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도 삶도 청·탁, 완·급이 뒤섞여야 풍족해지리라

5대강 발원지를 찾아서
강물도 삶도 청·탁, 완·급이 뒤섞여야 풍족해지리라

이땅의 숱한 강줄기는 각자 발원지가 있지만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그 강의 발원지로 삼는다. 청류(淸流)와 탁류(濁流)가 혼재하고 급류와 완류를 거듭하면서 강은 지난한 여정을 이어가고 인간과 뭇 생명은 그 물에 기대 생존한다. 강이 없었다면 인류가 시간의 지혜의 축적으로 이뤄낸 문명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협의 작은 샘 앞에서 자연과 문명과 삶을 되새긴다. 이 강물처럼 청탁과 완급을 구별 않고 한번에 포용하는 것이 자연이고 삶이 아닐까  

 

 

 

낙동강 - 국내최장 물줄기의 특별한 시작
‘황지’에서 부산까지, 느리게 가기로 작정하다

국내최장 525km를 흘러내리는 낙동강의 가장 긴 줄기는 태백산의 깊고 높은 자락에서 시작된다. 신기하게도 한강 역시 같은 산을 사이에 두고 발원한다. 태백이 양대 강의 시원이 된 것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접점에 있으면서 산세가 여러 단계로 중첩되고 고원을 끼고 있는 입체적인 지형 때문이다. 부산 앞바다까지 흘러갈 낙차의 힘은 태백시내에서 용솟음치는 황지(黃池)에서 비롯되지만 높이가 700m에 불과해 낙동강은 처음부터 느리게 흐를 운명이었나 보다

 

태백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본 함백산(왼쪽)~금대봉 백두대간. 두 봉우리 사이의 싸리재가 정확한 낙동강 발원지다

 

 

태백에 가면 모든 것이 높아 고도계가 헐떡인다. 가장 높은 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높다는 것일까.
태백의 산은 태백산(1567m)과 함백산(1573m)이 대표한다. 이 두 산자락에 ‘국내 최고’의 기록이 여러 개 모여 있다. 우선 태백산 망경사는 해발 146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고, 망경사의 용정은 가장 높은 샘물이다. 함백산 아래의 만항재(1280m)는 포장도로 중에는 가장 높은 고개다. 함백산 턱밑에 자리한 태백선수촌 근처 도로는 해발 1330m까지 올라가는, 가장 높은 스카이웨이다. 태백시내 북쪽의 추전역은 해발 855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이다. 

가장 높은 산이 아니면서 이렇게 인문적으로 가장 높은 기록이 많이 있는 것은 태백이라는 지역의 특별함을 말해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높은 고도에도 인간을 배척하지 않는 무던한 산세와 협곡 사이에 기적처럼 형성된 고원은, 범접할 수 없는 고산이 아니라 친근한 산중별세계로 느껴진다. 바로 이 높고 푸근한 산자락에서 한강과 낙동강이 사이좋게 발원한다.

 

황지 연못. 연중 15도 정도로 수온이 유지되고 하루 5천톤이 용출한다
매봉산풍력발전단지 정상에 있는 바람의 언덕

 

 

나라의 양대강이 시작되는 산
태백의 이름이 유래한 태백산은 더욱 각별하다. 고대로부터 신성시되어 산정에는 천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바로 옆에 마주한 함백산(1573m)과 연봉을 이룬다. 국내에서 가장 긴 낙동강(525km)과 유역면적이 가장 넓은 한강(514km)은 여기 산자락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태백과 함백 두 산이 신령스럽게 여겨진 것도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양대 강을 거슬러 오르면 공통적으로 마지막에 다다르는 곳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함백산 북쪽의 금대봉(1418m)이 한강과 낙동강 최장 물줄기의 분수령이다. 한강은 금대봉 북동쪽 골짜기에서, 낙동강은 남동쪽 골짜기에서 각자의 여정을 시작한다. 주능선에 떨어지는 빗물은 단 몇cm의 차이로 끝내 만나게 될 바다가 달라진다. 서쪽 산줄기로 떨어지면 서울을 지나 서해로 들어가고, 동쪽으로 떨어지면 부산을 거쳐 남해로 가니, 물의 운명이 일순간에 뒤바뀌는 선택의 기로다.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상 발원 이후 서울까지 차츰차츰 단계를 낮춰가며 ‘합리적’으로 흘러가는 한강과 달리 낙동강은 초기에 부침이 심하다. 공식적인 발원지도 한강은 금대봉 골짜기 해발 930m 지점의 검룡소인데 낙동강은 한참을 내려간 태백시내의 황지(700m)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황지보다 8km 상류로 올라간, 함백산~금대봉 사이의 싸리재(1268m) 골짜기가 최장 물줄기의 시작이다. 그럼에도 황지를 낙동강의 발원지로 보는 것은 물줄기와 동떨어진 협곡의 고원에서 신비롭게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이다. 골짜기의 물은 갈수기에는 마르지만 황지는 마르는 일이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주민들의 상수도원이었다가 1989년 광동댐이 건설되면서 공동호 물을 끌어와 쓰게 된다. 그러다 2008년 이후 가뭄이 지속되자 다시 황지에서 매일 350톤 가량을 취수하고 있다. 

