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을 자전거로 도전한다 ⑤

100대 명산을 자전거로 도전한다 ⑤
횡성 태기산 (1261m)
눈 쌓인 산길 따라 구름 낀 정상까지, 온종일 라이딩

횡성 태기산은 남쪽의 청태산(1200m)과 함께 강원내륙 산악지대의 관문을 이루는 거대한 장벽처럼 솟아 있다.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해 두 산을 연결하는 임도를 거쳐 태기산 정상으로 향하다. 정상 턱밑인 해발 980m까지 오르는 양두구미재는 빙판을 이뤄 오도가도 못하는 차들로 주차장이다. 정상부에는 풍력발전소가 들어서 있어서 길은 잘 나 있지만 미끄러운 

태기산 방면으로 가는 임도는 온통 눈길이다. 눈이 조금씩 내리는 중이라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020년 1월 첫 라이딩은 태기산(1261m)으로 정했다. 태기산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 사이에 솟아 있으며, 태백산맥의 가운데 줄기인 중앙산맥에 속한다. 북쪽에는 흥정산(1277m), 서쪽은 봉복산(1232m), 남쪽은 청태산(1200m), 금당산(1173m), 거문산(1171m) 등 높은 산이 사방으로 모여 있어 깊고 웅장한 산악미를 보여주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어느 때에 가도 경관이 아름답다.
같은 강원도라고 해도 횡성 둔내까지는 저지대이고 태기산~청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넘어서야 비로소 평창의 고지대, 어쩌면 진짜 강원도로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태기산~청태산 사이에는 중요한 고개와 터널이 수없이 지난다.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태기산 남쪽 주릉을 넘는 6번 국도 양두구미재(980m)는 수도권과 강원중부내륙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 지금은 양두구미재 아래로 태기산터널이 뚫려 고갯길은 관광용도로 쓰이지만 고개가 워낙 높은데다 정상부에는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서 길은 잘 나 있는 편이다.   
태기산의 이런 입지는 전력적으로도 요충지여서 2000년 전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게 쫓긴 태기왕(泰岐王)이 쌓았다는 태기산성이 남아 있어 역사와 전설의 무대이기도 하다.   

운무에 쌓인 태기산 정상. 해발 1261m나 되는 고산이어서 눈을 보기 힘들었던 이번 겨울에도 적설량이 상당하다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출발 
양두구미재까지 자동차가 진입할 수 있지만 여기서 출발하면 정상까지 거리가 너무 짧아 라이딩이 싱거울 것 같아 훨씬 남쪽의 청태산 자연휴양림을 출발지로 잡았다. 우리는 가까운 제천에 있어서 일행 4명이 아침 8시에 출발했고 9시30분에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청태산 자연휴양림도 해발 760m나 되는 고지대여서 눈이 남아 있다. 숲 체험 시설인 숲체원을 거쳐 태기산~청태산 능선 서쪽을 감고 도는 임도를 따라 간다. 숲체원에서 시작되는 임도는 등고선을 따라 나 있어 업다운이 심하지 않아 설원 라이딩에 최고의 코스였다. 날씨도 도와줘 환상적인 설원 라이딩을 즐겼다.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태기산터널 위를 넘어 태기산 중턱에서 옛 6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고갯길을 업힐해 양두구미재까지 올랐다.
강원도 내륙 산은 해발 600~700m 이상 되면 눈이 잘 녹지 않고 4월말이나 5월초까지 그대로 쌓여있는 곳이 있다. 양두구미재까지 업힐하는데 제설작업이 안되어 있어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분들도 많았다. 양두구미재 정상은 도로가 얼어붙어 차들이 뒤엉켜 오도 가도 못하고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우린 태기산 정상을 향해 풍력단지 관리도로로 진입했다.
 
정상은 짙은 눈구름 속 
길은 미끄럽지만 안장에서 안 내리고 열심히 페달링하여 풍력발전기 아래에 도착해 후미의 일행을 기다리며 춥지 않게 발전기 주변을 돌았다. 고도가 높고 기온이 내려가 손과 발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정상을 향해 다시 출발이다. 계속 업힐하는데 갑자기 함박눈이 내리고 나무에는 상고대가 피어나 설국이 따로 없다.
3년 전에 왔을 때 정상석은 풍력발전단지 맨위 발전기 뒤에 조그맣게 세워져 있었는데 이번에 오르니 정자며 정상석도 새롭게 잘 해놓았다. 하지만 1261m나 되는 높은 봉우리는 이미 눈구름 속이라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다운하려는데 갑자기 굉음이 울리며 쏜살같이 달리는 산악용 버기카 5대가 나타났다. 미끄럽지도 않은지 눈길을 시속 60km 정도로 달리는 것 같다. 

길었던 하루 
우리는 눈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럽게 하산을 시작했다. 눈만 없으면 태기산성 방면으로 임도를 타려 했는데 시간도 지체되었고 다들 다음에 가자고 해서 양두구미재로 다시 내려 왔다.
양두구미재에서는 앞서 업힐해온 둔내면 방면으로 내려가다 삽교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산길로 접어드니 도로 공사를 하다  중단한 듯 인가도 없다. 이윽고 영동고속도로 위를 지나 출발지인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종일 식사도 못하고 비상식량으로만 허기를 겨우 면한 채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가 되었다. 주행거리는 50km 정도인데 눈길이라 속도가 지지부진했던 탓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같이 라이딩한 분들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다들 손, 발, 얼굴이 얼고 배도 고팠지만 설원 라이딩은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좋아들 한다.
미리 전화해 놓은, 인심 좋은 식당에서 닭복음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귀가길에 올랐다. 지름길인 국도는 노면이 결빙되었을까봐 고속도로로 오니 주말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량들과 겹쳐 교통량이 많다. 제천에 도착하니 밤 9시다. 긴 하루였다.

 

미끄러운 눈길이라 진행속도가 지지부진이다. 새로운 경험이지만 춥고 힘든 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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