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는 왜 0층이 있을까

영국에는 왜 0층이 있을까
0층과 돼지우리 家
지상 2층에서 지하 2층으로 가려면 3개층만 가면 된다. 둘을 합하면 4개층이어야 하는데 왜 3개층일까. 그 이유는 0층의 부재에 있다. 영국처럼 우리의 1층을 0층으로 쓰면 11층에 사는데 실제는 10층만 올라가는 문제는 해결된다. 집 가(家)에 돼지 시(豕)가 들어간 이유는 뭘까. 한국적 문화유산으로 알고 있는 온돌과 초가집의 이면에는 뭐가 있을까 

글 김종성(자유기고가)

제주도의 똥돼지 화장실(수원 화장실박물관). 집가(家)의 본뜻이 여기서 유래했다

 

요즈음 우한폐렴 때문에 다들 심리적 공황에 빠져 들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말도 있으니, 그에 따른 갖가지 파급효과도 생각해두어야 할 것 같다. 
특히나 보릿고개를 겪지 않았던 6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들에겐 새로운 국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2달치 식량 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말이 얼마나 사치인지 생각해볼 계기가 되어야 한다. ‘똘똘한 한 채’ 식의 이재관(理財觀)에 입각한 화폐로 표시한 ‘경제력’이 과연 실제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응하는 동원력과 어느 정도 비례하는지 거품을 인식하는 계기로 여기고, 마음 잘 다스리는 가운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자. 
이럴 때는 중력밀가루 한 포대 사두고 나서 우리가 그렇게 갈망했던 부동산, 그것도 아파트와 관련하여 위치와 면적 다음으로 많이 따지는 층수에 대한 재미난 얘기에 젖어서 현실의 고뇌를 조금 잊어보도록 하자. 

영국에서는 0층이 1층   
건물의 층수를 헤아릴 때 우리나 미국식으로 따지면 1층(First Floor)이 영국식으론 0층(Ground Floor)이라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다. 나도 처음엔 문화적 차이라며 두리뭉실 이해하고 넘어갔다. 
작년에 집사람이 입원하는 바람에 한 달 간 간병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 중 답답할 때마다 틈틈이 지하 2층 앞마당에 담배를 피우러 내려가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 궁금증이 생겨났다. 집사람이 입원한 지상 2층에서 지하 2층까지 내려오는데, 왜 에스컬레이터를 3개 층 분량만 내려왔을까? 2에서 –2를 빼면〔2-(-2)〕  분명히 4인데, 왜 층수 차이는 3개 층일까? 어쩐지 밤에 계단 층수를 헤아리는 괴담이 생각나면서 뭔가 근원적인 문제를 느끼게 된 것이다. 
2(지상2층)에서 –2(지하2층)를 빼면 분명히 4인데 왜 3일까? 그것은 바로 0층이 없기 때문이다. 0은 수량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순서나 위치로서는 엄연히 존재한다. 0층을 정하지 않고 지하를 -1층, -2층으로 표시하니 층간의 수가 맞지 않는다. 
안 그래도 직장 사무실이 3층인데 지상에서 2개 층 밖에 안 오르는 것이 계속 이상하게 여겨졌던 기억이 났다. 즉, 1층에서 3층으로 올라갈 때 2개 층만 올라가는 게 당연한데도 이상하게 의식 속에는 3개 층을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어찌 보면, 층(層)이란 게 원래 마루(floor) 바닥이라는 의미를 새겨본다면 실제로는 바닥의 순서나 갯수인데, 우리는 바닥과 바닥 사이의 공간을 층으로 의식한데서 인식의 혼선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층간의 수를 보면 0층을 설정하는 영국식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지하층이 없을 때 호텔의 객실 소요자재 보급을 계산할 땐 지상에 드러난 총 층수로 따지니까 미국식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하 층수가 많아지고 계단․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 같은 층간구조물을 이용한 건물 내 수직이동이 많아진 지금 시대에는 층간 간격 계산을 할 일이 많은데, 이럴 때는 영국식으로 0층을 두면 아주 잘 맞아 떨어지고 더 합리적이다. 
그래서일까, 위층이 없는 단층건물이면 층의 개념이 필요 없도록 0층을 설정하는 영국식 층수 개념이 뭔가 오묘한 합리성이라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도 0층 개념을 적용한다면 오르는 층수가 명확해져서 밤에 계단을 오르다가 층수가 틀리는 여고괴담도 많이 사그라질 것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게 영국인의 합리성에서 나온 게 아니라 환경에 따른 생활적응 방식에서 나왔다. 
저위도의 사막이나 스텝지대처럼 텐트 치고 지면에 깔개만 깔고 사는 지역이 아니라면, 땅이 차거나 축축해서 깔개만 깔고 잘 수 없다. 게다가 열대지방이나 여름철에는 뱀과 벌레 때문에 더더욱 맨땅에 신세 지고 자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에선 건물바닥은 땅바닥과 간격을 띄워놓는다. 바로 여기서 생긴 간격을 보는 시선의 차이 때문에 인식의 차이까지 생긴 것이다. 