황지 주변은 작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크기별로 상지, 중지, 하지 세 개의 연못으로 이뤄졌는데 상지는 지름 22m이고 연간 15℃ 정도로 변함없이 수온이 유지된다. 이 때문에 새벽이나 겨울철이면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신비감을 준다.      
 

황지 주변은 작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포장도로 고개인 만항재. 정확한 높이는 1280m다. 뒤는 함백산
국내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에서 바라본 바람의 언덕

 

 

‘천천히 흘러갈테야’ 작정한 물줄기
하루에 약 5천톤의 물이 용출되는 연못은 태백산과 함백산 골짜기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솟아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이 터에 자린고비 황씨가 살았는데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권하자 쌀 대신 쇠똥을 줬다고 한다. 이를 본 며느리가 미안한 마음에 노승을 쫓아가 쌀을 시주하자 노승은 집안의 운이 다했다며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고 한다. 며느리가 언덕을 넘어가는 순간 황씨의 집은 땅 아래로 꺼져 지금의 연못이 되었고, 놀라서 뒤돌아본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굳어 돌장승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지금도 연못가에는 며느리의 석상을 세워놓았다. 마음씨 고약한 부자를 벌주고 착한 며느리는 돌이 되었다는 전설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서 전승된다. 전남 장흥 억불산의 며느리바위도 거의 같은 내용이다.          

태백 시가지는 약간의 평지를 이룬 협곡에 자리하고 있는데, 황지에서 나온 물은 협곡을 흐르는 황지천과 합류해 남하를 시작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강물이 바위산맥을 뚫고 지나는 구문소는 태백시내를 경계 짓는 관문이다. 구문소를 벗어난 황지천은 철암천을 만나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인적 없는 산악지대를 사행(蛇行)한다. 이곳을 지나는 영동선 철길의 석포, 승부, 분천 같은 산간오지는 세상을 잊은 듯 묻혀 지내다 2013년 협곡관광열차 V-트레인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기를 찾고 있다. 무인지경의 산협을 지나는 V-트레인은 이 땅에 남은 최후의 비경을 편안하게 만끽하게 해주는 매혹의 여정이다.  

  협곡열차의 종점 분천역은 이미 도계(道界)가 바뀐 경북 봉화가 아니라 그냥 태백의 어느 연장선 같다. 해발 700m 황지에서 시작된 물길은 분천에서 330m로 푹 떨어졌다. 하지만 낙동강은 겨우 10%인 50km를 흘러왔을 뿐이다. 이제부터 부산 을숙도 앞바다까지 장장 475km를 고작 330m의 낙차로 흘러야 한다. 400km가 남은 안동도 해발 100m다. 낙동강이 멈춘 듯 유장하고 세월 따라 역사 따라 마냥 늘어진 것은 이처럼 낮은 고도차 때문이다. 

황지가 겨우 700m이니 강은 처음부터 천천히 갈 작정을 한 것이다. 느려터진 물줄기를 못 참아 영남사람들은 다혈질이 많은 걸까. 

 

'한국의 그랜드캐년' 통리협곡에 걸린 높이 50m의 미인폭포
철암역~분천역 간 협곡을 운행하는 V-트레인
바람의 언덕 아래 펼쳐진 고랭지채소밭

 

 

주변명소
만항재와 함백산 스카이라인 해발 1300m를 오르내리는 국내최고의 하늘길이다. 자동차로 편안하게 달릴 수 있으며 만항재 정상 일대에서는 매년 8월초 야생화축제도 열린다. 만항재~태백선수촌~오투리조트 간의 국내최고 스카이라인을 놓치지 말자. 단, 겨울에는 빙판길이, 악천후 때는 짙은 구름으로 위험하다.   

