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 어린 서정, 그리고 전흔

강경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 오른쪽이 상류인 부여 방면이고 아래로 보이는 하얀 길은 금강자전거길이다  
강경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 오른쪽이 상류인 부여 방면이고 아래로 보이는 하얀 길은 금강자전거길이다  

이 강마을로 갈 때마다 나는 설렌다. 아무런 연고도, 추억도 없건만 이 강변 마을은 내게 특별한 공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마치 상상속의 풍경화가 그대로 재현된 것 같고,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을 것만 같은, 그 곳은 강경이다.

논산을 출발해 논산천을 따라 서향하면 저 멀리 강경읍내가 보인다. 해발 43m이니 산이랄 것도 없지만 이 광야에서는 높직한 언덕이 된 옥녀봉이 강경의 상징처럼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논산평야 일주를 계획하면서 좋아하는 강경을 출발지로 삼지 않고 논산으로 잡은 것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며 접근하는 설렘을 맛보기 위해서다.

논산평야는 서쪽은 금강, 동쪽은 대둔산(879m) 그리고 북쪽은 계룡산(845m)이 에워싸고 있다. 논산천변에서 바라본 계룡산

 

서정이 감도는 논산천 둑길. 강경 가는 길목이다 

논산평야는 금강과 계룡산~대둔산 사이에 펼쳐진, 지름 20km 정도의 들판이다. 광역 호남평야의 북단에 해당하며 논산은 평야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온통 들판인데 ‘산을 논한다’는 논산(論山)이라니? 풍수지리 비보 개념으로 들판지역에는 산(山)을, 산악지대에는 오히려 평탄할 평(平)을 지명에 넣는 관행 때문일까. 논산, 서산, 군산, 익산이 그렇고 양평, 가평, 평창도 이름과 지형이 반대된다.

지난번에 연무대를 중심으로 평야의 동쪽을 돌았다면, 이번에는 서편을 일주한다. 평야 서북편은 부여군에도 다수 포함되어 코스는 논산과 부여 경계를 오갈 것이다.

논산에서 강경 가는 도중 광야를 장대한 직선으로 가르는 두 줄기 인공물은 논산천안고속도로와 KTX 호남선이다. 산이 많은 이 땅에서는 강줄기도, 길도 직선을 이루기 힘든데 여기 광야를 만나 KTX와 자동차는 조향이 필요 없는 직선을 질주한다. 광대한 공간 속에서 시속 100km 고속도로는 느림보 같고, 시속 300km 고속열차도 느릿느릿 움직인다.

둑 아래로 나 있는 논산천 자전거도로. 억새밭이 일렁이며 두바퀴를 반겨준다논산평야를 관통하는 장대한 직선은 KTX 호남선이다  

강경읍은 마을 전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적 세트장 같다. 한때 서해안의 어선이 드나들어 포구의 사연과 풍광을 간직한 것도 더욱 그럴 것이다. 금강하구언이 생기면서 배는 드나들지 않으나 여전히 젓갈은 전국 최대의 산지다. 기이한 것은 작은 읍내인데 논산경찰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 같은 논산의 주요 행정기관이 강경읍에 있는 점이다. 이는 강경이 1931년 강경읍으로 승격했고 논산은 1938년에야 읍이 되어 당시로서는 강경이 더 컸기 때문인데, 논산시내에서 8km로 가까워 굳이 이전하지 않는 모양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대단한 강경이었지만 지금은 작은 읍으로 남았으니 시간은 정체되고 전통과 유산은 그 자리에서 곰삭아 세월을 보듬고 있다.

옥녀봉 아래에는 얼마 전만 해도 없던 ‘강경산소금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강경 출신 박범신 작가의 <소금>을 모티브로 만든 복합 문화관으로 옥녀봉 기슭에는 소설의 무대가 된 소금집이 복원되어 있다. 정상에는 봉화대가 새로 들어섰고 금강을 내려다보는 느티나무는 몇 살을 더 먹었겠지만 수령은 그대로 230년이다(1997년 지정 기준).

