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 부인의  영혼이 새가 되어 날아든 곳 

천전리 각석 방면으로 길고 장쾌한 다운힐이 시작된다. 왼쪽 멀리는 고헌산

서낭재에서 왼쪽 범서 방면으로 다운힐 한다. 울산시내가 멀지 않은데 첩첩산중 분위기가 물씬하다. 다운힐의 쾌감은 잠시, 220m까지 내려가는 바람에 400m 높이의 은을암까지 급한 업힐을 되올라야 한다. 은을암(隱乙庵)은 이름 그대로 새가 숨은 곳, 치술부인과 두 딸의 영혼이 새가 되어 날아들었다는 곳이다.

가히, 새가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는 국수봉 북사면 비탈면에 암자가 위태롭게 걸려 있다. 마당을 조성하려고 급사면에 가구(架構)를 만들고 대나무로 장식했는데 암자 입구는 가구 아래를 통과해서 진입한다. 암자를 지을 때 대단한 노역이 들어갔을 것이다.

극락전 옆에 있는 수직 바위 틈새 굴이 새가 숨어든 은을암(隱乙巖)이고 암자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은을암 자리에서는 치술령 정상이 마주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토함산 남쪽 삼태봉(630m)의 풍력발전기가 아득하다. 이 산줄기 때문에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왜 치술부인의 영혼이 새가 되어 이곳으로 숨어들었을까 궁금했는데 현장에 와보고 바로 이해했다. 치술령에서 바라볼 때 이곳이 가장 깊고 험한 곳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어쩌면 주민들이 숨진 모녀를 발견했을 때 마침 새 세 마리가 국수봉 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 전설의 시원인지도 모른다.

치술령과 국수봉 사이 안부인 서낭재에는 서낭정이 서 있다

은을암 업힐 도중 바라본 동쪽 조망. 발 아래 골짜기는 범서읍 일원으로 심심산골 분위기다. 맨 뒤 산줄기는 삼태봉~파군산~동대산으로 이어지는 울산 동부의 산줄기다. 저 너머에 동해가 있다

급사면에 터잡은 은을암. 앞마당이 구조물 위 허공에 있다 

위태로운 절벽에 자리한 은을암. 왼쪽 극락전 뒤 바위가 세 모녀의 영혼이 화한 새가 숨어들었다는 은을암(隱乙巖)이다

 

작은 전각 안에 있는 굴이 새가 된 세 모녀의 영혼이 들어갔다는 곳이다

굴은 꽤 깊이가 있어 보이고, 맑은 약수가 흘러내린다

극락전 벽에는 새가 되어 은을암으로 날아드는 치술부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은을암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국수봉 북릉을 넘으면 분지로 가는 하산길이다. 이제 분지를 가로질러 맞은편 연화산을 오를 차례다.

은편중리에서 전원주택 단지를 지나면 본격적인 임도가 시작된다. 길이 빤하고 노면이 좋아 어렵지 않게 주능선에 올라서고, 서사면을 돌아 천전리 방면으로 신나는 다운힐을 즐긴다. 연화산은 특별할 것 없는 500m급 산이지만 동쪽에는 침식분지가, 서쪽에는 기이한 협곡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이 협곡에는 선사시대 암각화와 각석 등이 남아 있어 신비를 더한다.

임도를 내려가면 바로 나오는 천전리각석은 신석기시대부터 신라에 걸쳐 길이 9.5m, 높이 2.7m의 반듯이 다듬은 벽면에 각종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벽면은 위가 앞쪽으로 15도 기울어져 암각화가 보다 잘 보존되었다. 윗부분은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에 걸쳐 사람과 각종 짐승, 물고기, 기하학적 무늬 등이 새겨져 있다. 아래 쪽에는 신라 때 새겨진 것으로 인물과 배, 글씨 등이 보인다. 명문에는 신라 화랑과 귀족 이름이 등장해 왕실과 화랑이 즐겨 찾던 명승지로 추정된다. 지금 보아도 들판과 멀지 않으면서 세상과 단절된 듯한 협곡과 맑은 계류는 선경이다. 협곡 서편에 바로 언양 방면 들판이 펼쳐져 물은 산에서 들 쪽으로 흘러야 싶은데, 반대로 흐르는 것도 신기하다.

