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명품 조각상이 여기에!

포도주와 축제의 신, 바쿠스(바커스) 흉상(맨앞)과 각종 조각상
포도주와 축제의 신, 바쿠스(바커스) 흉상(맨앞)과 각종 조각상

오래 전 로마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는 예상외로 큰 충격을 받았다. 기원전 시기에 축조된 성벽과 콜로세움을 비롯한 웅장한 건축물의 완성도와 위용은 현대인의 시각으로도 놀랄 정도였다. 우리는 이제 막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올 때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움집에서 생활할 때 로마인들은 거대한 석조건물에서 거의 현대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매몰되었다가 18세기에 발견된 폼페이(Pompei)에서는 폐허이긴 해도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기준으로도 호화로운 저택과 방, 목욕탕, 거리 등등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서구인들이야 그리스·로마문명의 후예라고 생각할 테니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특히 아시아인이라면 기가 죽고 역사적 자존감이 붕괴하는 경험을 겪는다. 세계 4대 문명에 속하는 중국이나 인도 문명이 시기적으로는 그리스·로마 문명을 앞서지만 현존 유적과 유물에서 그리스 로마문명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3층 그리스·로마관에 전시중인 테마. 올해 6월부터 27년 5월까지 4년 간 한정 전시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도 높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최고 인기 전시품은 단연 비너스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도 인기가 대단하지만 비너스상 앞에서는 사람들의 탄성이 이어지고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나 역시 사진과 영상으로 보았으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감탄과 충격이었다. 이런 완벽한 조각품이 고조선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졌다니…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현대의 유명 조각가 작품이라고 믿겨질 만큼 미학적, 기술적 완성도가 실로 최고의 경지였다.

그리스는 가보지 못했지만 로마와 폼페이, 루브르박물관에서 나는 그리스·로마 문명의 압도적인 위상을 실감했고, 왜 서구문명이 세계를 휩쓸 수밖에 없는지 바로 이해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민주공화정, 로마법, 철학, 문학, 역사학, 의학, 수학, 자연과학 등등 현대 문명을 뒷받침하는 전 분야에서 그리스·로마가 원류를 이룬다.

중세까지는 중국문명이 서구를 앞섰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이는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한 생산력에서는 그럴지 모르지만 문명의 세부적 수준에서는 세상의 그 어떤 문명도 그리스·로마문명을 능가한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은 시기적으로 그리스·로마에 훨씬 앞서긴 했지만 도중에 쇠락하고 단절되었으며 디테일에서는 역시 그리스·로마에 미치지 못하고 현대문명에 끼친 영향도 얼마 되지 않는다.

투구를 쓴 아테나 상. 기원전 430년에 만든 그리스 원작을 1~2세기 로마에서 복제한 작품이다. 아테나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의 수호신이며 파르테논신전의 주신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미의 절정을 표현하고 있다  

현대의 우리가 고대 문명을 가늠하는 척도는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뿐이다. 특히 건축과 조각은 장구한 시절 보존되어 문명의 위상과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 교양 수준을 말해준다. 특히 그리스·로마의 조각품은 그 사실적인 묘사와 디테일, 완성도에서 미대 학생이 완벽한 모범으로 연구하고 모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실존 인물의 조각상은 얼굴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어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보다 더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그 인물의 얼굴을 알 수 있다.

서론이 이렇게 긴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3층 그리스·로마관에 실로 어마어마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서다. 예전에는 없던 유물이라 더욱 놀랐다. 알고 보니 23년 6월부터 27년 5월까지 4년 간 한정 전시였다. 테마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이며 그리스와 로마 유물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로마는 그리스 문명의 충실한 계승 발전자였기에 지역은 달라도 그리스·로마문명으로 통칭하는 데서도 하나의 틀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여기 전시된 조각품을 보려고 그리스나 로마까지 갈 생각도 있었던 나로서는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모를 일이다. 전시품은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이다.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흉상

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당신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는 로마제국 황금기의 다섯 황제인 5현제(賢帝)의 마지막 황제로, 놀랍게도 저명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스토아학파로 분류되는 그의 철학은 유물론적 범신론과 금욕주의를 특징으로 하며 도가적 무위자연풍과 불교적 초현세와 달관의 성격도 내포한다. 겨우 기원후 2세기, 사람들은 자연의 운행을 이해하지 못해 초월적인 능력자의 조화라고 생각해 온갖 신적 존재를 상정했고 샤머니즘이 횡행하며 제사장이 지배자를 겸하던 그 시절, 이 위대한 선각자는 대자연의 운행을 냉정히 분석하면서 그 안에서 이뤄지는 개인의 삶을 스쳐가는 순간으로 담담히 바라보았다. 번개가 치거나 홍수가 나면 하늘(신)이 노했다고 믿던 당시로는 획기적인 이성적 각성이다.

