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 만항재 ~ 운탄고도 그래블 라이딩

여우의 사이클 팁
폭우 속에도 올로드바이크로 거뜬히 완주한 해발 1300m
함백산 만항재 ~ 운탄고도 그래블 라이딩

함백산(1573m) 서쪽으로는 두위봉(1470m)에 이르기까지 장대하고 높은 산줄기가 뻗어 있다. 이 산악지대는 80년대까지 수많은 광산이 있어서 석탄을 운반하는 위태로운 길이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며 나 있다. ‘운탄고도’라고 부르는 이 하늘길은 산악 라이딩과 트레킹 코스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코스가 워낙 높고 길어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그래블바이크로 폭우 속에 운탄고도를 일주하며 길을 가리지 않은 전천후 올로드바이크의 재미와 가능성을 실감했다   

장마철 우중충한 하늘을 보면서 한바탕 시원하게 비가 올 것 같아서 라이딩을 가지 못하고 주말에 다른 약속을 잡을까 고민하는 라이더가 있다면 이런 방식으로 자전거를 즐기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다.

국내최고 고개 만항재에서 출발 
아마도 자전거를 가지고 이곳저곳 유명한 명소를 돌아다니며 라이딩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만항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항재는 해발 1330m로 국내에서 도로가 지나는 고개로는 가장 높은 곳이다. 필자가 다녀온 코스는 이 만항재를 포함해 만항재 안쪽으로 펼쳐지는 오프로드 코스 ‘운탄고도’이다.

 

이날 다녀온 코스는 거리 91.30km, 획득고도 1708m, 오프로드 구간 32km였다. 오프로드 코스가 끝나면 온로드 코스로 나오면서 수라리재, 솔고개, 만항재를 넘게 되는 온·오프로드 복합 코스다

 

라이딩을 시작하기 위해 출발지점인 만항재 정상에 있는 만항재 쉼터로 이동했다. 운탄고도 오프로드의 시작점은 바로 지도상에 표시되어있는 만항재 쉼터부터 시작된다

 

오늘의 멤버들은 모두 그래블바이크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유경험자들로 구성되었다. 서울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는데, 만약 로드바이크였다면 노면과 제동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된 라이딩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길을 타는 것을 추구하는 올로드바이크는 그 특성상 노면이 험한 그래블 코스부터 긴 거리를 빠르게 달려야 하는 온로드 코스까지 모든 코스를 만능으로 타는데 적합하다. 비가 오는 날씨나 젖은 노면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라이딩을 시작하려고 출발점에 섰을 때는 비가 그쳤지만 산 정상을 구름과 안개가 덮어서 주변이 모두 뿌옇고 하얗다.

 

인터넷 지도를 확대해보면 만항재 쉼터 위쪽으로 이어지는 흰색 길이 보인다. 저 길의 시작점부터 바로 비포장도로가 나오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비포장도로가 나오지만 노면 상태가 아주 험하지는 않기 때문에 38~40c 타이어를 장착했다면 어렵지 않게 라이딩 할 수 있다

 

라이딩을 이어가다보면 중간중간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날 함께 라이딩한 멤버들은 바쏘(BASSO)의 팔타(PALTA) 라는 모델을 타고 왔는데, 로드바이크에 장착하는 드롭바를 사용하고 있으며, 프레임은 어디에도 충격 흡수 장치가 없다. 타이어는 모두들 700×38c를 끼웠고 로드바이크 규격의 휠세트에 림 두께만 조금 더 넓은 와이드 림 버전을 사용했다

 

같은 모델을 타고 나란히 달려오고 있는 세 사람. 모두 올로드바이크의 그래블 세팅을 하고 있어 이날 코스를 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25%까지 나오는 경사를 올라가기도 하고, 자갈과 돌멩이가 많은 내리막을 빠르게 내려가기도 했다. 예상치 못했지만 폭우가 와서 노면이 물에 잠긴 곳을 돌파하기도 했다

 

