끄럽게 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무슨 냉전구도어쩌고 하는데, 냉전이 어때서? 냉전이 얼마나 좋은 건데!

바다의 반대가 육지이고, 하늘의 반대가 땅이라면, 바다와 하늘은 어떤 관계인가? 무관한 사이다. 바다와 하늘은 땅을 두고 설정되었기에 하늘과 바다 사이에는 비교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에선 '바다 위를 난다'고 하는데 비해 땅에선 '하늘을 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전쟁의 반대가 평화이고 열전(熱戰)의 반대가 냉전(冷戰)이라면, 냉전과 평화는 어떤 관계인가? 미안하게도 이건 같다. 열전 그 자체가 전쟁이기에 비교축이 같기 때문이다. 냉전은 전쟁을 예방하려는 평화의 적극적 형태다.

냉전이란 말은 딴에는 먹물 좀 먹은 사람이 평화상태를 괜스레 심각하게 표현한 소리에 불과하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방어책을 구사한 상태이므로 그게 바로 진정한 적극적 평화상태라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유진영의 방어적 태도에만 무슨 원인제공행위처럼 덮어씌울 때 냉전이란 굴레를 뒤집어씌우는 반면, 공산진영의 공세적 태도에는 이상하게도 국익우선 식으로 희석되었다. 하긴 한국이 중공을 자극한다며 중공에 겁 먹어주자는 호들갑은 떨어도, 중공이 한국을 자극한다며 한국이 화내자는 호들갑은 떨지 않더만.

친밀한 세력 간의 평화는 우호적 교류로 이루어지지만, 적대세력 간의 평화는 힘의 균형으로 보장된다. 그 힘의 균형에서 조금이라도 우월한 위치를 점하여 위협받지 않으려는 노력이 냉전이며, 냉전은 공포의 균형으로 만들어진 평화다.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우려는 없애니 그 얼마나 좋은가. 그게 적대관계 속의 현실적인 평화라는 거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요즈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진영이 발칵 뒤집혔다. 1990년대에 공산권이 무너졌다고 냉전이 종식되었다며 군대조직과 군수산업을 와해시켜놓다시피 하고 평화에 절어 살다가 막상 러시아의 침공을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그 동안 NATO를 유명무실하게 방치해두고, 재미삼아 찔러보던 반미장난도 재고해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경제력과 동원력의 차이를 절감한 것이다.

이럴 때, 필자가 예전에 지목한 길목국가 폴란드가 중심국가로 도약하려고 꿈틀거리고 있다. 방산협력에 대한 서유럽 국가들의 냉소와 미국의 미온적 태도를 박차고 아예 한국 K방산에서 찾고는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올인하는데, 폴란드에겐 당면한 러시아의 침공도 침공이지만, 서유럽의 수준을 절대 넘볼 수 없도록 폴란드의 도약을 제한하려던 서유럽의 냉소와 멸시에 대한 민족적 분노도 무시 못 할 요인이라고 본다. 그런 폴란드가 미국과 서유럽 아니면 절대 손을 뻗을 곳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머지 카드라고 여겼던 일본도 아닌 한국을 택한 신의 한 수를 보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 세상사는 겪어봐야 아는 모양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 핸드백과 독일 자동차 빼고 유럽제품 팔리는 것이 있나 싶다. 그것도 우리에게 없어서 사는 게 아니라 끌려서 사는 것일 뿐이며, 과거 일본 가전제품처럼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면 별스레 필요도 없는 것들 아닌가. 꼴에 무슨 서유럽의 자존심인가. 폴란드의 선택은 절묘하게 옳았다.

러시아 천연가스와 중동석유도 그렇다. 언제까지 남들이 코를 꿰어줄 것 같은가? 이미 사우디의 1인당 GDP가 우리나라보다 아래이고 국가GDP는 우리의 반 조금 더 되는 정도 밖에 안 된다. 뭐 네옴프로젝트? 그건 연불이다. 일시불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폴란드를 발흥시키는 단초가 된다면, 우리에겐 뭐가 될까? 코로나로 매장영업이 죽을 쑬 동안 주중의 고속도로를 택배트럭이 꽉 메울 정도로 택배가 발흥하듯, 너의 아픔은 나의 기쁨 같은 법칙이 성립하려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가전제품 약탈 관련 통신내용이 공개되는 바람에 엉뚱하게 LG와 삼성의 광고역할도 톡톡히 해주었고, 폴란드를 비롯한 동구권의 신규 무장으로 K방산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한 어부지리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얻어맞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처지를 마냥 좋아하자는 소리는 아니지만.

