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알프스 깊은 곳으로

충북알프스는 속리산~구병산 줄기를 칭하지만 지금은 구병산을 지칭하는 것처럼 사용된다
충북알프스는 속리산~구병산 줄기를 칭하지만 지금은 구병산을 지칭하는 것처럼 사용된다

삼년산성을 돌아 나와 말티재(430m)를 오른다. 12구비 험난한 말티재는 속리산의 ‘속리(俗離)’ 감을 극대화시키는 관문이다. 지금은 37번 국도가 속리터널로 우회해 법주사로 곧장 이어져 말티재 고갯길은 작정한 관광객 외에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산하다.

세조가 말을 갈아타서 말티재라고 한다는 유래비가 있으나 전국의 험난한 고개에는 더러 말(馬)이 지명에 들어간다. 말조차 힘겹게 올라간다거나 너무 험해 넘어진다는 뜻이 많다. 말티의 ‘티’는 고개 치(峙)의 와전일 것이다.

고갯마루에는 ‘백두대간속리산관문 자비성(慈悲城)’ 이름이 걸린, 생태통로를 겸한 관문이 들어섰다. 관문 서편 전망대에 오르면 말티재 12구비가 한눈에 들어오고 삼년산성도 마주 보인다. 말티재 일원은 짚라인과 모노레일, 식물원 등을 갖춘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법주사 갈림길인 505번 지방도에서 우회전, 삼가저수지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말티재를 넘어 별로 내려오지 않은 곳에 자리한 갈목리 일대는 해발 350m 정도의 고원이다. 갈목재 옛길 옆으로는 갈목터널이 뚫렸고 옛길은 철문으로 막혔다. 터널은 길이 690m로 길지 않고 내부가 밝은데다 갓길이 있어 통과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목의 말티재(430m). 생태통로를 겸한 관문이 들어섰다말티재를 오르는 12구비길. 맨뒤의 산줄기 위에 삼년산성이 보인다

말티재를 넘으면 나오는 갈목리. 해발 350m 정도의 고원지대다 

갈목터널을 지나 다운힐하면 조용한 산중호수인 삼가저수지가 싱그럽다. 호수 주변의 산세가 빼어나 심산호반의 정취가 물씬하다. 호수 북쪽에 난 삼가1교에서는 북쪽 계곡 저편으로 속리산 최고봉 천황봉(1057m)이 웅장하다. 30여 년 전 겨울, 상주 정각동에서 눈길을 헤치고 힘겹게 천황봉을 올랐던 기억이 아련하다.

만수계곡 삼거리에는 ‘충북알프스’ 안내판이 보인다. 보은군은 1999년 속리산에서 구병산에 이르는 44km의 산줄기를 충북알프스라고 명명해 홍보하고 있는데, 속리산은 국립공원으로 이미 명망이 높아 일반적으로는 구병산(876m)을 충북알프스로 안다. 익히 알려져 온 ‘한국알프스(북한 관모봉 일원)’ ‘영남알프스(울주 가지산 일원)’에 착안한 별명이다. 구병산(九屛山)은 이름처럼 아홉의 병풍을 펼친 듯 암릉과 암벽이 발달한 산이지만 북사면은 평범한 육산으로 보인다.

심산유곡 분위기가 감도는 삼가저수지

삼가저수지 북쪽 삼가1교에서 바라본 속리산 최고봉 천황봉(1057m)

 

구병산(九屛山)은 이름처럼 아홉의 병풍을 펼친 듯 암릉과 암벽이 발달한 산이지만 북사면은 평범한 육산으로 보인다. 삼가2리에서 본 모습

고개나 물줄기도 없는데 뜬금없이 경북 상주시 경계선이 나온다. 이후 임곡리까지는 상주 땅이다   

동관리 장고개(380m)는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능선이라 등산객이 붙여 놓은 리본들이 나부낀다. 구병산은 백두대간에서 살짝 비껴나 있고, 장고개 동쪽의 비조령~봉황산(741m) 줄기가 백두대간이다.

장고개에서 시작된 내리막은 구병산과 봉황산 사이 협곡을 따라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나는 화남면소재지까지 이어진다.

