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등지고 지평선 속으로

계화간척지에서 가장 긴 직선로에서. 장장 7km나 이어지며 도열한 전봇대는 끝 간 데가 없다
계화간척지에서 가장 긴 직선로에서. 장장 7km나 이어지며 도열한 전봇대는 끝 간 데가 없다

계화산 전체가 최고의 전망대이건만 산길에서는 숲이 가려 조망이 별로 없다. 간간이 나무 틈 사이로 끝도 없이 펼쳐진 대지는 더욱 감동적이다. 정상은 200평 남짓 평지를 이루고 봉화대와 작은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주변을 벌목하고 번듯한 전망대로 가꾸면 국내 유일의 일망무제 광야를 볼 수 있는, 최고의 명소가 될 텐데 참으로 아깝다. 작은 전망대에서는 그나마 새만금 방면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바다이기도 호수이기도 한 야누스 수면 위로 종횡무진 뻗어나는 길은 거대한 화폭에 도안한 듯 장대하다. 수평선은 지평선과 겹치고, 기나긴 방조제는 수평선과 지평선 사이에 또 다른 구획을 그으니 자연을 화폭으로 마음껏 그려대는 문명의 붓놀림에 감탄할 뿐이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그나마 변산반도의 기괴한 봉우리들이 산세를 과시하며, “여기 나 같은 산도 있소!”하고 하소연하건만 잦아드는 외마디 외침에 그친다.

계화산 중턱에서 바라본 호남평야. 지평선 끝에 우뚝 솟은 모악산(794m)은 이 광야를 품에 안듯이 솟아 '어머니 산'으로 숭앙받는다 

계화산 정상에는 봉화대와 작은 전망대가 있고 서쪽 조망만 잘 트인다

계화산에서 바라본 남쪽 조망. 광대한 청호저수지 뒤로 부안과 정읍 방면 평야가 아득하다. 왼쪽에 살짝 보이는 산은 동학농민운동의 불씨가 된 고부관아 옆 두승산(444m)  

계화산 남쪽으로는 변산반도의 산들이 광야의 끝을 이룬다. 가운데 오른쪽 구조물이 선 봉우리가 변산반도 최고봉인 의상봉(509m)

계화산 하산로. 산과 평야가 한 화각에 들어간 장면은 호남평야에서 귀하다  

계화마을에서 바라본 대평원과 가물거리는 지평선 

계화산을 내려와 계화면의 광야를 가로지른다. 일찍이 1960년대에 동진강 하구 남북을 간척하면서 북쪽에는 광활면(김제), 남에는 계화면(부안)의 대평야가 생겨났다. 바둑판 형태로 구획된 대지는 하늘에서 보면 디지털 사진의 화소를 확대한 듯 하고, 한 구역은 정확히 가로 100m, 세로 50m이다. 그 사이로 장장 7km나 뻗어난 가장 긴 직선로를 달린다. 전봇대가 끝없이 도열한 들판 중에 홀로 서니, 어디가 누구 땅인지 어떻게 구분하는지가 궁금해진다.

계화면의 중심지, 계화면소재지 역시 널찍널찍한 바둑판식 구획으로 마을이 조성되어 미국 서부의 마을을 연상시킨다. 기이한 것은 중학교는 있는데 초등학교는 계화도에 있는 점이다. 면소재지는 간척 후 새로 생겼고, 계화도 마을이 적지 않은데다 원래 있던 학교여서 그대로 유지하게 된 모양이다. 어쨌건 면소재지 아이들이 낙도(?)의 학교로 통학하는 모양새는 기이하다.

 

직선로에서 뒤돌아본 계화산

먹음직한 마시멜로(?)가 가득하고, 풍요와 여유가 감도는 들판

길이 널찍하고 마을이 바둑판처럼 구획되어 있는 계화면소재지  

면소재지를 벗어나 청호저수지 방면으로 가다 보면 들판 가운데 조그만 언덕이 있다. 호남평야에서는 해발 30m만 되어도 산 이름이 붙는데, 이 언덕은 해발 11m인데 ‘조봉산(鳥峯山)’이라고 한다(높이가 4.3m로 표기된 자료도 있으나 이는 언덕 아래의 삼각점 높이로, 정상 높이는 아니다). 원래 바다 중의 작은 섬으로 갈매기가 많이 날아들어 조봉이 된 듯하며, 간척으로 인해 육지 속의 작은 언덕이 되었다.

정상에는 전망대를 겸한 계화정이 있고 아래쪽에는 1963년 물막이공사를 시작으로 1978년 간척을 완료해 2700ha(약 800만평)의 농지를 만든 것을 기념하는 ‘계화도농업통합개발사업 준공기념탑’이 우뚝하다. 작은 바위섬에서 평야 중간의 언덕이 되었으니 계화면 간척지에서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가 아닐 수 없다. 하여튼 조봉산은 산명이 붙은 곳 중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곳 아닐까 싶다. 울진의 굴미봉(2.9m)을 가장 낮은 산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이 높이역시 언덕에 자리한 삼각점 기준이고, 바로 옆에 돌출한 바위는 높이가 10m 정도 되어서 해발 기준이면 조봉산과 비슷할 것이다. 육안으로 보는 입체감이나 임팩트는 단연 조봉산이 압도적인 저산(低山)이다.

국내에서 가장 낮은(?) 산을 다투는 조봉산. 해발 11m로 오른쪽에는 계화도간척지 완공을 기념하는 ‘계화도농업통합개발사업 준공기념탑’이 우뚝하다   

변산반도와 계화산 사이에는 석불산(290m)이 가파른데 그 아래에 청호저수지가 안겨 있다. 간척 공사 때 농업용수 공급용으로 만든 인공호수로 면적 5㎢(약 151만평), 둘레 8km의 대규모다. 호수와 석불산 사이를 가르는 길을 넘어가면 다시 광야가 확 펼쳐지고, 출발지인 새만금 환경생태단지가 평야 초입에 지척이다.

산속을 오래 누비면 거친 스릴감에 심신이 반응하며 호연지기가 차오른다면, 광야에서 장시간 보내니 만사가 평화롭고 어떤 상황도 관조할 수 있을 것처럼 관용적이 된다. 시공간이 확대되는 과장감이 일상사를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일까.

들판에서 석불산으로 접어드는 둑길. 거센 삭풍에 억새가 깊이 누웠다

 

호남평야에서는 모든 것이 광대하다. 둘레 8km의 청호저수지를 지나며 

 

tip

계화산은 길이 잘 나 있고 도보로 왕복 40분이면 충분하기에 꼭 올라보기를 추천한다. 계화면소재지에 식당 여러곳과 편의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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