연불로 부풀려진 무기시장? 그리 크지 않다

요즈음 보험회사를 비롯 각종 금융권에서는 5년짜리 적금으로서 5.6% 이율을 내놓은 상품이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엔 빛 좋은 개살구다. 55.6% 이율이 맞기는 하다. 그런데 그게 연간으로 따지면 1% 남짓이라는 거다. , 일반 1%대 적금을 5년짜리로 했을 뿐이다. 웃기는 건 연리 1%대라고 솔직하게 말한 적금은 거의 안 팔린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연불과 일시불의 차이에 가리워진 속임수를 볼 수 있다.

무기거래를 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가령, 무기도입 사업들 보면 대개 40억 달러짜리가 많았는데, 그것도 일시불이 아닌 5년짜리 연불계약이어서 연간 지불액은 겨우 8억 달러다. 우리나라 수출액이 연간 6천억불이니, 우리 수출액의 겨우 0.13% 밖에 안 된다. , 우리 경제규모에 비하면 푼돈이라는 거다. 만일 국방예산 60조원의 절반인 30조원을 매년 무기도입비로 지출한다 해도, 그래봐야 수출액의 4.2% 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왜 무기시장에 대하여는 과장된 형용사가 많을까? 이는 과거에 무기시장의 비중이 실제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70년대에는 무기, 마약, 석유, 식량이 국제거래 비중의 수위를 차지했다. 거기에다 모두가 유상인 것은 아니지만 냉전상황인지라 무기교역은 지금보다 훨씬 활발했다. 그러다가 자동차, 반도체, IT기기, 첨단가전 등의 발달로 이들 4대 품목의 비중이 계속 하락하였고, 2000년대 넘어서서는 마약 빼고는 그리 관심을 못 끌게 되었다. 게다가 걸프전·이라크전·아프간전이 끝나고 나서 대규모 전면전 같은 전쟁이 없다 보니 무기시장은 더욱 위축되었고, 단가는 비쌀지 몰라도 거래량이 적어서 국제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맞춰 세계군수업체들도 대량생산 체제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저 남북분단 때문에 방산부문을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만 소뒷걸음질 하다 쥐 밟는 행운을 얻긴 했지만, 우리나라도 무역량 대비 무기시장은 여전히 작다. 방송엔 대박 터뜨린 것처럼 보도해도 대부분 연불규모이기에 연간규모로 따지면 다른 업종에 비하여 그리 크지 않다.

오일달러와 음모론

요즈음은 페트로달러(Petro Dollar)라고 하는 중동의 오일달러(Oil Dollar)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 구축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달러의 불환조치에 따른 가치보전 방법으로 중동의 안정을 담보로 석유거래에 있어 달러를 결재통화로 채택하도록 조치한 것이 오일달러이며, 오일달러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데 핵심이다. , 불환지폐가 된 달러의 태환대상은 금이 아니라 이젠 '미 해군에 의한 안보지원'인 것이다.

여기서 음모론자들은 미국이 중동의 석유를 탐하려고 중동의 전쟁에 개입한다고 하는데, 어불성설이다. 그럼 걸프전이나 이라크전 이후 미국이 이라크의 원유를 공짜로 가져갔단 말인가? 아니다. 그냥 남들처럼 돈 주고 사갔다. 그렇다고 중동의 석유가 미국의 국내수요에 큰 비중을 차지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셰일석유 본격생산 이전에도 미국은 자체 석유생산량이 세계적이었고, 그 부족분에 대한 수입에 있어서도 가까운 캐나다 위주였고 먼 중동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저 중동의 석유거래가 달러로만 결재되고 있으면 중동은 별스럽지 않았다.

여기에다 음모론자들은 그러한 오일달러가 결국 중동에 대한 미국의 무기수출로 회수된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럴까?

사우디의 미국으로만 수출하는 석유금액에 대해서만 본다면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을 정도이고, 사우디가 세계로 수출하는 석유금액과 비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한다. 어차피 세계무기거래량 자체가 무역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의 무기수입은 절대금액으론 클지 모르나, 석유로 벌어들인 달러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다. 남은 달러는 그냥 뉴욕 월가로 간다.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인지, 요즈음 미국 내 셰일석유의 생산에 따른 중동의존성 저하와 PC주의를 표방한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착오 때문에 석유거래에 있어 위안화를 채택하겠다는 입장까지 등장하여 오일달러의 지위가 무색해지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전쟁의 원인이 되리라고 본다. 위안화 거래 이전에 이미 중국산 무기를 수입하는데서 알게 모르게 중동은 미국의 적대세력으로 변질되어 감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무슨 다른 큰 그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방위비 비중이 높을수록 경제성장은 높았다

