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암에서 청도천까지 장장 10km 다운힐  

운정산에서 바라본 화악산. 맨왼쪽 철탑 위에 운주암이 있고 그 뒤로 구름이 살짝 걸린 봉우리가 정상이다
운정산에서 바라본 화악산. 맨왼쪽 철탑 위에 운주암이 있고 그 뒤로 구름이 살짝 걸린 봉우리가 정상이다

이 까마득한 고지의 비탈에 자리한 운주암은 도로가 난 지금도 접근이 어려운데 그 옛날 어떻게 건물을 세웠는지 지난했을 창건과정이 눈앞에 그려진다. 자세한 연혁은 없으나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신중탱(神衆幀, 불교적 신앙대상을 그린 그림)이 19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보아 그 전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지만 고졸미는 없다. 그래도 세상을 내려다보는 아득한 입지와 급사면을 따라 도열한 당우는 고아한 아취를 발한다.

대웅전 앞으로는 작은 정원을 내어 3층 석탑을 세웠는데 세상을 내려다보며 천상천하를 잇는 하늘기둥(天柱)의 포석처럼 강건하고 고고하다. 조망은 남쪽으로 다소 좁게 트여서 창원 정병산(567m)~천주산(638m)~무학산(761m) 등이 시야의 한계를 이룬다. 그 사이로 수없이 중첩된낮은 산줄기 사이에는 강물이 비집고 흐르고, 산야의 경계선에는 마을이 기대 있다. 우리의 삶이 대를 이어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터전이 시공 속에 응결된 듯 펼쳐져 있다. 지금도 저 아래에서는 인간사 흥망성쇠와 생사가 다이내믹하게 반복되고 있고, 나 역시 산을 내려가면 그 와중에 동참해야 한다. 구도자의 사원이 공간적으로 격리된 산간에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해발 690m 고지에 자리한 운주암. 거의 절벽에 가까운 급사면이라 건물은 옆으로 길게 도열해 있다

운주암을 떠나기 전 긴 다운힐을 준비한다. 옷을 껴입고 안장은 낮춘 상태로 출발이다. 저 아래 요고저수지까지 고도차 600m, 길이 7km의 거창한 내리막이 기다린다. 장시간 힘들여 올랐건만 쾌속으로 질주해 순식간에 내려서는 것도 라이딩의 별격이다. 이런 길에서는 자동차보다 더 빨라서 좀 달렸다 싶은데 어느새 산을 벗어나 청도면의 첫 번째 마을인 횟골로 내려섰다. 뒤돌아보니 마을 뒤편으로 화악산 정상이 계곡을 품고 우뚝하다.

산간마을의 도로는 안락 그 자체다. 행인이 드물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으며 노면은 잘 포장되어 두 손을 쉬면서 느긋하게 페달링이다. 페달에는 채 힘을 주지 않아도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두 바퀴는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요고저수지를 지나 요고천을 따라가면 이윽고 창녕~밀양 간 24번 국도를 만난다. 길을 건너 그대로 직진해 청도천 둑길을 타고 가다 동산리에서 약수암 방면으로 다시 산을 오른다. 여기 산지는 최고봉이 335m나 되는데 이름이 없어 여기서는 마을 이름을 따 ‘운정산’이라고 하자. 길은 해발 280m까지 올라가고 정상 근처에는 추모공원묘원이 있다. 민가가 드물어 대대적인 벌목을 해 어디 강원도 깊은 산처럼 목재가 쌓여있고 대규모 양묘장도 있다.

봉천재에서 청도면으로 내려가는 길. 골짜기가 깊은데 독립 민가가 있다. 건너편은 호암산(611m) 

청도면 첫마을 횟골. 골짜기 뒤쪽 둔중한 능선이 화악산 정상부다

주변 산세가 좋은 요고저수지

벼가 샛노랗게 익은 완만한 내리막길을 편안하게 달린다

운정산의 임도에 쌓여 있는 목재. 도시가 가까운 낮은 산인데 어디 강원도 심산에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운정산 임도는 대부분 흙길이라 라이딩 재미가 좋다

운정산 양묘장. 살짝 목장 같은 분위기다

다시 만난 옥교산의 상흔

심산유곡 분위기의 운정산 임도. 왼쪽 멀리 양산 토곡산(855m)이 구름에 걸려 있다

운정산을 내려오면 마덕고개(150m)에서 도로를 만나고 덕곡저수지까지는 경쾌한 다운힐이다. 덕곡저수지에서 북쪽으로 가면 들판 가운데에 청운리가 있고, 마을 중심부에 안씨고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19세기 후반에 지어졌으니 오래 되지는 않았으나 조선 후기 상류층의 주거 양식을 잘 보여준다. 안채와 좌우 별채, 사랑채, 중문채 등 다수의 건물이 ‘ㅁ’자 형태를 이루며 지금도 광주(廣州) 안씨(安氏) 후손이 살고 있다. 예전에는 3천석을 거둬들였다니 대단한 부자였나 보다. 1석(한 섬)은 80kg 두 가마이므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천 가마 × 20만원 = 12억 원이다. 지금도 연봉 12억 원이면 최상위급이니 가난한 당시는 더 큰 부였을 것이다.

청운리에서 위양지 가는 길목에 연극촌 ‘밀양아리나’가 있다. 허허벌판 중에 극장과 공연장이 모여 있고 또 유지되는 것이 신통하다.

어느덧 해가 졌는데도 위양지에는 산책객이 적지 않다. 연인들의 다정한 대화와 웃음소리에 연못의 물고기는 점프로 화답을 한다. 완전한 정적이 감싸려면 밤이 더 깊어야 할 것 같다.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청운리 안씨고가. 내부가 상당히 넓고 잘 꾸며진 조선후기 상류층의 저택이다

연극촌 겸 공연장인 밀양아리나. 외진 곳에 자리했지만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통하다

수초로 뒤덮인 위양지. 황혼이 어리건만 관광객이 여전히 많다  

 

tip

위양지 주변에 편의점과 식당, 카페가 있으나 코스 도중에는 아예 없으므로 유의한다. 휴일에는 위양지 일대가 매우 붐벼 주차난이 빚어지므로 인근의 길가에 주차해야 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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