미인폭포 태백에서 삼척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일대의 통리협곡은 ‘한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릴 정도로 장엄하다. 미인폭포는 협곡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붉은 암벽 사이를 50m 높이로 쏟아진다. 427번 지방도에서 여래사 방면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 철암역에서 분천역까지 하루 3회 왕복한다. 편도 8400원,  1시간10분 소요. 애칭 ‘아기백호 열차’는 객차 좌석이 조망에 특화되어 인적 없는 순도 100%의 산간오지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도중에 ‘하늘도 세평’이라는 첩첩산중의 승부역과 전국에서 가장 작은 양원역에서 잠시 쉬어간다. www.v-train.co.kr

바람의 언덕 태백 시내 북쪽의 매봉산풍력발전단지에 있다. 여름에는 고랭지채소밭이 장관을 이룬다. 최고지점은 해발 1272m나 되어 태백산~함백산~금대봉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855m)도 발밑으로 보인다. 농번기 때는 초입의 삼수령에서 셔틀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찾아가는 길
태백은 고속도로가 없지만 중앙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지나는 제천에서 고속도로에 버금 갈 정도로 넓고 직선화된 38번 국도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3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겨울에는 함백산 일원의 스카이웨이가 결빙되어 통과가 어렵다. 황지는 태백시내 한 가운데 있고 주변에 숙식 장소가 많다. 

섬진강 - 가장 맑고, 정취 있고, 토속적인 물줄기  
팔공산 후덕함에 마이산 결기 담아 흐르는 500리

가장 한국적인, 애잔하고 해맑은 풍경을 담고 있는 섬진강은 남도의 깊은 산간지대를 돌아 500리를 흘러내린다. 가장 긴 발원지는 전북 진안의 팔공산(1151m) 일대의 골짜기다. 공식 발원지는 팔공산 북쪽 천상데미봉(1080m) 턱밑의 데미샘. 해발 850m 깊은 산속 너덜지대에서 졸졸 솟아나는 샘물은 골짜기를 지나 개울이 되고 강물이 되어 산과 들을 적신다. 이윽고 지리산 심심산골의 물을 더하면서 이 땅에서 가장 맑고 인상적인 강물의 전설이 된다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마이산 계곡
고운 백사장이 즐비한 화개~하동 간 섬진강(악양 고소산성에서 본 모습)
너덜지대에서 솟아난 데미샘에서 섬진강 500리 여정이 시작된다

 

모래와 협곡의 강
섬진강은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모래가람 등으로도 불렸는데 이름에 온통 모래가 들어갈 만큼 백사장이 많다. 섬진강의 모래는 어느 강보다 곱고 예쁘다. 강변 백사장이 특히 아름다운 곳은 구례(정확히는 화개장터)에서 남해에 이르는 이른바 ‘하동포구 80리’ 구간이다. km가 아니라 ‘리(里)’를 붙이면 괜히 향수가 어리고 감성을 자극해서 더욱 정취 있는 강줄기로 다가온다.     
옛날에는 남해에서 화개장터를 거쳐 구례까지 배가 다녔다. 조각배가 오갔을 80리 강물은 상상만으로도 애상과 정취가 물씬해진다. 준설을 위주로 한 4대강 사업에 포함되지 않아 지금도 지그재그로 백사장이 이어지지만 하상이 높아진데다 육상 교통이 좋아져 더 이상 배는 다니지 않는다. 4대강 사업에 포함되지 않아서 오해가 생겼는데 실은 섬진강이 영산강(115.5km)보다 2배나 긴 212.3km로 낙동강, 한강, 금강에 이은 4대 강이다.  
상류에 남원, 곡성, 구례 같은 꽤 큰 동네가 있음에도 하류의 강물이 이토록 맑은 것은 거의 지리산 덕분이다. 지리산은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루는데 주능선의 북쪽 골짜기 물은 낙동강으로, 남쪽 물은 모두 섬진강으로 모여든다.
특히 지리산의 준봉인 노고단(1507m)에서 아득히 흘러내리는 피아골과 지리산 중심부의 대성골, 빗점골, 단천골, 내원골 등등 대규모 계곡 물을 한데 모으는 화개천이 섬진강의 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피아골과 화개천은 워낙 수량이 많고 급류로 흘러 유유자적하는 섬진강 본류를 압도할 정도다. 급사면을 타고 한달음에 쏟아져 내린 지리산 깊은 골의 토사는 본류를 만나자 말자 지친 몸을 멈춰 저 매혹적인 모래톱을 빚어낸다.
모래가 아니라 두꺼비가 강이름으로 정착한 것은 고려말인 1385년 왜구가 섬진강 하구로 침입했을 때 엄청난 두꺼비 떼가 울어서 왜구가 도망갔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 자를 써서 섬진강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는 당시의 전설이 어린 섬진나루와 섬진마을이 전하고 있고, 커다란 두꺼비상도 세워져 있다.
 

