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산속인데 황혼이 지누나

 

존제산 680m봉에만 겨우 햇살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로 임도가 등고선으로 흐른다
존제산 680m봉에만 겨우 햇살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로 임도가 등고선으로 흐른다

존제산 남사면을 돌아가는 구간은 벌목지가 많아 길 옆은 낭떠러지이고 조망이 탁 트인다. 주월산에서 충분히 감탄했건만 연속 탄성을 멈출 수 없다. 늦가을 짧은 해는 이미 사라져 서편의 산은 짙은 실루엣만 남았지만 동쪽은 잔광을 받아 굴곡 따라 음양이 대비되어 지면의 표정이 선명하다.

고흥은 반도, 남해는 섬이건만 여기서는 첩첩산중일 뿐 차이가 없다. 그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갇힌 내해(內海)이니 호수나 마찬가지다. 지독한 리아스식 해안에서 육지와 바다는 가장 길고 깊은 접점으로 교감하니 남해에서 가장 다정쿠나, 산이여 바다여.

코스의 최고점인 동릉을 돌아가면 바로 다운힐인 줄 알았는데, 아뿔싸 저편으로 통신탑이 선 670m봉 아래로 아직 등고선 길이 한참이다. 680m봉 정상에만 겨우 햇살이 걸렸으니 이제 곧 어두워질 것이다. 게다가 자전거 배터리는 조금 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아직 출발지인 겸백면사무소까지는 20km나 남아 보통 낭패가 아닌데도 마음은 태연하다. ‘끌바’를 하더라도 저 680m봉만 돌아가면 출발지까지는 대부분 다운힐이니 걱정을 던다.

존제산 임도는 벌목지가 많아 조망이 잘 트인다. 동릉을 넘어가는 길이 허리를 가르고 있는데 앞서 주월산에서도 보였던 구간이다 

존제산 남사면에서 바라본 예당평야와 득량만 그리고 고흥반도. 득량만은 육지와 섬으로 둘러써야 거대한 호수 같다

시멘트 포장 임도에 흔히 있는 철제 배수로에 놀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폭이 15cm 정도여서 직각으로 진입하면 바퀴가 저절로 넘어간다  

마침내 680m봉과 큰봉(572m) 사이 고개(540m)에 도착해 진짜 한숨을 돌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낙안읍성과 그 뒷산인 금전산(668m)이 가깝고 그 뒤로는 광양 백운산(1222m)이, 맨뒤로는 지리산 천왕봉(1915m)마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북쪽으로는 정상까지 라이딩으로 올랐던 순천 고동산(710m)~조계산(887m) 줄기가 근육질로 꿈틀 댄다. 북서쪽으로는 모후산(919m)과 무등산(1187m)까지 한 시야에 들어와 남도의 명산 대부분이 보이는 셈이다. 숨을 죽이며 국토의 장관을 바라보는 사이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어둠이 덮치기 시작한다. 주릿재에 내려서자 율어분지는 황혼의 끝자락을 겨우 붙잡고 있다. 그래도 뭔 걱정이랴, 길은 한가하고 내리막이니 어둠마저 정답구나.

존제산 동릉을 돌아가면 보이는 낙안읍성과 금전산(가운데 암봉, 668m). 금전산 뒤로 광양 백운산(1222m) 줄기가 장중하다  

동북릉을 지나니 북쪽으로 조계산(왼쪽, 887m)~고동산(710m) 줄기가 선명하다왼쪽 멀리 무등산(1187m)이 황혼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쪽으로는 망일봉(653m) 뒤로 모후산(918m)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존제산 다운힐. 해가 져가지만 내리막의 연속이니 걱정이 없다

주릿재(355m)에서 바라본 율어분지 

주릿재에 있는 태백산맥문학비와 팔각정

율어분지에서 올려다본 존제산과 다랑이논 

 

tip

겸백면소재지에 작은 식당 겸 가게가 있고, 그 다음은 코스에서 조금 벗어난 조성면소재지가 다소 번화해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산을 두 개나 넘는 52km 장거리 코스여서 일정계획을 잘 짜야 한다. 존제산 정상부는 군부대가 있어 출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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