나란히 숲 속을 달려가는 모습이 정겹다. 그래블바이크는 산악자전거와는 다르게 충격 흡수장치가 없는 것이 일반적인만큼, 노면 충격은 팔과 다리로 어느 정도 버텨내야 한다. 그만큼 가볍고 기동성이 높기 때문에 장거리를 이동할 때 유리하고 기계적 컨트롤이 조금 더 편한 것 특징이다. 라이딩 성향은 로드바이크 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산악자전거 보다는 조금 더 기동성이 추구된 장르여서 코스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더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 온 후 잠깐 날씨가 갠 동안 산이 머금었던 물기가 안개와 구름이 되어 산자락을 타고 넘어가는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로드바이크를 타면서도 가끔 봤던 풍경이지만 나무와 풀 냄새가 가득한 산 속에서 보는 풍경은 남다르다

 

길 옆 낭떠러지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주 절경이다

 

경사가 너무 높은 곳이나 노면이 너무 험한 곳은 내려서 잠깐 끌어도 좋고, 자전거를 끌고 가며 나누는 대화도 즐겁다. 이 모든 과정이 그래블라이딩에 포함된 시간들이며 올로드바이크의 문화이고 매력이다

 

본격적인 산악자전거와는 달리 싱글길이나 험준한 바위와 나무뿌리가 있는 곳을 주파하도록 만들어진 자전거는 아니다. 길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노면에 구애를 받지 않는 장르이기 때문에 조금 더 울창한 자연을 깊이 느끼는 로드바이크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25%의 급경사를 올라가는데 체인링은 34t 스프라켓은 40t를 사용해 0.85의 기어비로 어렵지 않게 등판했다. 자동차로 비유해보자면 어떤 길이든 달려내는 SUV의 느낌이다

 

자갈길이나 파쇄석 노면 정도는 고속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날 라이딩은 짧은 시간 내에 긴 거리를 달려야했기 때문에 휴식시간 외에는 꽤 빠른 속도로 이동해야 완주할 수 있었다. 그런 목표를 달성 하게 만들어주는 장르의 자전거라는 것을 확실히 체험한 기분이다.

 

운탄고도 오프로드 코스는 탁 트인 하늘이 보이는가 하면 사진처럼 나무와 숲이 울창해서 완전히 그늘진 곳도 꽤 많다. 날씨가 개인 순간에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데도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이런 곳을 지나갈 때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녹음과 초록의 기운 덕분에 기분이 한없이 상쾌하다

 

깨진 돌의 뾰족한 부분에 찍혀서 타이어의 사이드 월이 찢어지며 펑크가 났다. 휴대한 펑크키트를 꺼내 바로 정비에 들어간다. 40c 사이즈 타이어로 험로를 빠르게 주파하는 그래블바이크의 특성상 타이어는 대체로 튜브리스를 사용한다. 펑크가 실런트로 메워지지 않는 수준일 경우에는 타이어 내부에 튜브를 넣어 클린처 방식으로 펑크를 대처하기도 한다.

 

날씨가 개는 것 같더니 산맥에 걸쳐있던 비구름 속으로 들어온 듯 했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3번째 차단기가 나왔다. 이제 운탄고도 오프로드 코스의 5분의 2 정도를 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비가 점점 거세지면서 안개가 짙게 깔리기 시작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원래부터 우중 라이딩을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다

 

라이딩 하는 동안 고글 안쪽으로 빗물이 너무 거세게 들어와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질 때까지 잠깐 보급을 하기로 한다. 산 속에서 고강도로 라이딩을 할 때는 파워젤이나 간단한 보급식으로는 허기가 해결되지 않는 느낌이라서 입으로 씹어 먹는 느낌을 충실히 주는 김밥이나 주먹밥 등을 가지고 다닌다. 산속에서 김밥을 먹으면 마치 피크닉 나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날 필자가 타고 온, 스위스에서 생산되는 ‘오픈UP’이라는 올로드바이크. 색깔이 아주 화사하다. 라이딩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통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었는데 오히려 비를 너무 많이 맞아 흙탕물이 모두 씻겨 내려가 버렸다

 

노면 위로 비가 강이 되어 흘러넘친다. 얕은 개울 위를 타고 가는 기분을 맛보며 달린다

 

