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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섬 신안 기점 · 소악도자전거도 마음도 욕심도 느려지는, 12사도 예배당 순례길

자전거도 마음도 욕심도 느려지는, 12사도 예배당 순례길  
순례자의 섬 신안 기점 · 소악도

신안군은 잊혀진 낙도인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네 섬에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집을 테마로 한 순례자의 길을 새로 조성했다. 각각의 작가가 설계한 집은 중세 유럽의 건축을 닮아 인적 없는 낙도의 한쪽에서 단연 눈에 띈다. 1번 베드로의 집부터 12번 가롯 유다의 집까지 12km에 불과해 걷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대기점도 북쪽으로 꽤 큰 병풍도와 노두길이 연결되어 있어 섬 여기저기를 다 돌아보면 20km 이상의 코스가 나와 느린 자전거 여행지로 적격이다 

2번 안드레아의 집. 동화적인 하늘색 지붕과 고양이 상이 인상적이다

 

‘1004 섬’의 고장, 신안은 거의 몇 달 단위로 괄목상대해야 한다. 1000여개 섬 하나하나가 착착 특별한 명소로 거듭나고 있어 앞으로는 신안 답사에만 몇 달이 걸려야 할지도 모른다. 

괄목상대(刮目相對)는 눈을 비비고 상대를 다시 본다는 뜻인데, 원래는 중국 고서의 ‘선비는 헤어져서 사흘만에 만나도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한다(士別三日則更刮目相對)’에서 나온 말이다. 사흘 동안에도 학식과 인품이 달라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천혜의 자연자원을 갖추어도 신안처럼 갖은 스토리텔링을 입히고 특별한 테마를 만들어 후미진 오지까지 상전벽해로 바꾸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곳은 드물다. 
이번에는 기점도와 소악도 일원에 조성된 12사도 예배당 순례자의 길이다. 전남도가 선정하는 ‘가고 싶은 섬’ 프로젝트의 9번째 사업으로 11월 23일 ‘섬 여는 날’ 행사를 열었다. 전남도는 2015년부터 ‘가고 싶은 섬’ 16곳을 선정해 주민이 살고 싶고 여행자가 가고 싶은 섬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강진 가우도, 여수 낭도, 고흥 연홍도, 완도 생일도에 이어 이번에 기점·소악도에 순례자의 길을 개장했다.  

외딴 섬의 이색 풍경  
명칭은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길’이지만 정확히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네 섬인데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 예배당을 주제로 순례자의 길을 조성한 것이다. 12사도와 이 외딴 섬들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들 섬은 주변 큰 섬 중에 증도와 가장 가깝고 행정구역상으로도 증도면에 속한다. 증도면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순교자인 문준경 전도사의 고향이고, 주민의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점에 착안해 ‘순례자의 섬’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주제만 기독교일 뿐, 굳이 신자가 아니라도 순례자의 길은 매혹적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기독교도만을 위한 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육지에서는, 다른 섬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경관과 섬사람들의 소박한 살림살이, 섬과 섬을 잇는 장대한 노두길, 무인지경 오솔길 끝에 문득 서 있는 이국풍의 작은 예배당은 그 자체로 서정이요, 낭만의 여로다. 
12사도의 집(예배당)을 연결하는 길은 총 12km이니 집 간의 거리는 평균 900m 정도다. 자전거로는 너무 가깝지 않은가 싶을텐데 새로운 풍경을 차분히 음미하며 천천히 움직이기에는 적당한 간격이다. 속도에 민감하지 않고 풍경에 잘 녹아들어가는 미니벨로가 특별히 어울린다.   

