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산성 ~ 충주호 23km

충주산성 ~ 충주호 23km
조망 절정의 산성과 고요 절정의 호수

한반도의 중심에 작은 분지를 이룬 충주는 예로부터 중원(中原)으로 불릴 정도로 지리적 요지였다. 고대에는 삼국이 각축전을 벌여 일대에는 산성도 많다. 충주시 남쪽에 솟은 남산(636m) 정상에는 조망이 탁월하고 성벽이 웅장한 충주산성이 있다. 바로 동쪽으로는 국내 호수 중 가장 아름답다는 충주호가 높고 깊은 산악지대에서 그림처럼 잠겨 있다. 충주산성과 충주호 호반을 함께 누비는 호사를 누려본다

 

충주산성 남단에서 동쪽 방면 조망. 산줄기 사이로 충주호가 종잡을 수 없는 형태로 용트림을 하고 이윤기 이사는 구름에 머리를 가린 월악산(1097m)을 가리키고 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단순명쾌한 자연풍광이 내면의 실타래를 푸는 데 도움을 준다. 적막만이 감도는 산중호수와 조망이 탁 트인 산꼭대기가 특히 좋다. 인간은 사람이든 자연물이든 대상에 걸맞게 내면과 외모를 조정하게 된다. 아기를 보면 눈을 낮춰 같이 아기 목소리를 내고, 거창한 장관 앞에서는 손을 벌려 스스로를 확장하면서 감탄사까지 터뜨린다.   
충주가 떠오른 것은 복잡한 심사의 반영일 것이다. 국토의 정중앙에 자리해 옛날부터 중원(中原)으로 불리며 삼국시대는 각국이 영토적 야심을 불태웠던 곳이다. 영남과 서울을 연결하는 주요 길목인 조령과 죽령 두 고개도 충주를 거쳐가 교통과 전략적 요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충주에서 결전을 벌인 것도 이런 지리적 입지 때문이다.
이 깊은 내륙산간에 조용히 깃들어 있는 충주호는 1985년 완공된 충주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다. 소양호 29억톤에 버금가는 27억5000만톤의 저수능력을 갖춘 거대 호수는 호수라기보다 지형이 복잡한 리아스식 협만 같다.
이제 충주산성에 올라 장쾌한 조망에 탄사를 내뱉고, 적막한 호반길에서는 사색에 잠길 것이다.  

 

충주산성 동문 근처의 까마득한 성벽. 석축 높이만 10m에 육박하고 그 아래로 다시 15m 높이의 가파른 절개지가 있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느껴진다. 석축 방식은 신라계통으로 추측된다

 

시내에서 고개만 넘으면 바로 충주호
이 아담하고 맑은 도시는 찾을 때마다 묘한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만 같다. 길이 사통팔달로 뚫렸지만 큰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는 여전히 고립된 듯 하고, 탄금대를 휘도는 남한강 줄기는 보조댐(조정지댐) 때문에 거의 호수 같다. 바다가 가장 멀리 있는 깊은 내륙에서 산과 호수로 주변을 에워싼 도시. 언제적 충주인데 이제껏 인구 21만의 소도시로 머문 무변화의 정체성마저도 특별하다.
서쪽에서 충주에 진입하면 시내 뒤편으로 두 산이 우뚝하다. 왼쪽의 더 높은 산은 계명산(776m)이고 오른쪽은 남산(636m)이다. 두 산 사이에 오목한 안부가 마즈막재(260m)인데 이 고개만 넘으면 바로 충주호다. 마즈막재를 넘어 호반의 펜션에 숙소를 잡고 남산 정상에 있는 충주산성을 돌아 호반 임도를 달릴 계획이다. 코스 길이는 23km밖에 되지 않지만 험준한 충주산성 1120m를 한 바퀴 돌려면 시간과 체력은 다소 들 것이다. 남산 정상까지 뚫린 길은 충주산성 관리를 위한 것으로, 산성과 호수까지 한번에 돌아볼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다.
 