은을암 인근의 아름다운 숲길

 

연화산 주능선에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언양대곡 방면으로 가야 하며, 멧돼지 주의 안내판이 붙어 있다

연화산 서쪽 기슭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파노라마. 맨 뒤로 신불산(1159m)~간월산(1069m)~가지산(1241m) 줄기가 웅장하다

 

천전리각석은 신석기시대부터 신라에 걸쳐 길이 9.5m, 높이 2.7m의 반듯이 다듬은 벽면에 각종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벽면은 위가 앞쪽으로 15도 기울어져 암각화가 잘 보존되었다

각석 아래쪽에 새겨진 글씨는 대부분 신라 때의 것으로 귀족과 화랑의 이름이 있어 이들의 유람터였음을 알 수 있다 

천전리각석에서 마치 하류 같은 상류 방면으로 나가면 KTX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두서면 들판으로 나가게 된다.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북상하다 인보리에서 우회전하면 대곡호 상류를 건너는 삼정교를 통과한다. 연화산 서쪽 자락을 길게 파고든 대곡호는 앞서 본 천전리각석의 상류로 태화강 줄기에 해당하며, 대도시 인근임에도 깊은 산중호수 분위기가 좋다.

삼정교를 건너 삼정교차로에서 다시 ‘천전리각석’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도로는 번듯한데 민가나 마을이 아예 없는 무인지경의 기묘한 산길이 시작된다. 길은 점점 좁아지다가 순천골저수지를 지나면 임도 수준으로 변하고 경사도 심해진다. 고도가 높아지고 조망이 트이니 저편으로 고헌산(1034m)이 영남알프스의 서막을 알리고 섰다.

해발 320m 임도삼거리는 앞서 천진리각석을 향해 다운힐을 시작했던 곳이다. 여기서 200여m 더 가서 왼쪽으로 오르면 연화산 정상 방면이다. 이윽고 해발 440m 지점에서 연화산 정상 업힐과 구미리 하산길이 나뉜다. 시간이 다소 늦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정상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른쪽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가는 두서면 들길 

고요하면서도 산중호수의 신비가 어려 있는 대곡호

대곡호에서 연화산을 오르는 길. 마을도 인적도 아예 없는 적막강산이다

연화산 정상. 숲에 가려 조망은 트이지 않는다 

연화산 활공장에서 북으로 바라본 경주 방면. 오른쪽 뒤로 남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연화산 그림자에 잠식되어가는 두동분지, 다랑논과 마을이 잘 어우러져 있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있다. 연화산 정상은 방송사 중계탑이 있고, 정상석은 숲 속에 숨듯이 있어 조망이 트이지 않으나 바로 옆 활공장에 나서면 두동분지와 치술령, 국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치술령과 국수봉에서 흘러내린 선상지는 수십겹 다랑논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가을의 풍요를 담은 마을들은 점점이 분지를 메우고 있다.

1600년 세월에 박제상과 치술부인의 슬픔은 증발해 버렸고 치술령과 분지는 오늘을 사는 사람과 뭇생명의 터전으로 남았을 뿐이다. 연화산의 거대한 그림자가 분지를 조금씩 잠식하며 황혼을 예고하고 있다. 북쪽 멀리 경주 분지와 남산이 희미하다.

 

tip

박제상유적지 근처와 분지 곳곳에 식당이 분포한다. 법왕사, 은을암, 연화산은 임도 수준의 길이 나 있으나 마지막에는 경사가 심하다. 치술령 정상은 따로 시간을 내서 등산으로 올라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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