당시 세계최강의 제국인 로마의 황제이면서 금욕과 관용을 실천하고 또 전쟁터에서 그런 사색의 기록을 남겨 후세에 <명상록>이란 스토아철학의 금자탑을 전해준 그를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내가 철학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정적인 감화를 준 그의 흉상이 여기 중앙박물관에 있다니 전혀 생각지 못한 조우였다.

조각으로 전하는 그의 얼굴에는 권력자에 흔한 교만함이나 욕망, 권위 따위가 전혀 없고 처진 눈매에는 무한 관용과 함께 세상의 심연을 꿰뚫는 성찰적 안광이 스며 나오는 듯하다.

 

영웅,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흉상

로마제국의 전쟁영웅 카이사르(Caecar, BC 100~44)는 심복인 브루투스 등에게 살해당한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로마는 공화정이었고, 갈리아 정복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 중이던 카이사르는 그를 견제해 제거하려는 귀족들에게 반기를 들고 로마로 진군하게 된다. 그는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일갈하며 진격을 계속했다. 겁에 질린 귀족들은 도피하거나 항복해 카이사르는 정권 획득에 성공하고, 효율적인 개혁을 위해 종신 독재관이 되었지만 황제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의 염문도 유명하다. 하지만 귀족들은 그가 공화정을 허물고 황제가 되려한다고 덮어씌웠고 심복인 브루투스도 여기에 가담해 그를 암살하고 만다. 영어로는 ‘시저’라고 하며 러시아어 ‘차르(Czar)’, 독일어 ‘카이저(Kaiser)’도 카이사르를 뜻하고 때로는 독재적 지배자의 대명사로도 쓰인다.

흉상은 카이사르 사후에 제작되었고 16세기에 보완한 것이다. 머리숱이 적고 수염이 없으며 뺨이 훌쭉하게 들어간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다. 깊은 눈과 높은 콧대, 가는 입술은 권력자와 현자의 이미지가 겹친다. 현대인의 복장을 하고 거리에서 만난다면, 친근한 아저씨 모습일 것이다.

 

모든 학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두상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모든 학문의 아버지였다.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너무 형이상학적인 스승과 결별한 그는 대부분의 분과 과학의 기초를 구축했다. 철학은 물론 모든 과학, 심지어는 문학까지 대부분의 학문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학문은 그가 기초한 학문에 대한 주석과 확대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자연과학과 법학, 문학 등의 학문적 역사를 공부하면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구상한 기초 이론에서 시작한다. 유럽에서도 근대 이전 모든 학문의 교과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했다. 다방면에 걸친 걸출한 천재는 이후 르네상스 시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다시 한 번 구현되지만 영향력과 범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능가하지 못했다. 근대 이후 급발전한 실증과학은 사색과 통찰력에 기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뛰어넘었으나 철학과 논리학, 수사학 등은 여전히 그의 그늘 아래에 있다.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전시된 두상은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생전 혹은 사후 만들어진 원작을 모델로 1~2세기에 대리석으로 만든 복제품을 본뜬 석고상이다. 최초의 두상은 제자인 알렉산더 대왕의 지시로 조각가 리시포스가 만들었다고 하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짜 얼굴 그대로일 것이다. 사색적인 깊은 눈, 날카로운 콧날과 강건해 보이는 얼굴은 학자라기보다 전사나 권력자를 떠올리게 한다.

 

인물 미학의 정점, 수염 난 남성 두상

이 아름답고 정교한 2세기의 조각상은 1900년이 지났건만 최근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완성도와 비례미가 실로 탁월하다. 풍성한 곱슬머리와 수염은 안토니누스 왕조(138~193) 때 유행했으며 일반 시민들도 따라 했다고 한다. 조각상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황실의 일원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로 추정된다.

