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는 백령도 1/4, 경치는 맞먹네

대청도의 최고 명물로 떠오른 서풍받이 해안절벽. 높이 100m의 백색 규암 절벽이 웅장하고 밀림 같은 숲길과 야생화 화원이 독특하다
대청도의 최고 명물로 떠오른 서풍받이 해안절벽. 높이 100m의 백색 규암 절벽이 웅장하고 밀림 같은 숲길과 야생화 화원이 독특하다

백령도에서 쾌속선으로 20분, 직선거리 7.2km의 대청도는 백령도의 부속섬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지방이자 섬으로 느껴진다. 행정구역도 대청면(소청도 포함)으로 구분되어 있고 섬 분위기 역시 판이하다.

백령도는 외곽으로 산이 둘러 있고 중간에 평야가 있다면, 대청도는 양지동 일부를 제외하면 평지가 거의 없고 열도 전체에서 가장 높은 삼각산(343m) 줄기가 섬 전체를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면적은 12.6㎢로 백령도(45.8㎢)의 1/4 정도이고 길이 6.3km의 작은 섬이다. 하지만 길은 업다운이 극심하고 볼거리가 많아 제대로 보려면 1박2일은 잡아야 한다. 대개는 백령도와 함께 일정을 묶어 백령도 1박, 대청도 1박 해서 2박3일로 잡는다. 소청도까지 포함하려면 3박은 해야 한다.

대청항에 내리면 고된 그물질을 하고 있는 어부상이 반겨준다 

오후 1시30분 백령도를 출발한 코리아프라이드 호가 대청도 선진포항(대청항)에 도착하니 부두에 기다리는 자동차와 인파가 대단하다. 대청도 인구는 1400명으로 5천의 백령도보다 훨씬 적지만 유동인구가 많아 부두의 번잡함은 백령도와 차이가 없다. 대중교통이 불편해 펜션과 민박에서 자동차로 마중을 나와 차들이 더 많다.

면소재지인 선진동은 식당과 편의점, 각종 가게 등이 모여 있는 섬의 중심지다. 하지만 초중고 학교는 산 너머 양지동에 있다. 인구는 양지동이 선진동보다 더 많아 대청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숙소가 양지동에 있어서 ‘모래사막’으로 유명한 옥죽동해변과 농여해변을 들렀다 가기로 한다. 선진동을 벗어나면 곧장 답동고개 업힐이 시작된다. 손님을 다 태운 코리아프라이드 호가 막 출항하고 있다. 겨우 높이 90m 고개지만 해안에서 곧장 시작되어 대단한 난코스다. 하지만 고갯마루에 오르면 넓은 골짜기에 터 잡은 옥죽동과 그 너머 농여해변, 긴 사빈인 풀등, 백령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이 보상해준다.

인천을 향해 출항하는 코리아프라이드 호

 

답동고개 정상에서 바라본 옥죽동 마을과 왼쪽 뒤 바다로 길게 뻗은 풀등 사빈. 오른쪽 뒤로는 백령도가 선명하다 

고개를 내려와 북향하면 적송보호림이 나오고 해안을 조금 돌아가면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옥죽동 모래사막이 펼쳐진다. 사막이라고는 하지만 해안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물결처럼 이동해서 형성된 해안사구(海岸砂丘)이며, 드러난 사구는 폭 200m, 길이 500m 정도다. 내륙쪽으로 사구가 더 있었는데 나무를 심어 사구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사구가 더 커져 농경지나 주택가를 잠식하면 곤란하다.

15년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모래 언덕 중간에 낙타 조형물을 세워놓아 그럭저럭 사막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동 사막 건설현장에서 10년을 보낸 차백성 위원은 헛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발이 푹푹 빠지는 사구를 걸어 언덕까지 올라가니 백령도가 한층 가깝다.

해안사구는 태안 신두리해수욕장과 선유도에도 있으나 언덕의 크기에서는 여기 옥죽동이 압권이다.