고금당에서 바라본 암마이산
해발 850m 지점의 산기슭에서 솟아나는 데미섬

 

 

팔공산과 마이산의 음양 조화 
그렇다면 장장 500리를 넘는 섬진강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섬진강의 최장 발원지는 전북 진안의 고원지대다. 팔공산(1151m)을 위시한 이 일원은 호남 내륙 제일의 산악지대를 이룬다. 팔공산은 동쪽으로 장수고원을 두고 장안산(1237m)을 마주보고 있으며, 남덕유산(1507m)도 멀지 않다.      
섬진강의 최장줄기는 팔공산의 북쪽 골짜기에서 시작된다. 팔공산 주능선이 금남호남정맥을 이루며 북쪽으로 흐르다 서구이재(850m)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곧 천상데미봉(1080m)을 빚어낸다. 이 봉우리 서쪽의 해발 850m 지점에 자리한 데미샘이 섬진강의 최장발원지다. 천상데미봉은 선각산(1142m)과 마주하고 있고 그 사이에 깊게 패인 상추막이골에 데미샘자연휴양림이 들어서 있다. 데미는 더미(봉우리)의 사투리로 ‘천상데미’는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천상데미봉을 팔공산에 속한 하나의 봉우리로 보지만 다소 거리가 있어서 독립적인 산으로 봐도 어색하지 않다.
데미샘자연휴양림 일원의 신암리는 팔공산~천상데미~선각산~성수산(876m)이 사방으로 막아서서 움푹하게 갇힌 지형이다. 입구는 좁고 안쪽에 이렇게 넓은 분지가 펼쳐진 곳을 옛날 사람들은 흔히 우복동(牛腹洞)이라고 불렀다. 소의 뱃속처럼 좁은 골짜기 안쪽에 넓은 공간이 숨어 있다는 뜻으로 난리를 피하기 좋은 은거지로 꼽혔다.
그렇지 않아도 진안은 내륙의 오지에 든다. 호남에서 가장 깊은 오지를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으로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다. 팔공산~천상데미 주능선을 넘는 서구이재가 개통(2003년)되기 전만 해도 데미섬의 존재감은 없었고 신암리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팔공산과 천상데미는 바위가 드러난 곳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육산의 넉넉한 덕을 품고 바다로 향한 500리 장정을 시작한 섬진강은 도중에 비범한 골산(骨山)의 기운을 더해서 육산의 후덕함을 보완하는데, 바로 마이산(686m)이다.  마이산은 그냥 골산 정도가 아니라 한국 최고의 바위산 중 하나다. 주위가 모두 무던한 육산뿐인데 오직 마이산 하나만이 갑자기 거대한 돌산이 되어 두 개의 바위 귀를 솟구쳤다.
마이산은 높이 300m 정도의 두 바위기둥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동서 7km의 긴 독립산군을 이루는데 이 기묘한 암릉줄기가 품고 있는 계곡도 섬진강의 한 원류가 된다. 마이산은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지만 금강 방면은 뒤로 등을 돌린 형국이고 서쪽의 섬진강 방향으로 암벽을 씻어내린 계곡수를 풀어놓고 있다. 후덕한 어머니 품 같은 팔공산 깊은 골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힘차고 남성적인 마이산 물을 만나 비로소 원만한 덕을 갖춰 남해까지 흘러갈 힘을 얻는다.
 

논개 생가
지리산 계곡수를 모아 흐르는 화개천

 

주변명소
마이산 데미샘자연휴양림에서 20여km 떨어진 진안읍 남쪽에 있다. 암수 마이산이 말의 귀처럼 쫑긋 솟은 특별한 산세가 일품이다. 암마이산은 북쪽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암수 마이산 사이 남쪽에는 은수사가, 그 아래에는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신비한 돌탑의 탑사가 있다. 정상 서쪽의 암릉길은 가벼운 산행코스로 적당하고 마이산의 진면목을 조망하기도 좋다.   