벽이 떨어져 내린 폐가

 

집 가(家)에 돼지가 들어간 까닭  
우리가 집 가(家)로 쓰는 한자는 실은 아래층에 돼지(豕)를 키운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의 하상주(夏商周) 시대에 우리가 말하는 중원은 지금의 하남성 일대였는데, 그곳의 땅이 축축해서 맨 땅에 기거하기 어렵고 온난한 기후 탓에 뱀이 많아서 위험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땅 위에 간격을 띄워서 마루(floor)를 설치하여 사람이 자고, 마루 아래 땅바닥엔 뱀에 강한 돼지를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집 가(家) 자의 아래에 돼지(豕)가 들어간 것이다. 
뱀도 막아주고 고기도 제공해주는 돼지, 참으로 인간에게 유용한 짐승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제주 똥돼지’도 그 연원이 굉장히 오래된 듯하다. 재미난 것은 우리가 흔히 집 안의 정돈상태가 엉망이거나 위생상태가 불결한 상태를 두고 ‘마치 돼지우리 같다’며 하필이면 다른 동물도 아니고 ‘돼지’를 들먹이는 것 또한 어찌 보면 상당히 근거가 있다.
헌데, 영국도 매 한가지로 땅이 축축한 동네여서 땅에서 공간을 위로 좀 띄워서 마루를 깔아 거주했는데, 그 때문에 묘하게도 Floor란 말의 의미가 '마루'인 동시에 '층'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마루가 꽤나 높았나 보다. 그래서 그들에겐 우리의 2층에 해당되는 높이까지 올린 바닥에서 First Floor(=Ground Floor+1)가 시작된 것 같다. 
미국도 처음에는 땅에서 약간 떨어진 높이로 바닥마루를 깔고 집을 지었나 보다. 그래서 First Floor가 우리가 흔히 부르는 1층에 해당되는 바닥 높이여서 그런지, 바닥마루 아래는 지하로 내려가 우리처럼 First Floor = Ground Floor가 되었다고 본다. 층수 따지기에 애매한 First Floor의 바닥 아래 공간이 반지하로 내려가 지하로 취급된 미국과 그 반지하를 버젓이 지상으로 취급한 영국, 이러한 최초의 개념에서 사사오입(四捨五入)의 차이로 Ground Floor는 0층과 1층으로 지위가 달라지고 First Floor가 1층과 2층으로 달라졌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인식이나 문화는 다분히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다못해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좌석방향마저도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담당하는 부서의 직원들이 절반은 서쪽을 향해 앉아있고, 절반은 북쪽을 향해 앉아 있다. 내게 결재서류를 올릴 때마다 서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전부 처리순서가 거꾸로 되어있고, 북쪽 쳐다보는 사람들은 전부 처리순서가 바로 되어 있다. 즉, 서쪽 쳐다보는 사람은 매 건을 처리할 때마다 뒤집지 않고 쌓아서 주고, 북쪽 쳐다보는 사람들은 매 건을 처리할 때마다 뒤집어 쌓아서 가져오는 것이었다. 행여나 직원들끼리 미리 서로 약속을 했는지 물어보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의식적 결정에 있어서 방향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뜻 아닐까? 그래서인지 습관을 고치려고 할 때 ‘방향전환’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근거가 없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비오는 날 파전이 맛나다? 
가옥구조 때문에 빚어진 날씨와 관련된 우리의 소박한 습속 하나를 소개한다. “비오는 날에 파전을 부쳐 먹으면 제맛”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실 내 생각에 파전의 맛은 막걸리 때문에 더 입에 감기지 비 때문이 아니던데 왜 그럴까?
이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기후현상인 장마철과 서민가옥인 황토벽 구조 때문에 생긴 말이다. 황토벽은 보온성이나 통기성에서는 우수하나, 빗물에는 아주 약하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튀어서 계속 황토벽에 묻거나,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빗물에 황토벽이 젖으면 황토벽은 허물어져 내리게 된다. 그래서 오래 방치된 시골의 빈집을 보면, 외벽의 아래쪽이 허물어져 벽체 속에 격자무늬로 엮은 대나무 심대가 노출되어 있는데, 모두 흙벽을 적신 비 때문이다. 
이렇게 비에 젖어 황토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으려면 아궁이에 군불을 떼서 그 열기로 흙벽을 말려야 한다. 그런데, 장마철에 온돌방에 군불을 떼면 비가 와서 어디 쏘다닐 데도 없이 방에 틀어박힌 사내들이 덥다고 짜증부리는 게 참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투덜대는 사내들을 달래려면 이왕 힘들게 불을 뗀 김에 뭔가 별미꺼리라도 만들어 입에다 발라주어야 되는데, 그게 바로 파전이다. 
장마철에 수확하는 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침개의 대명사가 파전이다 보니 “비오는 날 파전이 제맛”이라는 말과 습속이 생긴 게 아닐까 한다. 
이런 향긋한 파전 같은 분위기에다 찬물 끼얹는 소린지 모르겠는데, 비오는 날의 파전 이야기 가지고 추억어린 전원풍에 젖지는 마시기를. 남들이 1층이니 2층이니 따질 때, 층수 개념은 고사하고 그저 비에 견디기조차 힘든 우리의 전통 벽 구조 때문에 빚어진 일 아닌가. 벽돌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가난에 찌들었던 우리 역사의 부산물이다.  