옥죽동 모래사막. 낙타 조형물을 만들어 놓아 분위기가 그럴 듯 하지만 배경 산이 너무 가깝다

 모래사막에서 바라본 백령도. 낙타는 모래가 넘쳐 발이 푹 빠졌다

모래사막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삼각산(왼쪽 철탑 봉우리 343m)과 모래울고개(143m, 가운데 움푹한 곳). 모래울고개 아래의 큰 마을이 양지동이다 

옥죽동 마을에서 서쪽으로 언덕을 넘으면 백령도를 마주보는 농여해변이다. 예전에는 모래가 넘어와 농토가 사막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긴 목책이 있었으나 목책과 함께 백사장도 사라지고 돌밭이 드러나 풍경이 급변했다. 대신에 바다 저편에 기나긴 사빈(沙濱)인 ‘풀등’이 생겨났다. 풀등은 길이 1km, 최대폭 300m나 되는 모래밭이다. 이런 사빈은 대개 토사가 쌓이는 강 하구에 형성되는데 낙동강 하구에 특히 많다. 워낙 생성과 변화 시기가 빨라 15년만에 지형이 돌변했다.

마침 썰물이라 물이 빠져 풀등이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지나던 주민은 해안을 따라 가면 미아동해변에서 양지동으로 곧장 넘어갈 수 있다고 알려준다. 돌밭에서는 끌다가 풀등에 다다라서는 백사장이 단단해 한참을 달려 본다. 발자국 하나 없는 처녀지를 질주하니 ‘모세의 기적’ 위에 선 듯 함성이 절로 터지고 페달링에 힘이 붙는다.

백사장이 사라져버린 농여해변. 대신 건너편으로 긴 사빈인 풀등이 확장되었다 

풀등이 시작되는 뿌리지점에는 나이테바위가 신비롭다. 높이 15m, 폭 20m 남짓한 독립바위는 급격한 지각변동으로 퇴적층이 수직으로 선 데다 습곡까지 가해져 나이테 같기도, 책 같가도 한 기막힌 모양이 되었다. 풍화와 침식에 주름이 늘고 허리가 굽은 것 같아 바위도 늙고 지치는구나 싶기도 하다.

미아동해변에서 고개를 넘으면 대청 중고와 초교가 나온다. 여기 어디쯤이 1330년 원나라 태자(뒤에 순제, 즉위 전 이름은 토곤 테무르, 1320~1370)가 1년8개월 간 유배 온 곳으로 추정된다. 순제는 왕위계승 경쟁에서 밀려 유배를 왔는데, 이듬해 광시성으로 옮겨졌다가 세력을 얻어 1333년에 즉위했다. 고려 출신인 기황후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원나라 태자가 유배 온 일이 또 있는데, 대청도는 산동반도에서 180km로 가깝고 부마국인 고려 수도(개성)에서도 멀지 않아 감시관리가 편리해서인 것 같다.

10억년의 세월이 어려 있는 나이테바위. 퇴적 단층이 수직으로 선 데다 습곡까지 더해지고 색까지 달라 기이한 형태가 되었다  

나이테바위 맞은편으로 보이는 백령도. 그 사이로 하얀 실처럼 뻗어난 풀등이 흐릿하다 

풀등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길다. 최대폭 300m, 길이는 1km에 달한다

풀등에 밀려드는 파도 뒤로 백령도가 펼쳐진다 

미아동해변과 이어진 풀등 라이딩 

양지동 남단에 자리한 청실홍실펜션에서 1박하고 다음날 일찍 길을 나선다. 오후 1시50분 인천행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 오늘 여정이 여유로울 것이다.

출발하자마자 일주 코스에서 최고 난관인 모래울고개(143m)를 넘어야 한다. 경사도 20%를 넘나드는 업힐은 실로 장벽이다. 고갯마루에는 도로로 인해 절개된 능선 위에 러브브릿지가 나 있다. 교량에 하트 모양이 붙어 러브브릿지인 듯 한데 예전에는 없던 것으로 삼각산 등산객을 위한 시설이다.

고개를 넘어 가면 바로 매바위전망대가 있다. 이 역시 새로 생긴 것으로 왜 매바위인가 했더니 여기서 바라보는 서풍받이 일대 해안절벽이 흡사 날아가는 매의 모습이다. 자연경관에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을 붙여 만들어낸 기발한 명칭이다.