논개생가 데미샘자연휴양림에서 30km 가량 떨어진 장수군 장계면에 있다. 원래 자리는 북쪽으로 2km 지점에 있었으나 대곡호가 생기면서 수몰되어 지금의 위치에 생가와 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주논개(朱論介, 1574~1593)는 남편 최경회 현감과 함께 2차 진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자결하자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한때 기녀(妓女)로 알려졌지만 최경회의 후처였으며 투신 당시 겨우 19세였다. 

찾아가는 길
데미샘자연휴양림을 찾아가면 된다. 휴양림에는 한옥을 포함한 다양한 숙소와 산책로 물놀이장 등이 있다. 휴양림 입구에서 데미샘까지는 1.2km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해발 850m 지점의 데미샘에는 안내판과 팔각정이 있다. 데미샘에서 천상데미봉까지도 약 30분 거리.
데미샘자연휴양림 :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 1길 172,  063-290-6993  www.데미샘.kr

영산강 - 나주평야의 젖줄  
물길의 90%가 평야를 지나는 풍요의 강

영산강은 국내 5위의 강이지만 길이는 115.5km로 한강이나 낙동강의 1/5, 섬진강에 비해서도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광활한 평야지대를 흘러 곡창의 생명선을 이룬다. 호남 최대도시 광주를 관통해 목포 앞바다에서 다도해의 중심으로 흘러들기까지 물줄기 의 90%는 들판을 지난다. 발원지는 담양군 북단의 용추산 가마골의 용소. 산은 높지 않으나 골짜기는 길고 깊어서 폭포와 담소가 즐비하다. 용소는 해발 190m에 불과해 강물은 처음부터 느리고 온화하게 흐를 운명을 타고 났다
 

나주 석관정과 영산강
영산강의 발원지 용소. 가마골 깊은 골짜기 중간에 있다. 이웃한 구름다리 그림자가 용소에 걸렸다

 

 

영산강은 태생적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인간의 강’이다. 국내 5위의 강이지만 길이는 115.5km에 불과해서 섬진강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국토의 70%가 산지인 이 땅에서 다른 강들이 산간지대를 급류로 구비치고 섬뜩한 절벽을 감아 흐를 때 영산강은 발원 직후부터 들판으로 접어들어 곡식을 살찌우고 인간을 살린다.
어림잡아 영산강의 90%는 들판을 흐른다. 길이가 짧은데도 영산강의 존재감이 매우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인구와 경작지가 밀집한 평야를 장시간 관류하기 때문이다. 영산강보다 두 배나 긴 섬진강은 90%가 산간지대를 흘러 경치는 아름답지만 발길이 닿을 수 없는 무인지경이 많고 유역의 인구가 적다. 섬진강이 풍경과 자연의 강이라면, 영산강은 일상과 문명의 강이다. 

 

메타세쿼이어 고목이 도열한 담양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

 

 

나주평야의 강
들판이 부족한 이 땅에서 그나마 지평선이 가물대는 광야는 호남지방에 모여 있다. 길이가 최대 100km에 달하는 호남평야는 국내최대의 들판이고, 그 다음이 나주평야다. 나주평야는 영산강 유역의 나주와 무안, 영암 일원을 아우르는데, 확대하면 광주와 담양 지경까지 하나의 들판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따지면 담양에서 목포까지 장장 80km의 기나긴 평원이다. 이 평원의 중심을 흐르는 유일한 수원이 바로 영산강이다.
영산강은 들판을 살찌우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이동도 도왔다. 목포에서 나주 영산포까지 48km나 큰 배가 다닐 수 있어 고려시대부터 영산포에는 조창(漕倉)이 설치되어 물자수송의 중심이 되었다. 영산강하구둑이 완공되기 전인 1970년대까지 배가 다녔는데 지금도 영산포에는 당시에 사용됐던 등대가 남아 있다.  
풍요의 강과 너른 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 호남 최대 도시 광주와 백제와 다른 독자 정치세력을 이뤘던 역사와 전통의 도시 나주, 남서부 최대의 항구 목포가 영산강의 산물이다.

 
정원과 정자 즐비한 풍류의 산실
영산강 중하류가 온통 들판과 풍요의 강이라면, 담양이 독차지 하고 있는 상류는 문학과 사색의 향기로 그윽하다. 전통정원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소쇄원이 무등산에서 흘러내리는 영산강 줄기 증암천 상류에 있다. 소쇄원과 담양 일대는 조선을 대표하는 가사(歌辭) 문학의 본향이다. 식영정과 면앙정은 송순이 노래한 ‘면앙정가’의 무대이고, 송강정과 식영정은 정철이 ‘사미인곡’과 ‘성산별곡’을 쓴 곳이다. 농업이 기반이던 어려운 시대에 한가로이 문학을 읊조릴 수 있었던 것도 영산강과 들판이 빚어낸 풍요 덕분이다.
영산강(榮山江)의 이름은 나주의 포구마을인 영산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영산포는 본래 흑산도 옆의 영산도 주민들이 왜구를 피해 들어와 정착한 곳이어서 이름도 영산도에서 따왔다. 영산포 일대의 강을 영산강이라 부르다가 전체 강 이름으로 정착한 것이다.  