생동감 넘치는 눈매와 표정, 얼굴을 그대로 본뜬 것만 같은 이목구비의 초정밀 표현, 머리카락과 수염의 디테일까지 탄성만 나올 뿐이다.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하며, 정확한 묘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과학과 이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인물을 이토록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는 그리스 조각에 연면한 정신은 현대적 계몽주의를 이끌어내는 이성적 감수성의 저력을 보여준다.

 

지금도 초호화, 유리그릇

도대체 이런 유리그릇이 2천 년 전 작품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현대의 고급식당 식탁에 올라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는, 미려한 디자인과 품질을 보여준다. 유리는 기원전 2000년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생산된 이후 그리스·로마에서 발전을 거듭해 예술적으로도 절정에 이르렀다. 이같은 ‘로만 글라스’는 실크로드를 따라 흘러흘러 신라와 가야에까지 전해졌다.

저 유리병에 올리브유든 맥주든 무엇을 담든, 저 유리잔에 와인이든 소주든 무엇을 따르든, 저 유리접시에 무슨 요리를 올리든, 2천년 시간을 뛰어넘은 절정의 미학에 탄성과 탄식이 교차한다.

 

아름다움의 극치, 비너스 토르소 

고대 그리스의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인 아프로디테는 로마에서는 비너스(베누스, Venus)에 해당하며 사랑과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대체로 옷을 벗은 누드로 표현되며 궁극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전시품은 1~3세기 로마 작품으로 목과 팔이 없는 토르소 상이다. 여성미가 가장 강조되도록, 욕조에서 막 나오는 순간을 묘사했다고 하며 이처럼 인체의 미감을 극한으로 묘사한 것은 당시의 철학과 미학에서 아름다움은 곧 선(善)이라고 본 데서 기인한다. 아름다움은 인체의 외견에도 해당하지만 내적 심성이나 조형물, 수학적 완성도와 비례, 균일성 등에도 있다고 보았기에 아름다운 몸 역시 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선미(眞善美)를 이상적 도덕이자 미학으로 일체화했듯이 아름다움의 의미를 확장한다면 인간성의 최고 단계 고양으로 이어질 것이다.

흘러내릴 듯한 가운은 아랫도리만 겨우 가리고 있고, 풍만하지만 균형 잡힌 몸매는 고혹적이면서도 단아하다. 새하얀 대리석 조각이라 미감이 한층 강조된다. 실존인물이 아닌 신의 모습을 당시 사람들은 가장 완벽한 인체로 표현하고 있다.

 

술의 신, 바쿠스 흉상

영어식으로는 ‘바커스’라고도 하는 바쿠스(Bacchus)는 포도주와 연극, 축제의 신으로 매혹적인 미남 젊은이로 표현된다. 그리스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에 해당한다. 전시품은 2세기 로마 작품이지만 16~17세기에 일부 부위를 보완했다. 가슴 부분의 염소 가죽은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염소는 바쿠스가 관장하는 세계에 속하는 동물이다.

갸름하고 작은 계란형 얼굴에 깊은 눈과 우뚝한 코, 균형 잡힌 입술 등 참으로 아름다운 미남자의 모습이다. ‘미남’에 대한 기준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옆에서 보면 여성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얼굴의 곡선미가 유려하다. 머리 위에 남은 부분으로 사라진 오른팔은 위로 올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의 진짜 얼굴, 간다라 불상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기원전 326년 인도 서북부(현재의 파키스탄 지역)는 그리스왕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후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가 300년 이상 영향을 미치게 되어 동서양이 혼합된 ‘간다라 미술’이 탄생한다.

2~3세기 간다라지방에서 제작된 이 불두는 참으로 깊고 아름답다(인도·동남아시아 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해진 불상은 부처의 머리가 마치 작은 혹이 모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심한 곱슬머리이고 두상의 돌출부(육계)는 머리를 묶은 일종의 상투임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의 활동지역은 물론 시기적으로 가까운 때에 제작되었으니 실제 석가모니의 얼굴과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색에 잠긴 듯 살짝 감은 눈은 피안을 응시하듯 그윽하며, 오똑한 콧대와 큰 눈꺼풀의 깊은 눈, 입술 등은 동서양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면서도 어느 관점이든 빼어난 미남이다. 신라의 반가사유상은 전신으로 나타낸 자세가 사색에 잠긴 모습이라면, 이 불두는 표정 하나만으로 깊이 모를 심연의 사색으로 이끈다. 함께 전시된 다른 간다라불상도 비슷한 모습이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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