길을 내려가면 모래울해변인데, 원래는 사탄동해수욕장이었으나 오해의 소지가 있어 이름을 바꾼 모양이다. 길이 400m 정도의 백사장은 무인지경, 적막강산이다. 한창 시즌 때도 한적할 것만 같다. 해안에는 해송숲이 우거져 있으며 동백도 자라는데, 동백이 자랄 수 있는 최북단이어서 천연기념물 66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원도 춘천, 양양과 위도가 같은 이곳에 동백이 자라는 것은 따뜻한 해류 덕분이다. 모래

모래울고개에서 뒤돌아본 양지동. 고갯길 경사가 극심하다

 

모래울고개 위를 지나는 러브브릿지. 삼각산 등산객을 위한 연결통로다

매바위전망대의 매바위 상. 오른쪽 날개 아래로 날아가는 매 형상이 보인다. 매 형상의 절벽지대가 '서풍받이'이다

 

모래울해변으로 내려가는 길. 주변 경관과 조망이 빼어나다

  모래울해변 직전의 모퉁이. 정면으로 서풍받이 절벽이 보인다  

광난두정자각까지는 또 고갯길이다. 높이는 105m. 크게 보아 대청도 일주에는 4개의 고개가 있는데 선진포에서 반시계방향으로 답동고개(90m)를 시작으로 모래울고개(143m), 광난두정자각고개(105m), 독바위고개(117m) 순이다. 일주코스는 16km에 불과해 사실상 이 네 개의 고개를 연이어 넘는 과정이 된다. 미아동해변에서 양지동 가는 길에도 고개(70m)가 있다. 모래울고개 외에는 이름이 따로 없어 필자가 적당히 붙였다.

광난두정자각은 대청도 남단으로 뻗어난 좁은 반도 뿌리 지점에 있다. 반도 남쪽 절벽지대는 서풍을 막아준다고 해서 ‘서풍받이’라고 하며 2019년 지질공원 지정과 함께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서풍받이 일원은 앞서 매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볼 때 매처럼 보이는 지형이기도 하다.

광난두정자각 고개 정상의 정자. 서풍받이 산책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광난두정자각에서 바라본 모래울해변과 모래울고개길

광난두정자각 동쪽의 절벽지대인 기름아가리. 일정한 원호를 그리는 퇴적단층이 보인다 

서풍받이 산책로 초입에 있는 이선비 해병할머니 묘. 1950년대부터 2012년 돌아가실 때까지 해병을 보살펴 준 할머니의 묘는 대청도에 전입오는 해병들의 필수 방문처가 되었다 

친절하고 박학한 현지인 문화해설사와 함께 1시간 남짓 서풍받이 산책로를 돌아보았다. 산책로 초입에서는 오랫동안 해병을 돌봐준 ‘해병할머니’ 무덤도 잠시 참배했다. 할머니 생전에는 병사들은 물론 부대장도 부임 인사차 찾았다고 한다.

서풍받이 산책로는 난대림 분위기의 밀림 같은 숲, 다양한 야생화 그리고 엄청난 절벽이 실로 장관이었다. 15년 전 왔을 때는 대청도 최고 절경이 옥죽동 모래사막이었으나 지금은 서풍받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백령도 두무진에 비견할 수 있는 장관이자 비경으로 배를 타고 해상에서 봐도 좋겠다(유람선은 운행하지 않는다).

아찔한 높이의 서풍받이 절벽. 오른쪽 위는 갑죽도 

서풍받이 전망대. 뒤편으로 기름아가리 절벽이 보이고 맨뒤에는 삼각산이 솟았다 

서풍받이 동쪽 자락은 바람이 없고 양지 발라 야생화밭이 형성되었다

독바위고개 가는 길은 대청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오른쪽으로 소청도가 보인다  

마지막 독바위고개는 고도차가 크지 않아 비교적 가볍게 넘으면 이제 대청항까지 내리 다운힐이다. 고개 너머 고주동 정원가든에서 차가운 냉면으로 더위와 땀을 식히면 대청도 일주는 사실상 피날레다.

일찍 도착한 대청항에는 벌써부터 사람과 차들이 모여들고 있다. 떠나가는 마음이 착잡하다. 15년 만에 찾아온 백령도와 대청도는 모든 면이 더 좋아졌고 볼거리도 더 많아졌다. 하지만 이 먼 섬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청도 일주 유람선과 삼각산 등산을 다음 기회로 남겨 희망의 실마리로 삼는다.

 

tip

백령도와 연계해서 여행할 경우, 백령도에서 오후 1시30분 배로 대청도로 넘어오면 다음날 인천행 1시50분 배까지 24시간의 시간이 있다. 농여해변~미아동해변 해안 라이딩은 썰물 때를 잘 맞춰야 한다. 서풍받이 산책로는 단축코스 1시간, 전체 코스 1시간30분이 걸린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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