대기점도에서 시작 
병풍도~기점도~소악도는 증도 동남쪽에 남북으로 길게 일직선으로 도열해 있는 일종의 작은  열도다. 서로 노두길이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섬이나 마찬가지로 압해도 송공선착장, 지도 송도선착장, 증도 버지선착장, 무안 신월선착장에서 배편이 있다. 수도권에서 접근할 경우, 무안 신월선착장이 가장 가깝다.      
취재팀은 자료에 나온 시간표를 믿고 송공항 10시30분 배를 타려고 갔더니 겨우 며칠 전에 시간표가 바뀌어 9시40분에 이미 출항하고 난 뒤였다. 다음 배는 오후 12시50으로 너무 늦어 무안 신월선착장으로 가서 11시30분 배에 승선했다. 연안 여객선의 시간표는 계절에 따라 자주 바뀌므로 기존 정보를 그대로 믿으면 곤란할 수 있다. 출발 전에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신월선착장은 무안군에 속하지만 배편은 모두 신안 섬 방면이다. 다만 많은 섬을 일일이 거쳐 가서 모든 역에 정차하는 완행열차처럼 느리고 구불구불 움직인다. 바로 맞은편의 고이도에 잠시 들린 후 지난 4월 수선화 축제가 열린 선도에 도착한다. 꽃은 졌지만 봄날을 화사하게 장식했던 선도의 구릉지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작은 섬답지 않게 238m의 꽤 높은 매화산을 솟구친 매화도와 노두길로 이어진 마산도를 거쳐 이윽고 병풍도 북단의 보기선착장에 도착한다. 신월항에서 직선거리로 8km인데 1시간이나 걸렸다.  

예수님의 제자 12사도의 집을 미니 예배당으로 만들어 특별한 풍경과 매력을 완성시켰다. 멋진 아이디어로 낙도에 새로운 전설이 시작된다 . 5번 필립의 집

 

 

병풍도에서 남하 
병풍도 최북단의 보기선착장은 접안시설만 있을 뿐 대합실도 없다. 원래는 보기도라는 작은 섬이었으나 갯벌을 간척해 병풍도와 한 섬이 되었다. 서쪽에 딸린 작은 신추도부터 먼저 들린다. 염전과 밭이 조금 있고 달랑 두 가구뿐인데 그 나마 한집만 사람이 상주한다. 들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 초겨울의 스산함, 쓸쓸함이 처연하게 묻어난다.   
열도에서 가장 큰 병풍마을은 100가구가 넘어 꽤 크지만 아이들로 시끄러웠을 분교는 폐교된 지 오래고 단 하나뿐인 농협 마트는 기약도 없이 문이 닫혀 있다. 
병풍도 남단에는 1km에 달하는 노두길이 대기점도를 향해 뻗어난다. 원래 노두길은 썰물 때 건너다니기 위해 바윗돌로 만든 조악한 길이지만 지금은 대형트럭도 거뜬히 다니는 시멘트길이다. 다만 교각이 없이 갯벌 바닥에 달라붙어 있어 밀물 때 잠기는 것이 일반 다리와는 다른 점이다. 
대기점도로 들어서서 왼쪽 대기점항으로 향한다. 대기점항에 1번 베드로의 집이 있다. 

대기점도에 가장 많은 5곳의 집   
첫 번째 베드로의 집은 300m나 갯벌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선착장 바로 곁에 하얗게 서 있다. 복층 형식의 8각형 건물은 진청색 둥근 지붕을 이어 지중해변의 그리스풍으로 화사하고 선명한 잔상을 남긴다. 어부 출신인 베드로에 걸맞는 분위기다. 건물은 원래 크기가 아니고 1/3 정도의 축소판이어서 장난감처럼 앙증맞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곁에 작은 미니벨로를 세우니 그냥 그림이 된다. 실내는 한두 사람이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집’이라고 표현했지만 작은 예배당이다.  
2번 안드레아의 집은 노두길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다. 베드로의 동생인 그 역시 어부였으니 바닷가가 적격일 것이다. 건물은 어딘가 동화적인 아랍풍이고 고양이 상이 지키고 있다.
3번 야고보의 집은 산기슭에 높다랗게 자리 잡았다. 그 역시 어부였으며 사도 요한과는 형제간이다. 12사도 중 최초로 순교한 사람으로, 중세에 그의 유해가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옮겨졌다는 전설로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인공이 되었다. 숲속에 그리스 신전풍의 백색 집에 빨간 문이 있어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야고보의 동생 요한의 집은 슬릿창을 낸 백색건물이 첨성대를 닮았다. 천장에는 선명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햇살을 환하게 여과한다. 
개인적으로 입지와 경관, 형상에서 가장 독특한 집은 5번 필립(필립보)의 집이다. 대기점도 남단, 소기점도로 이어지는 노두길 초입의 언덕 위에 있다. 가파른 지붕과 비늘 같은 지붕장식, 상승곡선의 용마루는 헨젤과 그레텔이 문을 열고 곧 나올 것만 같이 비현실적이다. 

