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길 거쳐 거대 산성에 올라서면

대청호 호반의 명상정원 끝자락. 나무 한 그루가 외로운 '홀로섬'이 호수 깊숙이 뻗어나 있다. 홀로섬은 평소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가 물이 차면 섬이 된다
대청호 호반의 명상정원 끝자락. 나무 한 그루가 외로운 '홀로섬'이 호수 깊숙이 뻗어나 있다. 홀로섬은 평소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가 물이 차면 섬이 된다

대전은 딱히 볼 것 없는 심심한 도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분기하는 길거리 도시 특유의 ‘스쳐가는 정서’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철도가 개통되면서 발달한 근세의 도시이니 시가지 내부에는 오랜 유적이나 유물이 드문 것이 사실이지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서쪽에는 충청 최고 명산인 계룡산(845m)이 우뚝하고 그 초입에는 유성온천이 솟아난다. 동쪽에는 대도시 인근에서 가장 큰 호수인 대청호가 짙푸르고 삼국시대의 거성인 계족산성이 우뚝하다. 남쪽 장벽을 이루는 보문산(458m)~식장산(598m)도 자못 웅장한 위용으로 중부지방 최대 150만 도시를 옹위한다.

계룡산과 더불어 대전의 양대 명승인 대청호 호반을 돌아 웅장미와 조망이 압권인 계족산성을 오르는 여정을 소개한다.

고속도로 교량에서 문화재가 된 대전육교. 길이 201m, 높이 35m의 아름다운 아치 교량이다. 교량 아래에 길치문화공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길치고개 정상(240m). 계족산 주능선을 따라 대전둘레길이 나 있다  

출발지는 대청호에서 가까운 계족산 자락이자 시내에서도 접근이 편한 길치문화공원. 길치고개 아래에 조성된 공원은 고속도로 1호 문화재인 대전육교 아래에 넓은 주차장도 갖추고 있다. 대전육교는 1969년 건설된 경부고속도로 교량으로, 당시 국내 최고 높이의 아치 교량이면서 한국 토목기술의 개가로 평가되어 국가등록문화재 제783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이야 더 높고 큰 교량이 지천이지만 길이 201m, 높이 35m의 아치 교량은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답다. 새 도로는 바로 옆 가양대교를 거쳐 대전터널로 이어진다.

대전육교 아래가 해발 130m로 꽤 높아서 길치고개(240m) 정상은 금방이다. 잠시 대전시가지를 내려다보고 고개를 넘으면 순식간에 산간풍경 속이다. 길치를 넘어가면 주능선 옆에 고봉산성이 지척이다. 고봉산 정상에도 질현성이 있는데 바로 옆에 고봉산성이 또 있다. 가장 높고 거대한 계족산성을 필두로 계족산 일대에는 산성과 망루가 많이 분포하는데,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각축하던 접경지대이기 때문이다. 바로 아래 옥천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역사에 등장하는 ‘탄현’으로 추정된다.

백제 최후의 충신 성충이 의자왕에게 직간하다 옥중에서 죽기 직전 유언을 남기기를,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나면 육로는 탄현(炭峴)을 넘지 못하게 막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 금강 하구로 추정)에 못 들어오게 한 뒤, 험한 지형에 의지해 싸우면 틀림없이 이길 것“이라고 했다. 옥천 초입의 관산성과 보은 삼년산성은 신라의 거점으로, 계족산성을 비롯한 일대의 산성들은 이 둘을 견제하고 있다. 지금이야 대청호가 거대한 내륙호수로 지형을 나누고 있지만 옛날에는 개울 정도였을 것이다. 의자왕은 성충의 유언도 듣지 않아 김유신의 대군은 탄현을 넘어오고, 당나라 군사는 기벌포를 통해 금강을 타고 올라와 결국 사비성이 함락되고 만다.

명상정원의 숲길

잔잔한 호수면에는 창공과 희구름이 유화처럼 비치고, 여름 초원은 더없이 싱그럽다. 이정목 우측 뒤로 대전 남쪽의 명산인 식장산(598m)이 보인다 

주능선을 넘어 산을 내려가면 대청호 서쪽 호반을 따라가는 ‘대청호수로’에 합류한다. 호반의 명소인 명상정원은 호수 깊숙이 뻗어난 반도 끝자락에 있다. 원래는 낮은 산줄기였겠으나 1980년 대청댐 건설로 물에 잠기면서 등성이만 드러난 낮은 반도가 되었다.