냉전 어쩌고 빈정거리는 자들은 이상하게도 반전론자들과 동일인이고, 그들은 전차 한대면 교실을 몇개나 짓는다는 소리를 자주 했었다. 그럼 그 전차를 만들면 그만한 돈이 그냥 사라진다는 뜻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상식적으로 하청단계 납품업체의 매출과 인건비 등을 통하여 민간경제로 환류되는 것 아닌가? 다른 재정지출과 마찬가지로 부문별 불균형문제 정도만 나타날 뿐, 절대로 민간경제에 특별한 마이너스 요인은 아니다. 바로 시장경제체제의 산업연관효과 아닌가. 거기에다 승수효과(乘數效果)를 감안하면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 되면 되었지 절대 마이너스 요인은 아니다.

이러한 승수효과의 반대말이 구축효과(驅逐效果)인데, 세율이나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총량의 위축을 설명할 때 적용하지만, 이를 계획경제체제에 적용하면 오히려 아주 잘 맞다. 구소련이 미국과 군비경쟁 하다가 경제가 주저앉게 된 것을 보면, 철저히 대가를 지급하는 시장경제체제와는 달리 계획경제체제 하에서는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잦아 연관부문의 희생이 많이 수반되는데, 이 때문에 승수효과가 1보다 작아져 경제총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제국주의가 성행할 때 그 많은 군비지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제가 위축되었던가? 절대 아니지 않은가! 재정지출을 민간경제에 환류 시키는 통로로 군수산업이 선택되었을 뿐이고, 민간경제는 그 연관효과에 따른 승수의 덕으로 더 번영했다. 우리나라도 경제성장률이 높았을 때 방위비 비중이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저출산으로 폐교하는 학교도 많은데 무슨 교실부족 타령인가.

난 군용이 좋다

언젠가 단체등산을 갔는데, 나는 목이 약간 있는 검정 등산화를 신고 갔는데, 그 등산화는 바깥이 스웨이드 처리된 게 아니라 구두처럼 반질반질한 것이었다. 그걸 식당에 들어가느라 잠시 벗었는데, 형수들이 군화 신고 왔다며 깔깔대고 웃는 것이었다.

 

필자가 착용하는 시계 

왜 군용이면 웃기는 걸까? 그건 똑똑하다고 여겨준 누가 비웃으니까 따라서 비웃게 되어버린 편승효과(Bandwagon Effect)가 아예 의식 속에 박힌 것 아닐까 한다. 마치 단체급식이 음식점 식사보다 더 질이 좋은데도 짠밥이라며 비하하는 것이나, 사무실에 있는 맛있는 믹스커피 놔두고 억지로 밖에 가서 아메리카노 뽑아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콩깍지를 벗겨내는 데는 가난이 약이리라.

왜 군대를 우습게 여겨야 할까? 이는 군대를 장악하려는 자에 의한 수작 때문이다. 악역 되기를 두려워하는 리더의 문제점을 아주 잘 악용한 중국의 고사가 있다.

송나라 재상이 된 자한이 송 환공에게 칭찬하고 상주는 일은 백성들이 좋아함으로 주군께서 하시고, 처단하고 형별을 내리는 일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므로 신이 맡아 백성들의 원망을 감당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송환공이 훌륭하도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그대는 나쁜 사람이 되는 구나!”라고 말하면서 자한의 청을 허락했다. 그 후 사람들은 송 환공에 대한 은혜로움보다 자한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서 자한에게 복종하게 되어 자한은 송나라의 권력을 잠식하고 나중에는 결국 송나라 군주의 권력을 빼앗았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그렇게 평소에 군을 혐오하는 세력이 막상 정권을 잡으니 군에다 그들의 동생들 위주로 심었고, 그렇게도 반군적이었던 사람들이 국방위 위주로 국회를 장악하더라는 것 말이다. “네가 가진 칼은 흉기이니 버려야 돼, 이리 줘하고선 그 칼을 뺏어다 거꾸로 겨누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반미주의자들도 그렇다. 반미주의자일수록 미국으로 이주해서 살려는 경향이 강하고, 하다못해 자녀유학을 미국 위주로 보낸다. 결국 그들의 반미는 남들이 미국에 가지 못하게 하려는 독점욕에서 우러난 수작에 불과한 것인가? 남의 손에 있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남에게 혐오하게 하여 손 놓게 하려는 사기 밖에 더 되었나 싶다.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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