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기가 천왕봉이다

금대암 앞뜰의 놀라운 조망. 중봉~천왕봉~제석봉이 비슷한 높이로 곧장 마주보인다. 전나무 뒤는 창암산(923m)
금대암 앞뜰의 놀라운 조망. 중봉~천왕봉~제석봉이 비슷한 높이로 곧장 마주보인다. 전나무 뒤는 창암산(923m)

지리산을, 특히 천왕봉을 가장 가까이서 직면할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오래 전 그런 고민을 하다가 찾은 곳이 함양 금대산(852m)의 가파른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금대암이다. 금대산은 지리산 북쪽 조망대로 유명한 삼봉산(1187m)에서 남쪽으로 한층 가까이 흘러내려 지리산 줄기와는 임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금대암은 임천 가에서 가파르게 솟은 금대산 중턱, 해발 660m 지점에서 남쪽으로 천왕봉을 직시하고 있다. 처음 절터를 잡을 때부터 천왕봉을 의식했음이 틀림없다. 천왕봉이 자아내는 고고한 기세와 맞서며 수행의지를 불태우지 않았을까.

금대암(金臺庵)은 작은 암자지만 역사는 만만치 않다. 656년(신라 무열왕3)에 행우(行宇)가 창건하고 도선국사(道詵國師), 진각국사 혜심(慧諶), 서산대사 등 쟁쟁한 고승들이 수행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60년에 중건했다. 뜰아래 전나무는 수령 500년에 높이가 40m에 이르러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랜 전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전나무도 천왕봉과 키재기를 하면서 이렇게 높게 자라지 않았을까.

금대암과 더불어 지리산 조망대로 이름 높은 오도재(773m)도 함께 돌아본다. 이번 코스는 큰 고개를 여러 번 올라야 해서니 악전고투를 각오하되, 천왕봉을 실컷 볼 수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자.

마천~인월 간 도로변에서 시작되는 금대암 가는 길. '천왕봉 제일전망대'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임천변에 있는 마천면소재지를 기점으로 잡는다. 지리산 주변은 대체로 저지대지만 이곳은 워낙 깊은 산속이고 내륙의 북사면이라 고도는 280m로 남쪽의 섬진강변보다 훨씬 높다. 백무동, 칠선골 같은 북사면의 큰 계곡과 등산 코스의 거점이기도 하다.

마천에서 남원 인월 방면으로 1km 가면 ‘천왕봉 제일전망대 금대암’ 안내판이 여럿 나온다. 몇 년 전에만 해도 없던 것인데,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모양이다. 암자 입장에서도 이런 홍보는 신도 확보에 유리할 것이다.

도로변에서 곧장 엄청난 업힐이 시작된다. 금대암까지 3km 정도인데, 암자 직전까지 평균경사도가 16%에 달하고 중간중간 20% 이상 구간이 많아 극한의 업힐이 기다린다. 90년대 말 처음 찾았을 때는 비포장이었으나 지금은 길도 넓어지고 시멘트 포장이 되어 한결 낫다.

급경사로 고도는 금방 높아져 어느새 임천이 저 아래로 보이고, 건너편 삼정산(1225m) 아래 도마마을 다랑이논이 예쁘다.

안국사 갈림길까지 넒던 길은 이후 1차로 정도로 좁아지고 경사는 더욱 심해진다. 숲과 능선에 가려 조망도 없으니 바닥만 보며 페달링에 집중할 밖에. 그러다 어느덧 능선을 넘더니 금대암 입구에 다다랐다. 그때 풀린 개 한 마리가 달려와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새끼를 거느린 암컷이고 내방객에 익숙한지 적대감이 전혀 없다. 그건 다행인데 이번에는 두 마리가 발에 걸리적거릴 정도로 졸졸 따라 다닌다. 오히려 사람 손길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나중에 스님 얘기를 들으니 어미 개(금순이)는 손님들을 금대산까지 안내하기도 한단다.

금대암 가는 길에서 바라본 삼정산(1225m) 아래 도마마을 다랑이논

 

안국사 갈림길을 지나면 길이 좁아지고 경사도는 20%를 넘나드는 극한의 오르막이 이어진다

금대암은 남면이지만 천왕봉 북사면을 바라보기에 일출 직후 환해지는 풍경을 예상하고 아침 일찍 서둘렀건만 구름이 끼어 지리산은 어둑하다. 나는 이곳의 조망을 특히 좋아해서 지난 30년 간 여러 번 찾았고 이번에 몇 년만에 다시 왔건만 역시 변함이 없다. 키 큰 전나무는 처음 본 이후 조금은 자랐겠지만 내 눈에는 똑 같다. 대신 나만 급변했을 뿐.