호반의 밤
마즈막재를 넘어 목벌동 방면으로 직진하면 길은 호반의 산기슭을 따라 극심한 만곡을 그린다. 마즈막재에서 5km 가량 들어가면 길이 끝나고 호반 언덕에 자리한 남벌 마을에 펜션 4곳이 줄지어 있다. 그중 가장 안쪽에 있고 마당이 널찍한 펜션에 자리를 잡았다. 평일이라 객실은 텅 비었고 주인도 우리에게 다 맡겨 두고는 시내로 볼일 보러 나가버린다.
방에서 호수가 바로 마주보이는 호반의 정취에 그냥 마음이 설레는 밤이다. 호수는 해변과는 또 달라서 풍경도, 수면도 내내 고요할 뿐이다. 간혹 물살을 가르는 모터보트의 소음이 정적을 깨지만 그 역시 호반 풍경의 일부다. 마냥 이렇게 호수만 보고 살다가는 우울증이 올 것 같지만 어쩌다 찾는 나그네에게 호반은 가슴 뛰는 매혹이다.
이 적막강산 속으로 세 도시 남자가 찾아 들었으니 그들의 밤은 불문가지다. 대형 펜션까지 전세를 내어 마당도 독차지다. 호반 언덕에서 판을 벌인 작은 바비큐 파티는 그예 밤을 잊었다.
충주호의 이 놀라운 고요와 깊은 맛은 내륙산간에 생겨난 인공호수이기 때문이다. 산협을 흐르던 작은 물줄기가 급팽창하면서 수면은 등고선을 따라 차올라 산허리를 적시며 내륙의 리아스식 해안을 만들어냈다. 이 깊은 골짜기에서 물도 산도 길도 어디 하나 직선은 없다. 술에 취하든, 풍경에 취하든 사람마저 흐느적거린다. 그러면서 마음은 걱정을 덜고 근심은 수면 아래로 잠긴다.

 

멀리 충주댐이 보이는 호반길. 바다와 달리 호수는 언제나 고요와 침묵에 휩싸여 있다
나즈막재에서 충주산성 오르는 길은 급경사에 헤어핀의 연속이다
남동쪽 성벽에는 성벽 아래에 근접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치성(雉城)이 있다

 

충주산성의 위용
더위가 맹위를 떨치기 전에 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선다. 충주산성을 오르는 좁고 음침한 길은 생각보다 매섭다. 충주시내 쪽에서 무던해 보이던 남산이지만 동쪽은 급사면을 이룬다. 그나마 코스가 짧아 배터리 걱정 않고 어시스트를 높여 느긋하게 오른다.
마침 비가 내린 후라 대기가 선명하다. 정상에 오르면 놀라운 조망이 기다릴 것이 분명하다. 이윽고 길은 성벽 바로 아래까지 근접했다. 해발 540m 지점인데 정상까지 이어지는 성벽 자체의 상하 울렁거림이 근 100m나 된다는 뜻이니 답사가 만만치 않겠다는 걱정부터 든다.
충주산성의 위용은 기대 이상이다. 일부 복원을 하긴 했지만 석축 성벽만 높이가 7~10m에 이르고 석축 아래 자연 급사면까지 활용해 실제는 높이 20m 이상의 성벽을 구축했다. 이런 방식은 삼국시대 산성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널찍한 활석을 활용한 축성 방식과 성벽의 형태는 아무래도 보은 삼년산성, 단양 온달산성과 궤를 같이해서 신라계통으로 여겨진다.
후대의 기록에는 백제 구이신왕(420~427) 때 쌓았다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후 신라가 공취해서 수축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삼년산성(470년 완공)과 비슷한 시기에 축성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 후에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잠시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고구려-수나라 전쟁(598~613)을 틈타 신라가 장악했을 것이다. 평강공주의 남편 온달장군이 “계립현과 죽령 이서의 땅을 도로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출정한 바로 그 땅이다. 온달장군은 결국 이 땅을 되찾지 못하고 단양 온달산성에서 신라군에 패해 최후를 맞는다.
주인이 자주 바뀔 정도로 충주 일원은 삼국이 눈독을 들인 요지였던 것이다. 특히 신라 입장에서는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 하류로 당과 교통할 수 있는 관문이어서 반드시 장악해야 할 요충지였다.

