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 단풍에 맞춰 올 걸...

 

들독재의 우편함. 늦게 가는 편지는 세월의 감속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들독재의 우편함. 늦게 가는 편지는 세월의 감속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화산봉 북사면을 돌아 나오면 장성쪽 편백림 북쪽 초입이자 영화 배경지로 유명한 금곡마을로 이어지는 들독재(수량동고개, 315m)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잠시 거쳐 가는 장성 땅으로, 저 아래로 장성호를 에워싸고 있는 성미산(385m)과 용두산(467m)이 겹쳐 보인다.

들독재 남쪽은 다시 고창 땅으로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축령산 정상부가 웅장하다. 신기마을까지 신나게 내려갔다가 문수사를 향해 다시 업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수사 단풍나무숲과, 드물게 북사면에 자리한 고찰의 사연이 궁금하다.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때인 645년에 창건했다고 하며 절 입구에 수령 100~400년의 단풍나무 고목 500여 그루가 자생한다. 신라 자장율사가 절 뒤쪽 자장굴에서 기도를 하고 절을 지었다는 얘기도 전하지만 솔직히 전국의 사찰 창건설화는 믿기가 좀 어렵다. 주변 산세가 중국 청량산(淸凉山)과 비슷하다고 해서 청량산으로 이름 붙여 일주문에는 ‘청량산 문수사’ 현판이 걸려 있다. 옛지도에는 문수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지금은 축령산으로 정착되었다.

과연, 주차장에서 불이문까지 200m 남짓한 진입로는 단풍나무 고목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최상류 골짜기 지형이 아늑하게 기복해 그윽하다. 절터는 축령산 북사면이기는 하나, 북쪽으로 작은 능선을 끼고 남면(南面)하고 있고, 서쪽으로 틔어 음습한 느낌은 없다.

들독재(수량동고개)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북쪽 풍경. 왼쪽은 고창MTB파크가 있는 방문산(640m), 오른쪽 뒤는 고창에서 가장 높은 방장산(743m) 

들독재의 '수상한' 조형물. 인근에 있는 수도처(세심원)에서 마음의 번뇌를 쓸어내라는 뜻으로 만든 것 같다

문수사 입구의 일주문에는 '청량산 문수사'로 적혀 있다. 축령산은 청량산, 문수산으로도 불린다. 일주문 뒤로 정상이 보인다

어린 단풍나무가 줄지은 문수사 진입로. 상하좌우로 일렁이는 길도 아름답다문수사 주변의 단풍(안내판 사진)

원래는 문수사 주차장에서 산허리를 가르는 임도를 타려고 했으나 사유지를 이유로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도리 없이 산을 내려가 은사리에서 다시 오른다. 이번에도 길이 막혀 있으면 난감한데 임도가 만나는 가엽삼거리는 다행히 열려 있다. 왼쪽 문수사 방면으로는 ‘출구 없음’ 표시가 되어 있다. 이후 갈림길마다 아래 마을 이름을 딴 ‘00삼거리’ 지명을 붙여 놓은 이정표가 있어 유익했다. 코스는 계속 행해야 하므로 삼거리에서 지명을 딴 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면 안 되고 마지막 평지삼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왼쪽 길로 가야 한다.

가엽삼거리 오르는 길목에는 넓은 감밭이 펼쳐지고 저 아래로 고창담양고속도로와 고창읍내가 보인다. 조망이 트인 벌목지를 지나면 바로 숲속이다. 축령산 기슭을 벗어나 두루봉(442m)을 돌아가는 길은 해발 250~300m에 불과하지만 워낙 숲이 울창하고 조망이 막혀 심심산골의 격리감이 대단하다. 그나마 3~4km마다 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와 속세와 멀지 않음을 말해준다. 세속을 떠나고 싶다가도 막상 이런 무인지경 산속에서는 인적이 아쉬우니 현실적 인간사의 한계다. 두평삼거리에 이어 구암삼거리를 지나 구황산(500m) 자락으로 접어든다. 저 아래로 조산저수지와 고창담양고속도로 교량(고수교)이 보이고, 그 뒤로 고창읍내가 아득하다.