구병산 자락을 잠시 따라가다 남쪽 임곡리 방면으로 업힐을 시작한다. 폐쇄된 채석장에는 높이 100m의 절벽이 흉물로 남았다. 같은 암벽이라도 인공과 자연의 차이는 이렇게 크지만 아마도 수십년이 흐르면 이 역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천탁산(684m) 북쪽 작은 고개를 넘으면 갑자기 평탄한 지대가 나타나는데, 바로 임곡리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듯, 해발 300m 일원에 펼쳐진 천혜의 고원지대로 마을과 경작지 규모가 상당하다. 특별하고 아름다운 산간마을이지만 종교단체와 주민들이 갈등을 빚는 듯 목청을 높인 현수막들이 어지럽다. 임곡리는 마을 가운데서 보은과 상주 경계가 나뉜다. 지역은 바뀌지만 지명은 상주 화남면 임곡리, 보은 마로면 임곡리로 같다. 하나의 마을이라 이름을 같이 쓰는 듯한데 아주 특이한 사례다. 

임곡리에서 산 아래 적암천까지 내려가는 길은 협곡을 따라가 임곡리의 단절감을 더해준다. 적암천 둑길을 따라 가다 마로면소재지에서 삼가천에 합류해 보은읍 방면으로 북상한다. 들에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지만 산에는 단풍이 들지 않고 낮 기온이 높아 가을 분위기가 깊지는 않다.

속리산과 구병산 줄기를 넘는 장고개(380m). 등산객이 붙여놓은 리본이 많다. 왼쪽 뒤로 구병산이 살짝 보인다 

마을 중간에 보은-상주 경계선이 지나는 임곡리. 해발 300m 정도의 고원으로 뒤쪽으로 구병산의 기암괴석이 선명하다

  가을이 깊어가는 보은 송현리 들판

삼가천 따라 보은읍 가는 길목에 있는 임한리 솔밭. 들판 가운데 형성된 솔밭이라 각별하고 운치 있다

삼가천 상류에는 기이한 하중도(河中島)를 중심으로 오래된 고택이 여럿 있다. 특히 우당고택(愚堂古宅)은 약 4200평 부지에 터 잡고 있어 규모가 압권이다. 왕궁이나 사찰을 제외하고 이렇게 넓은 고택은 처음 본다. 장대한 담장이 둘러싼 부지는 한 변이 120m에 달하는 사각형으로 남쪽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운동장 같은 공터가 펼쳐져 눈을 의심케 한다.

담장은 하나의 고택이 아니라 작은 마을을 에워싼 것만 같다. 1919~21년에 보성 선씨 신정훈이 당대의 대목들을 모아 지었다. 조선조 양반가의 기본 구조인 안채와 사랑채, 사당 공간으로 구성되며 각각 담장을 두르고 있어 별개의 집처럼 느껴진다. 특히 사랑채는 ㄷ자 형태로 총연장이 80m에 달하는 긴 행랑채를 둬 규모감을 극대화한다. 담장 외부의 숲은 고풍의 그윽한 정취를 더해준다. 일제의 식민지화가 본격화되는 시기에 이런 한옥을 짓다니 놀라운 자부심이다.

우당고택을 끝으로 보은읍을 향해 가는 길목인 평각리 쇠골재에서 멀리 서산으로 해가 꼴깍 넘어간다. 읍내가 저 아래로 보이니 해가 져도 마음이 급하지 않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광대한 공터가 나오고 사랑채가 저만치 물러나 있다. 안채와 사당은 아직 보이지도 않는다 

안채를 둘러싼 장대한 돌담. 고택 전체의 담장이 아니라 안채만을 두르고 있는 담이다

보은읍내를 지척에 둔 평각리 쇠골재에서 멀리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해가 걸린 곳은 노성산(572m) 자락  

tip

보은공설운동장에 무료 주차장과 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다. 읍내가 가까워 식당과 편의점도 멀지 않다. 코스 도중에는 마로면소재지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삼년산성은 충분한 시간을 내서 도보로 성곽을 일주해보길 권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 코스 지도와 고도표, gpx 파일은 자전거생활투어(www.bltour.net)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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