창암산(923m)이 다소 가리기는 하지만 하봉에서 반야봉에 이르는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허리춤의 고도에서 바라보니 웅장미와 고도감이 한층 강조되어 더욱 극적이다. 중봉(1875m)과 천왕봉(1915m), 제석봉(1809m)이 삼형제처럼 나란하고 비슷한 높이로 보이는 것은 남쪽에서 볼 때와 다른 점이다.

저 크고 높은 산을 직면하면서 수행하는 것은, 히말라야를 보며 명상했던 석가모니 당시의 수행자와 비슷하지 않을까. 고승들이 이곳을 찾은 것도 당연히 눈앞에 펼쳐진 장관 때문일 것이다. 그건 경치 구경과는 조금 다른, 대자연의 진상을 그대로 음미하는 관조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일 것이다. 감탄과 경탄이 익숙해지면 어느덧 친숙을 넘어 권태로 이어질테니.

천왕봉과 전나무 그리고 두 바퀴. 천왕봉 왼쪽 아래, 칠선골 최상류의 사태지역이 잘보인다  

암자 입구에는 신기한 사진 몇 장이 전시되어 있다. 한 장은 겨울 지리산 풍경, 또 하나는 천왕봉 위로 구름이 올라온 모습인데 기이하게도 용머리를 꼭 닮았다. 길게 이어진 구름도 용이 춤을 추는 듯하니, 옛사람들은 필시 이런 모습을 보고 용의 존재를 추정했을 것이다.

홀로 지내는 스님은 내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더니 자신이 타는 사륜오토바이를 소개해 준다. 급경사 진입로와 눈을 고려해 선택했는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스님의 고향도 서울, 그것도 내가 사는 바로 옆 동네다. 지역의 지형지물을 얘기하면서 그의 눈에 어린 향수의 기색을 얼핏 엿보았다. 출가를 했어도 고향을 어떻게 잊겠는가. 다만 서울에 다시 갈 기약은 없다고 했다.

90년대 처음 찾았을 때는 전나무 옆 요사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는데 2002년인가, 태풍에 요사채가 쓸려나가 지금은 흔적도 없다. 당시 스님은 이곳에 없었지만 요사채는 기억하고 있었다. 천왕봉은 고사하고 전나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나이 들어가는 스님의 인자한 얼굴에서 어쩔 수 없는 무상(無常)을 읽는다.

한 무리 요란한 사람들이 와서 스님과 금순이가 맞으러 간 사이, 나는 툇마루에 앉아 한동안 산을 바라본다.

금대암에 전시된 용구름 사진. 천왕봉 위로 고개를 쳐든 용머리가 선명하다. 옛사람들은 저런 걸 보고 용의 실존을 믿었던 것 같다  

금대암을 내려오는데 브레이크에서 이상한 잡음이 난다. 살펴보니 브레이크 패드를 잡아주는 접이식 스프링 끝단이 열에 휘어져 로터에 닿아서 나는 소리다. 얼마나 경사가 심하면 성능 좋은 디스크 브레이크도 견디지 못할까.

금대암을 내려와 인월 방면으로 가다가 실상사 직전 백일마을에서 오른쪽 언덕길로 진입하면 등구재 업힐이 시작된다. 등구재는 삼봉산과 백운산(903m) 사이 안부를 넘는 고개로 오도재와 이어지는 길목이다. 지리산 둘레길(제3구간) 300km에서도 손꼽히는 경관 포인트이기도 하다.

등구재는 640m나 되어 300m 높이의 백일마을에서 한참을 올라야 한다. 그래도 경사가 완만한 편이라 다랑이논을 경작하며 사는 항황, 중황, 상황 마을이 차례로 나타난다. 상황마을을 지나면 수십층 단층으로 이어진 다랑이논이 아득히 흘러내리고 기나긴 달궁계곡도 모습을 드러낸다.

상황마을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 다랑이논이 수십층으로 흘러내리고 왼쪽 멀리 달궁계곡 저편으로 만복대(1433m)가 보인다 

고개 직전 해발 510m 지점에 있는 등구령쉼터는 둘레길 트래커들에게는 유명하지만 고갯마루 직전이라 라이더 입장에서는 쉬어가기가 애매하다. 여기서 고갯마루까지는 경사도 20%를 넘나드는 극악의 업힐로 마지막 힘을 짜내야 한다. 그래도 고지가 멀지 않다는 일념에 페달링에 힘이 실린다.