축령산 중턱 해발 340m에 자리한 문수사. 북사면이지만 뒤쪽으로 작은 산줄기에 기댄 남향 터를 구축해 밝은 분위기다

 

문수사 아래의 단풍나무 고목지대

가엽삼거리에서 돌아본 화산봉(왼쪽 가까운 산)과 방장산. 방장산 방면으로 들목재가 보인다

갈림길마다 가까운 마을 이름을 딴 삼거리와 다음 삼거리까지의 거리를 표기한 이정표가 있어 위치를 가늠하기 좋다

구암삼거리 직후에 바라본 구암마을과 조산저수지, 고창담양고속도로 고수교, 고창읍내(가까운 곳부터 차례로)

대체로 울창한 숲속이지만 간혹 벌목지에서는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구황산 동사면의 용두삼거리는 해발 230m로 훌쩍 낮아지고 인근에 농장이 있어 하산이 끝난 것 같지만, 다시 북으로 주능선(300m)을 넘어야 한다. 고개 직후의 평지삼거리에서는 그만 하산해야 하니 이정표의 ‘무실마을’ 방면으로 직진하면 된다. 중간에 삼거리가 있는데 청계2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이 길로 하산해도 되지만 다운힐을 좀 더 즐기고 싶다면 직진해서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 소시랑봉(255m) 옆을 지나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마지막에는 조망이 트이면서 급사면 지그재그 다운힐이 나오고 들판에 내려서면 바로 무실마을이다.

산길만 근 30km를 달려서인지 들길은 소파처럼 안락하고 저절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게 된다. 고창의 평야는 완전한 평지가 아니라 30~50m의 낮은 언덕이 일렁이는 구릉지 들판이라 개방감과 입체감이 공존해 풍광이 특별하다.

용두삼거리 직후에 나오는 빽빽한 편백숲

평지삼거리에서 조금만 가면 이제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왼쪽 멀리 고창읍내가 보인다 

남고창IC를 통과하면 고수천변에 기이한 부곡리 고인돌이 있다. 고창이야 고인돌로 유명하지만 이렇게 받침돌이 높고 덮개돌이 공중에 떠있는 탁자식은 드물다. 뿐만 아니라 묘역과 제단을 함께 갖춘,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형식이다. 이 고인돌의 주인공은 제사장을 겸한 지역의 수장으로 사후에까지 권위를 발휘한 특별한 인물로 추정된다. 개울가 바위 위에 터 잡아 사방이 훤하고, 남방식 고인돌 447기가 밀집한 고창고인돌공원에서 6km 가량 상류에 있으나 중간의 도산리에 탁자식 고인돌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모종의 연관성을 짐작케 한다.

이제 읍내가 지척이다. 앞서 지나온 취석정을 거쳐 노동저수지 서편으로 복귀하려 했는데 공사중이라 길이 막혀 왔던 길을 다시 간다. 황혼이 지고 있건만 모양성에는 여전히 탐방객이 더러 있다. 천천히 성벽을 도는 사이 어둠이 내리고, 읍내에는 하나둘 불빛이 아롱거린다.

묘실과 제단(앞쪽의 바닥돌)이 함께 있는, 국내 유일의 부곡리 고인돌. 덮개돌에 비해 받침돌이 빈약해 보이는데도 2천년 이상을 버텨온 것이 신기하다

  

황혼이 내리는 모양성을 천천히 걷는다. 사진은 완벽한 옹성을 이룬 동문

모양성 내부에는 용수로 활용할 연못과 건물들이 있었다. 소실된 건물 중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tip

모양성 북문 근처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읍내 외에는 식당과 편의점이 없으므로 유의한다. 문수사 아래에는 사하촌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축령산~두루봉~구황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3km 내외 간격으로 하산로가 꾸준히 있어 체력이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마을로 내려갈 수 있고 어디서든 읍내까지는 8km 정도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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