충주산성 서벽이 자연스럽게 구비친다. 뒤편으로 계명산이 가파르게 솟았다

 

산꼭대기에 성을 쌓은 선조들의 안목
자전거를 타고 성벽을 어렵지 않게 일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눈앞에서 아득히 솟은 성벽을 올려다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선 성벽 위까지 이 무거운 자전거를 옮기는 것부터가 난제다.
이윤기 이사는 내 자전거는 두고 촬영용으로 자기 자전거만 가져가자고 하는데 자물쇠도 없고 그러기에는 미안한 일이다. 일단 자전거를 메고 올라가보기로 한다. 성벽 위 상황을 보고 여의치 않으면 자전거를 두고 걸어서 성을 돌기로 했다.
다행히 성벽 위는 정리가 되어있어서 간혹 급경사가 있어도 이동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서문터 바로 옆은 골짜기가 모여드는 수구(水口)여서 예상대로 우물이 복원되어 있다. 물이 맑고 깊어 최대 1000명은 기대 살 수 있을 것 같다.
성벽은 자연절벽을 절묘하게 이용해 석축을 최소화하면서도 방어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충주호를 에워싼 준봉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월악산(1097m)을 지나 문경의 주흘산(1106m)과 조령산(1025m)도 선명하다. 역시 충주가 새재와 죽령으로 이어지는 요충지임을 재확인한다. 지금은 호수에 잠겼지만 옛날에는 개울물 수준이던 이 남한강이 이동 통로가 되었을 테니 충주산성의 전략적 입지는 더욱 높았을 것이다. 
북문지를 지나 서사면으로 돌아서니 충주시내가 바로 발밑이다. 계명산이 아니라 여기 남산(금봉산이라고도 한다)에 성을 쌓은 이유는 역시 조망과 지리적 이점이었다.  
지난봄에 올랐던 음성 가섭산(710m)이 정서로 보이는데 그 아래를 통하면 경기 남부의 평야지대로 곧장 이어진다. 북쪽으로는 남한강을 따라가면 여주, 양평이 멀지 않다. 역시 사통팔달의 입지다. 대기가 대단히 깨끗해서 무려 77km나 떨어진 양평 용문산(1157m)까지 보인다.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여러번 지나다녔지만 내부가 보이지 않던 충주비행장(군용) 활주로도 선명하다.
이 놀라운 조망만으로도 충주산성은 올라볼 가치가 충분하다. 그 옛날 장군과 병사들은 이 성벽에 서서 긴장된 마음으로 적정을 살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긴장감 대신 기쁨과 설렘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동문은 공격은 어렵고 방어는 쉬운 옹성 형태다. 뒤편에 우물이 살짝 보인다
서벽에서는 충주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대기가 맑아 77km 거리의 양평 용문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재오개 임도의 370m 고개를 넘으면 월악산 방면으로 충주호가 보인다

 

호반을 향해 장쾌한 다운힐
이제는 숙소가 있는 호반까지는 대체로 다운힐만 남았다. 도중에 높이 370m의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지만 이미 지대가 높아서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충주산성에서 남쪽 재오개리 방면으로 시원한 다운힐의 연속이다. 다만 도중의 삼거리에서 석종사 방면으로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삼거리에서 좌회전).
재오개마을을 벗어나자말자 왼쪽 동막골길로 들어서서 800m 가면 외딴집이 나오고, 집 앞에서 다시 임도가 시작된다. 이 길이 370m 고개를 넘어 호반을 따라 출발지인 목벌동으로 이어진다. 산은 낮지만 인기척이 사라진 산길은 원시림 특유의 중압감마저 느껴진다. 언제 어디서 야생동물이 튀어나와도 어울릴 것만 같은 분위기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목벌동까지는 짙은 숲속 다운힐이다. 숲터널과 햇살 트인 곳의 밝기 차이가 너무 커서 눈이 채 적응을 못할 정도로 음습한 분위기다. 그러니 속도를 더 내게 되는 걸까. 쾌속으로 달려 어느덧 호반이 눈앞이다.
산성 답사로 시간을 보내느라 어느덧 12시가 가까운데 주인은 체크아웃을 독촉하지도 않는다. 완주에 2시간이면 될 것 같았지만 4시간 가까이 지나 있다. 고요와 여유는 어딘가 연결고리가 있는 게 분명하다. 

여정
충주시내에서 가까워 수도권에서 당일 코스로 충분하고, 숙식을 충주시내에서 해결해도 된다. 하지만 호반의 정취를 맛보고 싶다면 목발동에 있는 펜션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여유를 만끽해보기를 추천한다. 충주산성은 취재팀은 억지로 자전거를 가져가서 ‘끌바’와 ‘멜바’를 반복했지만 동문가에 자전거를 두고 보행으로 돌아보는 것이 안전하고 여유롭다. 만약을 대비해 자전거를 묶을 수 있는 자물쇠를 휴대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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