수위에 따라 말갛게 씻겨난 호안은 아득한 완경사로 물속으로 잠겨들어 친수감을 더해준다. 언제부턴가, 이런 예쁜 풍경에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 안내판이 붙어 인상을 강요한다. 사실도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잠시 스쳐간 촬영팀이 반영구적 각인으로 남다니….

이름은 명상정원이되, 사방 절경 속에서 사색은 도무지 깊어지지 않고 시야는 외부만 더듬는다.

마산동에서 대청호반로를 버리고 호반을 따라가면 길가에 미륵원지(彌勒院址) 기념비가 서 있다. 고려말 회덕 황씨 가문이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던 터다. 당시는 추풍령~옥천을 거쳐 이 물길을 따라 청주 방면으로 북상해 나라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지금은 인적 없는 호반에 터만 남았으니 땅의 운명도 기구하다.

미륵원지에서 조금 더 가면 관동묘려(寬洞墓廬)라는 작은 재실에서 길이 끝난다. 관동(마산동의 옛 지명)에 있는 묘소를 돌보기 위한 재실로, 고려말 개성에 살던 류씨 부인은 22세에 남편을 잃었으나 개가를 거부하고 시댁이 있던 이곳으로 내려와 아들 송유(조선초의 문신)를 키우면서 시부모를 극진히 모셔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내렸다. 당시로서야 도덕적 미담이겠지만, 류씨 본인의 일생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지금도 외진 곳에서 호수만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고려말 회덕 황씨 가문에서 여행객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 미륵원 터. 당시에는 대청호를 따라가는 이곳이 남부와 중부를 잇는 교통축선이었다

졸지에 호반이 된 산중턱의 숲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수위의 높낮이에 따라 생사가 엇갈리건만 호수는 잔잔하고 아름답다  

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관동묘려.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로운 효부의 자태가 어려 있는 듯  

 

마산동산성 입구(사슴골 입구)는 작은 고갯마루다. 보루 규모의 마산동산성 역시 계족산성에 딸린 외곽 망루였을 것이다.

고개를 넘어가면 인적도 차량도 없는 한적한 호반길이 곧게 뻗어난다. 대전시내에서 멀지 않지만 오지 분위기가 물씬하다. 그래도 작은 골짜기에는 몇 가구씩 모여 사는 마을이 적막하다.

호수가 훌쩍 넓어지는 길의 끝자락에 찬샘정이 외롭다. 대청호는 금강 상류의 지독한 감입곡류지대에 자리해 호수 모양이 대단히 복잡하다. 모퉁이 하나 돌면 풍경이 바뀌고 어디가 어딘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강이 불어나 생겨난 댐 호수는 대개 이런 모습인데 대청호의 중구난방 불규칙은 특히 더 하다.

찬샘정에서 남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찬샘마을이 나오고 숲이 듬성한 계족산성이 정면으로 마주 보인다. 이제 호반길을 벗어나 계족산으로 들어설 차례다.

이현동 마을을 지나 배고개를 오르는 도중 왼쪽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늘씬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이국풍을 자아내고 숲길은 해발 250m 정도를 오가며 주능선 동쪽을 타고 남하한다.

‘맨발걷기’ 열풍이 시작된 곳답게 계족산 임도에는 황토를 북돋아 걷기 편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길에서 만난 보행자의 절반 정도는 맨발이다.

대전둘레길이 지나가 곳곳에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마산동산성 입구(사슴골 입구) 고갯마루  

폭이 좁아든 호수 옆으로 뻗어난 길이 한가롭다

대청호가 광활하게 보이는 찬샘정

찬샘정에서 바라본 대청호. 호수 저편에 오똑한 산은 청주 샘봉산(461m)

찬샘마을로 내려가면 맞은편으로 계족산성(맨뒤 산꼭대기)이 보인다  

임도는 최대한 등고선을 그리다보니 업다운이 심하지 않은 대신 진도가 느리다. 지척으로 보였던 계족산성이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는다.