마침내 등구재 정상이다. 고요한 적막감을 예상했는데 임도 공사를 하면서 벌목한 목재 운반 작업이 한창이다. 지금은 창원리 방면으로 가파른 계단과 험로 구간을 통과해야 하는데, 조만간 창원마을까지 임도가 뚫리는 모양이다. 자전거로서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목재를 트럭에 옮겨싣던 굴삭기 기사가 잠시 내려 트럭 운전사와 얘기를 나누는데 깜짝 놀랐다. 머리를 물들인 미모의 아가씨가 굴삭기 기사였다. 이런 깊은 산속에, 그것도 거친 굴삭기 작업을 아가씨가 하고 있다니…. 거친 남자의 일을 척척 해내는 그녀가 더욱 대단해 보였다.

지리산 둘레길 여행자에게 유명한 등구령쉼터. 고갯마루 직전이라 자전거는 그대로 직진이다  

등구재 정상(640m)

등구재에서 창원리 임도까지는 계단과 험로를 약 500m 가야 한다. 내리막이라 '끌바'에 무리가 없다  

등구재를 넘어 민가 입구까지 100여m는 길이 나 있지만 그 다음부터는 계단과 험한 등산로 구간이 500m 정도 된다. 그나마 내리막이고 간간이 라이딩 가능한 구간이 있어 어렵지 않게 통과한다.

둘레길은 창원마을을 왼쪽으로 우회하는데 마을로 진입하지 말라는 ‘민원방지’ 안내판이 붙어 있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길 두고 둘레길 따라 창원마을을 우회한다. 마을에서 동떨어진, 해발 500m 이상에도 민가가 모여 있는데 역시 지리산은 은둔자의 고향이다. 하산로에서는 다시 천왕봉이 보이니, 이 길은 내내 천왕봉 바라기다.

1023번 지방도에 합류해 오도재로 향하다 오른쪽 등구마을로 빠진다. 등구마을은 변강쇠와 옹녀 전설이 어린 곳이다.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에 보면 변강쇠와 옹녀가 만나 지리산에 들어와 등구마을 인근에 사는 대목이 나온다. 변강쇠가 내용을 잠시 보자.

 

“이 때에 등구마천 백모촌에 여러 초군 아이들이 나무하러 몰려 와서 지게 목발 두드리며

방아타령, 산타령에 농부가(農夫歌), 목동가(牧童歌)로 장난을 하는구나.

(중략)

사면을 둘러보니 등구마천 가는 길에

어떠한 장승 하나 산중에 서 있거늘 강쇠가 반겨하여,

벌목정정(伐木丁丁) 애 안 쓰고 좋은 나무 저기 있다.

일모도궁(日暮途窮) 이내 신세 불로이득(不勞而得) 좋을시고“

 

하면서 변강쇠는 나무 장승을 뽑아서 장작으로 쓰는데 이것이 동티가 되어 장승처럼 우뚝 선 채 죽는다. 변강쇠는 남쪽지방의 유랑민이고, 옹녀는 여러 번 남편을 잃고 북쪽에서 내려온 유랑민 신세였는데 우연히 만난 둘은 부부 연을 맺고 지리산에 정착했으나 결국은 비극으로 끝난다.

변강쇠가에서 ‘등구마천 가는 길’이라고 했기 때문에 변강쇠 집은 오도재 너머 월평리나 등구재 서편의 중황리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이런 스토리텔링의 무대는 곧 관광 이슈가 되기 때문에 함양군과 남원시는 서로 변강쇠 집이 자기 쪽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각기 조형물도 만들어 놓았다.

등구재를 넘어 창원리로 내려서면 다시 천왕봉이 보인다

 

창원리 방면 다운힐 도중 천왕봉은 내내 지켜보고 있다

 

오도재 가는 길목에 있는 등구마을.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어린 곳이다 

어쨌든 등구마을에는 더 이상 장승이 없고 가파른 길을 따라 마을 뒤를 돌아 임도로 접어든다. 등구마을 저편으로 삼봉산이 올려다 보이지만 지금의 산길은 삼봉산과 별개로 치는 법화산(993m) 기슭이다.

통행이 별로 없는 듯 길은 잡초에 많이 뒤덮여 한여름에는 통과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임도는 오도재로 곧장 이어지는데 고갯마루가 700m를 넘어 내내 업힐이다. 도중에 빈 농막과 거미줄 쳐진 의자가 있어 주인 양해도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맞은편으로는 금대산~백운산~삼봉산이 바라보이는 기막힌 조망이다. 이 광경을 보려고 농막을 짓고 의자까지 뒀을 텐데 주인장은 찾지 않은 지 한참인 듯 잡초와 거미줄이 농익었다.