강경의 상징과도 같은 옥녀봉(43m)과 정상의 느티나무 고목. 아래 물길은 금강과 합류하기 직전의 논산천이다

 옥녀봉 중턱에 조성된 강경산소금문학관. 고달픈 삶에 찌든 민초의 표정이 리얼하다  

옥녀봉 아래에서 금강은 크게 물돌이를 하는데 북에서 흘러온 물길이 마주치는 곳이라 옥녀봉에는 절벽이 형성되었고 건너편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생겨났다. 부여 낙화암과 흡사한 풍광으로 강과 들이 더 넓어 공간의 스케일은 한층 더 웅혼하고 개방적이다. 북쪽으로 구비치는 물길 저 어디쯤에 부여가 있고, 서쪽 아득히 멀어지는 물길 끝에는 군산 앞바다가 나올 것이다.

이렇게 사방이 트인 고지는 노을이 아름답지만 여기서 묵지 않는 한 난감한 구경이다. 정처는 없건만 갈 길은 먼 나그네는 금강 따라 부여 방면으로 북상한다.

길도 세월 따라 늙는 건지, 어느새 금강 자전거길도 차선과 안내판이 꽤나 퇴색했다. 둔치 산책로는 더욱 낡고 망가져 대대적인 공사 중이다. 그래도 오가는 자전거가 더러 있고, 젊은이 무리는 반갑게 인사까지 건네주니 길에는 생동감이 살아 있다.

금강 자전거길을 벗어나 현내천을 따라 북상한다. 저편으로 가까워지는 낮은 산줄기는 백제시대 부여의 남쪽을 지키는 방어선이었고, 산정에는 석성산성이 있다. 돌로 쌓아 석성(石城)으로 불린 듯하며, ‘석성면’ 지명은 지금도 유효하다.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에 사비성이 함락된 후에는 부흥군의 거점이 되기도 한 곳이다. 이제 저 산성을 오를 것이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북동쪽 조망. 멀리 계룡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논산천 저편에 논산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옥녀봉 남쪽 조망. 너른 둔치 저편에 하얀 배 모양의 강경젓갈전시관과 돌산전망대가 있고, 그 일대가 한때 서해 고깃배가 드나들던 강경포구였다. 도도한 금강 위로는 황산대교가 지나고 그 뒤로는 호남평야가 광활하다

강경 출신의 작가 박범신의 <소금>에 등장하는 소금집을 옥녀봉 중턱에 복원해 놓았다. 조망이 탁월하다 

옥녀봉 자락에는 1896년 한국침례교회 최초의 예배지가 있다. 미국인 파울링 선교사 등이 머무른 곳이기도 하다

석성산성은 현내리 탑동마을 안쪽에서 진입한다. 마을 중간의 작은 공원에는 ‘석성산성수호 백제무명용사 충혼비’가 서 있다. 병사는 사라지고 성벽은 허물어졌건만 주민들은 1300년의 원혼을 잊지 않고 있다.

해가 뉘엿한 시간, 홀로 드는 숲길 그것도 오랜 전적지라 마음이 무겁다. 이곳을 지키던 병사들도 무명이었고 산성 역시 지금도 무명이다. 관련 연구자가 아니라면 이곳을 찾을 일이 없을테니 휴일 오후에도 산은 텅 비었다.

이건 정말 잘못되었다. 산성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엄청난 유산을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는가. 건축에 엄청난 공역과 기법이 들어간 유산인데 수풀에 묻힌 그대로 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성벽을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라, 허물어졌어도 성돌이나 성벽의 흔적은 완연하기에 벽을 덮고 있는 수풀이라도 걷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도시 근교인 오산 독산성은 성벽 주변을 완전히 벌채해 성벽과 터를 노출시켜 보존하고 있는데 이것이 복원을 제외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보존방안이다. 일본과 유럽이 성곽 보존에 기울이는 관심과 투자를 조금이라도 참고했으면 좋겠다.

논산평야의 마을과 길은 깨끗하고 잘 단장되어 있다. 빈 집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금강자전거길은 어느새 세월을 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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