 

 

소기점도와 소악도에 4곳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아쉽게도 공사중이다. 소아시아(터키)와 인도에까지 포교했다는 사도다. 저수지 가운데 인공섬으로 조성되는 그의 집은 12월말쯤에는 완성될 것이다.
소기점에는 순례자나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식당, 인포메이션 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순번으로는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과 7번 토마스의 집 사이다. 게스트하우스는 2층 침대가 가지런히 놓인 남녀 각 8인실(1인당 1박 2만원)이고 아래층에는 식당이 있다(1식 8000원). 아직은 한가하지만 조만간 예약이 밀려들 것이다.
7번 토마스의 집은 소악도 방면 노두길 초입에 있다. 새하얀 건물과 진청색 창틀은 풍경화 속의 선명한 포인트로 시선을 붙잡는다. 실내는 창백할 정도로 새하얘 양초가 회색으로 보일 정도다. 각이 어설픈 십자가 창이 정겹다.  
8번 마태오의 집은 소악도와 연결되는 노두길 중간에 있다. 마태오는 마태복음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마무리 공사중인 마태오의 집은 아랍의 영향을 받은 동방정교회 풍이다. 지붕에는 황금빛 모스크가 햇살에 찬란하다.   
소악도에는 9번 작은 야고보의 집 하나뿐이다. 섬 남단의 바닷가에 있으며 앞서 3번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작은 야고보라고 부른다. 건물 외관은 중세 유럽의 농가처럼 평이해 보이지만 지붕이 굴곡지고 실내는 마루바닥이 꽤 넓다. 

 

절경의 진섬과 딴섬   
이제 마지막 진섬만이 남았다. 소악도에서 짧은 노두길을 건너면 10번 유다 타태오의 집이 삐죽대는 지붕을 이고 소박하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와 구분하기 위해 다태오를 붙인다고 한다. 유다 다태오의 집에서 섬을 가로지르면 바닷가 언덕에 개선문처럼 우뚝한 11번 시몬의 집이 나온다. 시몬은 작은 야고보와 형제간이라고 한다. 하얀 건물에 문과 창틀을 빨갛게 칠하고 지붕에는 눈 모양까지 달아 어딘가 장난스럽다. 문을 지나면 아득히 천사대교 방면의 탁 트인 바다가 장쾌하다. 
이제 마지막 12번 가롯 유다의 집만이 남았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롯 유다의 집은 진섬에서 뚝 떨어진 딴섬에 외로이 유배되어 있다. 하지만 시몬의 집에서 가롯 유다의 집으로 이어지는 해변은 이 열도에서 최고의 절경이다. 기묘한 형태로 파도에 깎인 화산암이 질펀하고 작은 백사장 저편에 손바닥만한 딴섬이 보인다. 딴섬의 숲 속에 홀로 선 가롯 유다의 집은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특별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음침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미니벨로를 타고 느릿느릿 돌아보니 20km 남짓 달리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12사도의 유래를 잘 아는 기독교 신자라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감흥도 더할 것이다. 
신자가 아니어도 외딴 섬의 쓸쓸한 풍경을 동화적인 소묘로 만들어주는 12사도의 집은 차분한 산책코스로 매혹적이다. 띄엄띄엄 있는 배편도 육지 혹은 세속과의 격리감을 더해줘서 잡념과 욕망이 자신도 모르게 잦아든다. 종교적이든 아니든 이 열도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순례자가 되는 이유다.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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