등구마을 위쪽에서 바라본 삼봉산과 오도재 고갯길 

임도는 지리산관광농원 입구를 지나 오도재 직전에서 1023번 지방도화 합류한다. 오도재 정상에는 ‘지리산제1문’이 늠름하다. 오도재 높이는 773m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는 743m가 맞다. 고개를 살짝 넘어간 함양 쪽에 전망대와 휴게소가 있다. 전망대에서는 함양읍 뒤쪽의 대봉산(1252m)에서 백운산(1279m)~장안산(1237m)에 이르는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 1200m급 삼산(三山)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도재의 오도(悟道)는 불교적 깨달음을 뜻하며, 스님들이 이 고개를 넘어 천왕봉을 보는 순간 도를 깨쳤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선사가 최초의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사실 여부야 알 길이 없다. 어차피 산과 높은 고개 지명은 대부분 산에 사는 승려가 붙였으니 불교적일 수밖에 없지만 ‘고개 넘어 천왕봉을 보는 순간 깨쳤다’는 전설에는 약간의 수긍이 가기도 한다. 함양 방면에서 오도재를 넘자말자 들이닥치는 천왕봉과 지리산의 위용에 이성과 감성이 압도당하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깨달음에 이르는 일종의 방아쇠 작용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도재 정상에 서 있는 '지리산제일문'. 함양 쪽에서 올 경우 이 문을 통과하면 지리산의 장관이 눈을 가득 채운다

  

오도재에서 함양 방면 조망. 오른쪽 임도 너머 함양읍내가 살짝 보이고, 그 왼쪽으로 국내최장 모노레일과 집라인이 있는 대봉산(1252m)이 아스라하다 

맑은 날의 오도재 조망. 맨 왼쪽의 봉화산은 장안산(1237m)의 잘못이다. 장안산~백운산~대봉산은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에 동서로 나란한 1200m급 연봉이다  

오도재에서 마천 방면으로 1km 내려가면 ‘지리산조망공원’이 나온다. 천왕봉 서쪽 하봉에서 반야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다. 이곳을 처음 온다면 놀라운 전경이겠으나 금대암을 보고 온 다음이라면 솔직히 시큰둥하다. 주능선이 다 보이는 것은 대단하지만, 천왕봉과의 거리가 멀어 산악미의 시각적 박력과 입체감은 금대암에 미치지 못한다.

여기서 임천까지는 6km에 달하는 장쾌한 도로 다운힐이다. 천왕봉을 마주보며 백운산과 금대산을 스쳐 내려가는 동안 청량풍이 전신을 감싸고 천왕봉은 은근한 미소로 지켜봐주는 듯.

오도재 아래 지리산조망공원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자세하고 정확한 안내도가 있어 봉우리를 알아보기 쉽다. 왼쪽 최고봉이 천왕봉, 오른쪽 아래 근경의 오똑한 산은 금대암이 있는 금대산이다 

천왕봉에 있던 마고할미 상을 복원해 놓았다. 석상 뒤편으로 하봉~중봉~천왕봉이 연봉으로 보인다

 

인공적으로 방사해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는 반달가슴곰. 이렇게 귀엽고 온순하게 보이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석상일 때만이다. 산속에서 만난다면 가공할 공포일 듯  

임천에 닿으면 왼쪽 산기슭에 조성중인 천왕대불을 잠시 보고 가야 한다. 40년 간 마천석을 채취하고 남은 채석장 단면에 거대한 석가모니불을 조각하는 현장으로, 10년 전 처음 들렀을 때와 큰 진전 없이 불두(佛頭)만 있는 것으로 보아 난관에 봉착한 보양이다. 완성될 경우 불상 높이는 108m에 이르고 좌대 30m, 불상 어깨너비 40m의 어마어마한 크기다. 불상의 시선은 역시 천왕봉을 향하고 있다.

안내문에는 2000년부터 시작한 대역사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고 되어 있으나 진척상황으로 보아 완공은 기약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조성 작업은 계속 하고 있는 듯 중장비와 사람들이 오간다. 완공되면 지리산의 새 명물이 되겠지만 한 개인과 업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 아닐까.

천왕대불에서 출발지인 마천면소재지까지는 임천을 따라 3km 거리다.

임천변 폐채석장에 조성중인 천왕대불. 왼쪽 위에 불두만 조성된 상태다. 완성되면 총높이가 108m에 이른다. 굴삭기가 시야에 가까운데도 작게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거대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tip

마천면소재지 마천농협 옆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다. 면소재지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으며, 등구재 아래 등구령쉼터에서도 식사가 가능하다. 등구재 너머 500m 정도는 험한 등산로여서 ‘끌바’로 통과해야 하므로 주의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함양 금대암~오도재 3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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