온돌과 초가집의 이면 
말이 나온 김에 부연하는데 우리가 전통 가옥구조라고 말하는 온돌방조차도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초가집에는 벽지는 고사하고 대부분 맨바닥에 가마니나 멍석때기를 겨우 깔아서 살았다. 이런 삶 속에서 2층집은 죽을 때까지 구경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의 민초들이었음을 상기하자. 
그나마 17세기에 발생한 소빙하기로 인하여 조선에 들이닥친 경신대기근을 비롯해 연이은 각종 재해와 전염병으로 왜란과 호란 때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환자를 눕히려고 온돌방을 설치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급속히 온돌방이 늘어나면서 난방용 벌채 때문에 산림이 황폐화되기 시작해 개화기쯤 되어서는 서울 근처의 산은 전부 민둥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어쨌든 쥐나 뱀은 물론이고 온갖 해충과 세균의 온상인 초가집을 두고선 호사가들이 ‘청빈’이 어쩌고 ‘안빈낙도’가 어쩌고 하는데, 남의 일처럼 구경할 땐 전원교향곡이지만 평생 그곳에 살아야하는 당사자에겐 운명교향곡인 법이다. 수백 년 된 기와집은 있어도 수백 년 된 초가집은 없는 것을 보면, 우리가 문명적 열등성을 문화적 독창성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층수논쟁과는 별개인데, 사실 가옥구조에 있어서 단열보온에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는 물과 공기다. 물은 비열이 가장 높은 점에서 그렇고, 공기는 열전도성이 가장 낮은 점에서 그렇다. 천장과 지붕 사이의 간격(공기층)이 여름철엔 지붕에서 발생하는 뜨거운 태양열이 실내로 미치는 것을 차단하고 겨울철엔 방안의 온기가 지붕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마찬가지로 건물바닥과 땅바닥 사이의 간격은 축축한 땅에 사람 몸이 닿아 체온을 잃는 것을 방지해주는 점에서 최고의 과학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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