드디어 계족산성 입구다. 하지만 산성까지는 엄청난 급경사 업힐을 극복해야 한다. 임도에서 산성까지는 650m밖에 되지 않으나 고도차가 140m나 되어 평균경사도는 21.5%나 된다. 곳곳에 25% 이상의 경사도에 돌이나 진흙 노면이라 라이딩이든 끌바든 극악의 조건이다. 그래도 산성 위에 서는 순간, 고역의 보람은 차고도 넘친다. 계족산성은 한 마디로, 전국에서 가장 웅장하고 전망도 뛰어나며 공학적 미학적으로도 각별한 성곽이기 때문이다.

대청호와 대전시내 양 방향을 감제할 수 있는 계족산 최고봉(429m)에 자리해 백제 입장에서는 공주와 부여 혹은 한성(위례성) 방면으로 진출하려는 신라를 통제할 수 있는 천혜의 입지다. 주능선과 완만한 동쪽 계곡을 포함하는 직사각형 성벽은 최고 높이가 10m에 달할 정도로 높아서 엄청난 공역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동쪽 계곡 아래에는 거대한 집수지까지 있어서 물 걱정 없이 장기간 농성이 가능했을 것이다. 성벽 둘레는 1037m로 중형급에 든다.

백제의 와편 외에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유물도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산성은 조선시대까지 활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남문과 북문은 문을 에워싸는 옹성 구조가 확연하고 마치 중세 유럽의 성처럼 성벽이 웅장하다.

성벽 남단의 봉수대터에서는 대전시내와 대청호 방면이 훤히 보이고, 서벽에서는 신탄진까지 일목요연하다.

현존하는 산성 중 보은 삼년산성(신라)과 더불어 가장 밀도 있는 구조와 규모감을 보여준다. 삼국시대만 해도 계족산 일원은 계족산성을 필두로 능선과 봉우리마다 작은 성과 망루가 포진한, 초긴장 상태의 전방 군사기지였을 것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멋진 계족산 임도

드디어 계족산성에 올라섰다. 뒤쪽으로 대덕밸리와 신탄진 방면 시가지가 보인다  

남문 주변의 웅장한 성벽. 최고 높이 10m에 달하는 거벽이다

 

계족산 주봉(423m, 오른쪽 첨봉) 뒤로 대전시가지가 장황하게 펼쳐져 있다 

산성 남단에 남은 봉수대터. 계족산성은 조선시대까지 활용되었다동벽 저편으로 대청호가 구불거린다

북벽과 서벽 일부는 보수공사 중이다

깊고 넓은 집수지는 상당한 대군이 장기간 농성이 가능했음을 말해준다

숲길은 계속 남하하면서 조금씩 고도를 올려가다가 이윽고 주능선을 넘는 절고개(330m)에 올라선다. 여러 갈레 임도와 등산로가 교차하는 곳으로 계족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해서 두런두런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계족산성을 내려와 한참 온 것 같지만 길치까지는 아직 매봉(370m) 기슭을 돌아 한동안 가야 한다. 계족산은 높지는 않으나 남북으로 길게 퍼져 있어 종주가 만만치 않다.

비온 직후라 임도는 질척하고 잠시라도 멈춰 쉬려면 날벌레가 날아들지만, 벚나무 가로수가 도열해 있어 봄에는 화사한 꽃길로 변신할 것이다.

이윽고 처음에 지나온 길치를 다시 넘으니 대전 시가지와 고속도로의 소음이 다시 엄습해 온다. 대전사람들이 계룡산을 자랑하되 실제로는 계족산을 더 많이 찾는 이유를 알만하다. 아무래도 ‘용’은 접근이 부담스럽지만, 계족(닭다리)은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지척의 산이니까.

계족산 임도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위해 길가에 북돋은 황토길을 만들어 놓았다  

 

tip

대청호 호반길에 식당과 카페가 몇 곳 있으나 식수와 간식을 충분히 챙기는 것이 좋다. 대청호반의 명상정원은 진입로가 좁은 데크로여서 보행자가 많을 때는 자전거 진입이 불편할 수 있다. 남쪽 진입로는 데크로 옆에 별도의 길이 있으나 수풀이 자라 통과가 쉽지 않다. 계족산성은 이번 코스의 백미다. 임도에서 업힐이 힘들다면 초입에 자전거를 두고 걸어서라도 다녀오길 권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대전 대청호~계족산성 3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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