 

용소 맞은편 골짜기에 놓여 있는 구름다리. 지상 30m 길이 69m 규모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려 정자를 배치한 소쇄원

 

 

웅장미와 산악미 겸비한 발원지의 산들
영산강이 발원하는 담양 북부의 산악지대는 평야지대에서 갑자기 솟구쳐 수치보다 훨씬 높고 웅장하면서 독특하다. 흔히 보는 그런 육산이 아니라 거대한 암봉이 하늘을 찌르고(추월산), 기나긴 골짜기에는 높이 100m에 달하는 폭포가 떨어지며(강천산), 웅장한 고대산성이 터 잡고 있기도 하다(산성산). 

물줄기의 대부분이 평야지대를 흐르지만 영험 있는 강물의 시작은 범상치 않다. 공식적인 발원지 용소는 추월산과 산성산 사이로 깊게 파고든 골짜기 최북단에 있다. 까마득한 산꼭대기에 위태롭게 걸린 바위는 곧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추월산과 능선 따라 성벽이 장중하게 물결치는 산성산 사이에는 인공호수인 담양호가 짙푸른 물결을 드리운다. 그 북쪽으로 더 들어간 가마골은 기이하게도 잔뜩 움츠린 산줄기를 파고들어 길고 깊은 골짜기를 빚고 있다. 겨우 500m급 산에 이렇게 길고 깊은 골짜기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골짜기 초입에 있는 용소는 지름 30m 정도의 타원형으로 한쪽에는 작은 폭포가 쏟아진다. 폭포 옆 절벽에는 소나무가 날듯이 나래를 펴고 있어 산수화의 신선경을 닮았다. 맞은편에는 구름다리가 골짜기를 가르고 지나가 경관의 깊이와 폭을 더해준다.  

용소는 골짜기 중상류쯤에 자리해서 더 위쪽에도 2km 이상의 계곡이 더 있다. 최종발원지는 아니지만 경관과 상징성에서 용소를 발원지로 삼은 것이다. 불과 10km 정도 내려가면 드넓은 들녘이 시작된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고 한적한 산중이다.  

용소의 높이는 겨우 해발 190m. 110km를 흘러내릴 힘으로는 빈약한 높이지만 그렇게 영산강은 태생적으로 느리게 흐를 작정을 했다. 들과 사람을 살리려면 빨리 흘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애초에 깨우친 듯, 영산강은 인간을 사랑한 관용의 강이기도 하다.  

 

용소의 폭포와 절벽에 걸린 소나무가 한폭의 산수화 같다
대나무 숲속을 조용히 거닐 수 있는 담양 죽녹원

 

 

주변명소
죽녹원 대나무 고을 담양을 상징하는 대밭 공원이다. 담양읍 북쪽의 야산의 구릉을 따라  대밭이 형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약 31만㎡(약 9만4천평)에 달한다. 다양한 테마의 대밭을 조용히 걸어보는 느낌은 일반 숲보다 한층 쾌적하고, 사색의 깊이를 더해준다.    

메타세쿼이어길 대나무와 더불어 담양을 상징하는 나무가 쭉쭉 뻗은 이국적인 메타세쿼이어다. 1970년대 초반 가로수로 심었던 것이 지금은 거대한 고목이 되어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담양에는 4669그루의 메타세쿼이어가 있으며 읍내 동쪽에 유료공원으로 꾸민  길이 가장 아름답다. 

소쇄원 한국적 전통 정원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일본의 정원과 달리 인공을 극도로 자제하고 자연 그대로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인문과 자연, 풍류가 저절로 일체를 이루는 경지를 이뤘다. 작은 개울을 따라 꾸민 정자와 담장, 오솔길이 말할 수 없이 심미적이다.

찾아가는 길
전남 최북단에 자리한 담양은 교통이 사통팔달이다. 철도만 없을 뿐, 광주대구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고창담양고속도로가 지나서 전국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광주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여서 함께 돌아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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