완전히 비구름 속으로 들어온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빗줄기와 안개로 인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사진들은 이날 필자가 촬영한 고프로의 화면을 캡쳐한 장면인데, 카메라는 비를 너무 많이 맞아 이미 전원이 켜지지 않는 상태였다. (어쩌면 예쁘게 잘 정돈해서 찍은 사진 보다 이런 화면이 더 생동감이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운탄고도 중간에는 갱도의 일부를 재현해둔 곳이 있다. 운탄고도(運炭高道)는 옛날 정선, 태백, 사북, 고한지역의 탄광에서 채취한 석탄을 운반하던 트럭들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이다. 해발고도가 높아 ‘고도’ 라고 부르며 ‘하늘길’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석탄 성분에 의해 어두운 색의 노면을 볼 수 있다

 

재현 갱도를 조금 지나면 ‘도롱이 연못’이 나온다. 경치가 이색적이고 아름다워 꼭 들렀다 가는 곳이다

 

당장 산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런 모습으로 사진을 찍으며 수다를 떨었다. “빨간 자전거가 네 자전거냐, 아니면 초록 자전거가 네 자전거냐~”

 

안개는 더욱 짙어져가고 날씨가 흐려져 핸드폰을 꺼내 기상을 체크하는데 전파가 잡히지 않는다. 모두들 핸드폰을 확인하며 라이딩 계획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고민했다.

 

오후부터는 비가 점점 그친다고 해서 라이딩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

 

달리는 동안 날씨가 점점 좋아지더니 완전히 뜨거운 날씨로 갑자기 변모한 느낌이었다. 중간이 없는 날씨에 체력이 급소진되는 기분을 맛봐야했다. 비올 때는 기온이 27도였으나 갠 후에는 36도까지 올라갔다

 

코스가 긴만큼 달리는 동안 주기적으로 보급을 해야 한다. 갑자기 너무 많은 양을 먹어버리면 체력이 떨어지고 격한 움직임에 소화가 잘 안 되어 속이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양을 계속해서 꾸준히 먹는 것이 중요하다

 

노면에 있는 물기가 마르면서 뜨거운 사우나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모로 코스보다는 날씨에 의해 체력을 깎아먹는 느낌이다. 그래도 중간중간에 그늘이 많아서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었다. 운탄고도만의 매력이다

 

운탄고도 오프로드가 끝나는 지점에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인 ‘엽기소나무 타임캡슐공원’ 쪽으로 향하는 길은 고랭지 배추밭으로 이어진다

 

배추밭 사이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길을 따라 타임캡슐공원으로 향하는 길도 경치도 멋지다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인 ‘타임캡슐공원’은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오는 절경이다. 자전거 코스에서 잠시 빠져야 하지만 초행이라면 들러보는 것이 좋겠다

 

고랭지 배추밭 길을 모두 내려오면 이제 본격적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처음 출발지였던 만항재 쉼터로 복귀하면 된다. 여기서부터는 계속해서 온로드 라이딩이기 때문에 기동력을 최대한 살려 빠른 페이스로 복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올로드바이크의 주행성능이 발휘된다

 

온로드 코스로 나오고 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곳은 거리 4.2km 평균경사도 5%의 업힐인 수라리재다. 고개 자체로는 난이도가 높지는 않지만 이미 오프로드를 격하게 타고온 뒤여서 체력을 잘 배분하여 올라야 했다

 

솔고개를 넘어 본격적으로 만항재로 진입하는 코스로 들어서면 만항재 쉼터까지 거리 19.56km 평균경사도 4.07%의 업힐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축해뒀던 체력을 쏟아내야 하는 곳이다

 

다행히 초입부터 막바지까지 콘크리트로 포장되고 경치가 아름다운 길이어서 주변 경관을 보느라 힘든 것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만항재의 마지막 오르막을 올라가는 동안 해가 완전히 저물어서 완전한 밤이 되어버렸다. 이때가 오후 8시30분인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마지막 1km 정도를 남겨두고 어두워진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무사히 완주했다. 날씨의 변수가 컸음에도 힘든 라이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이런 형태의 자전거 덕분인 것 같다. 이미 로드바이크와 산악자전거는 익숙하지만 기존의 자전거 일상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맛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 노면, 거리, 환경을 가리지 않는 원초적이고 자유로운 자전거야 말로 올로드바이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된 시간이었다. 더욱 새롭고 자유롭게 자전거를 즐겨보고 싶다면 올로드바이크 라는 장르를 경험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 라이딩 코스의 GPX 파일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echanicfox/22161721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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